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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45> 흑해, 러시아의 해양 진출 스토리

흑해 장악해 해양강국 꿈꾸던 러시아 … 크림전쟁에 져 좌절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2-25 19:20:21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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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흑해 진출하기 위해
- 17세기부터 투르크와 대립
- 1783년 크림반도 세바스토플에
- ‘흑해 함대’ 창설해 본격 시도

- 19세기 중반 정치·종교 문제로
- 전면전 돌입, 시노프선 압승도
- 이스탄불 장악 우려로 참전한
- 영국·프랑스 등 유럽연합군에
- 세바스토플 뺏겨 강화조약 체결

유럽대륙 동쪽부터 태평양과 오호츠크해에 면한 광대한 대륙을 소유한 러시아의 역사 진행 과정에도 해양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흑해는 북쪽으로는 케르치해협에서 아조프해, 남서쪽으로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마르마라해로 이어지고 다시 다르다넬스해협에서 지중해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위치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흑해의 이런 지정학적 중요성을 활용해 러시아가 유럽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크림 전쟁(1853~1856년)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해양 화가 이반 아이바조프스키(1817~1900)가 그린 크림전쟁. 1853년 11월 러시아 흑해 함대가 오스만투르크 해군 선단을 격파하는 모습을 담았다. 그림 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 흑해 함대의 등장

러시아는 이미 17세기부터 흑해로 나아가는 통로라 할 수 있는 아조프해를 차지하기 위해 이 지역의 전통적 강자 오스만투르크와 전쟁을 벌여왔다. 1739년 아조프해를 차지하는 데 성공한 러시아는 흑해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러시아 여제 예카테리나는 총애하던 그리고리 포툠킨에게 1783년, 크리미아반도 세바스토플에 흑해 함대 창설을 명령하여 해양 강국 면모를 다질 초석을 마련했다.

흑해 함대는 1790년 오스만투르크 해군을 아조프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케르치해협 전투에서 격파해 위력을 과시했다.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러시아의 이러한 간헐적 대립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종교문제가 개입하면서 더 심각한 양상의 전쟁으로 진화한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예루살렘을 제국의 영토 내에 보유하고 있었다. 종교적 성지로서 예루살렘은 다수의 무슬림뿐 아니라 기독교도 또한 거주하는 곳이었다. 프랑스 나폴레옹 3세는 예루살렘의 기독교도 보호권을 로마 가톨릭에 주도록 오스만투르크의 술탄 아부둘메시드 1세에게 재정적·군사적 압력을 가했다. 술탄은 결국, 예루살렘의 기독교도 보호의 권리가 로마 가톨릭에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이는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와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러시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반발에는 역사적 배경도 있었다. 러시아의 폴란드 진출에 위협을 느낀 프랑스가 오스만투르크를 사주해 일으킨 1차 러시아-투르크 전쟁(1768~1774)에서 투르크는 패배했다. 패배 결과 투르크는 흑해 북동 지역을 러시아에 양도하고 투르크 영토 내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교도들에 대한 보호권을 인정했다.
   
■크림 전쟁의 막이 오르고

나폴레옹과 술탄 아부둘메시드의 합의는 러시아와 맺은 이전 합의를 저버리고, 투르크 제국의 러시아 정교도를 러시아의 전제정이 저버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를 전제정의 유지를 위한 하나의 근간으로 천명한 니콜라이 1세는 오스만투르크 술탄을 응징해 전제정의 기반을 단단히 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내 니콜라이 1세는 1853년 7월 투르크제국의 몰다비아와 왈라키에 침입해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크림 전쟁 발발을 설명하려면 당시 국제 정치질서 유지를 위한 복잡한 역학관계 또한 고려해야 한다. 19세기 중반 오스만투르크 제국은 한때의 영광을 뒤로하고 ‘유럽의 병자’로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은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와해로 인한 과실을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유럽의 세력 균형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의도는 이미 1841년 런던 해협협약에서도 확인됐는데, 이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전함도 흑해를 지중해와 잇는 통로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날 수 없었다. 중동과 지중해로 나아가는 통로를 봉쇄해 중동지역에서 영국의 이익을 강화하는 동시에 오스만투르크 제국 내에서 러시아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를 저지한다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런던 해협협약은 지중해로 나가는 통로를 차단당한 러시아에게는 불만의 불씨였다. 외국 선박의 보스포루스해협과 다르다넬스해협 통과를 금지한 런던 해협협약으로 러시아는 흑해 이상의 공간으로 뻗어 나갈 수 없었다. 오스만투르크와 전면전에 돌입한 이상 러시아는 우선 흑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더 넓은 해양공간으로 진출할 여건을 마련하고 싶었다. 러시아는 1853년 11월 흑해 남쪽 시노프항의 공략을 위해 흑해함대를 이동했다.

