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 내 평생 이 드라마를 기다려왔다, 라고 나는 감히 쓴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2.1%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내가 시청자로 살아온 삶 안에 이 드라마는 20%가 넘는 시청률로 제 자리를 틀고 앉았다. 이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전 이승문 감독의 다큐멘터리 ‘땐뽀걸즈’가 있었다. 거제여상 댄스 스포츠 동아리를 기록한 다큐는 인디 극장가에서 돌풍을 일으켰었고, 다큐 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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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의 한 장면. KBS 홈페이지 |
지금은 잠시 문을 닫은 국도예술관에서 ‘땐뽀걸즈’를 보다가 ‘아, 이거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참 좋겠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공중파에서 이 반짝반짝 빛나는 소녀들을 소재로 다룰 리가 없다고 섣불리 단념도 했다. 상업고등학교 아이들 이야기니까. 드라마는 여상 아이들을 다루지 않으니까. 세상엔 인문계 애들만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 전선에 나가는 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한다는 묵계가 지상파 드라마 저변에 깔려 있었다. 조연은 될 수 있어도 주연은 못 되는 이야기가 여상 이야기였다. 연예인들은 상업학교 출신이라는 걸 숨겨야 했고, 교사들은 중3에게 공부 못하면 여상 간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열아홉 살이 되자마자 사회에 뛰어드는 수많은 아이를 사회는 스스로 감추었다.
그러나 이제, 댄스 스포츠를 추는 거제여상 청소년들이 드라마에 등장했다. ‘땐뽀걸즈’. 댄스 스포츠를 ‘땐뽀’라고 부르는 나이 많은 지도 선생님과, 취업을 목전에 둔 소녀들의 이야기. 그리고 거제도. 이제는 쇠약해져 가는 조선업의 도시에 남은 부모들과, 떠난 사람들과, 혹은 죽은, 혹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섬. 거기에 거제여상이 있다.
땐뽀를 추는 아이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고, 어느 부모는 할머니 손에 손녀를 버리고 떠난 후 전화 한 통 걸지 않고, 어느 부모는 방학이 돌아오면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이에게 무임금으로 일을 시킬 수 있어 기뻐한다. 어느 어머니는 대학에 가겠다는 아이에게 현실을 가르쳐 주겠다고 ‘네까짓 것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라는 독설을 뱉는다. 조선소가 해고 범위를 넓히면서 제풀에 지쳐 떠나는 노동자들도 매일 생긴다. 섬엔 악에 차 버티거나 숨이 차 주저앉은 사람들이 남는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댄스 스포츠를 춘다. 너는 그저 그렇게 살다 갈 것이라고 왕왕거리는 거제도에서 아이들은 억지로라도 꺄르륵거리며 춤을 추고, 대회에 나가고, 어른들을 이해하고, 희생적인 선생님을 따른다. 무엇일까, 사람을 