■세바스토플 공략의 참상

파벨 나히모프가 이끄는 흑해 함대의 시노프 공략은 러시아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대대적 포탄 사격으로 오스만투르크 함대 대부분은 한 시간 만에 침몰했다. 해안을 따라 배치된 포대 대부분도 파괴됐고 시노프는 화염에 휩싸였다. 3000명 이상의 오스만투르크 수병이 전사했고 함대 사령관도 체포됐지만 러시아 측의 인명 손실은 37명 사상자뿐이었다. 흑해 함대는 흑해 남쪽으로 빠르게 기동해 투르크 함대를 괴멸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러시아의 시노프 장악을 방치한다면 러시아는 적어도 흑해의 절반을 장악하는 셈이었다. 이 상황을 이용해 러시아가 보스포루스해협과 이스탄불 장악에도 나설 수 있다는 우려를 유럽 열강은 지울 수 없었다.

1854년 3월,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의 유럽연합군이 오스만투르크 지원에 나서면서 크림 전쟁은 국제전으로 비화했다. 소아시아와 발칸반도의 남부에서 전쟁의 결정적 승패와 관계없이 진행되던 투르크와 러시아의 싸움은 흑해 함대가 있던 세바스토플을 공략하는 데 연합군이 나서면서 결정적 전기를 맞았다. 1854년 9월 크림반도 북부 칼라미타 해변에 상륙한 영국과 프랑스 보병부대는 세바스토플을 향해 남하했고 그해 10월부터 영·프 연합군은 포격을 개시해 세바스토플에 대한 본격적 봉쇄에 나섰다.

유럽연합군은 세바스토플 함락은 몇 주 안에 성취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명령 계통의 잘못으로 영국군을 전멸에 이르게 한 발라클라바 전투 이후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과 유사한 교착상태에 빠졌다. 러시아의 장성들은 해안을 통한 연합군의 세바스토플 진입을 막고자 상당수 전함을 일부러 침몰시키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몇 주 안에 종결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1개월이나 진행된 세바스토플 공략은 러시아와 유럽연합군 모두에게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다.

■포병장교로 참전한 톨스토이

20대 포병장교로 세바스토플 수호작전에 참여한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전쟁 참상을 생생하게 러시아 민중에게 전했다. 톨스토이는 신체 일부를 절단당한 채 전장에 버려진 러시아와 프랑스 병사의 고통, 폭탄의 붉은 불빛이 보여주는 전장의 시체 등을 생생한 필치로 묘사해 전쟁의 참혹함을 전했다. 11개월 공방 끝에 세바스토플이 함락되고 오스트리아, 프로이센까지 유럽연합군에 가담하겠다고 위협하자 러시아는 더는 전쟁을 끌고 갈 수 없었다. 1856년 3월 파리강화조약 체결로 전쟁은 막을 내렸다.

   
흑해를 장악해 지중해까지 진출하려는 러시아의 의도는 좌절됐다. 그러나 2014년 러시아는 크림 자치공화국 주민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으로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귀속했다. 크림 전쟁의 역사적 경험을 상기할 때, 러시아의 이런 조치가 21세기 해양강국으로 부상을 의도하는 예비적 작업으로 후대의 역사가 평가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박원용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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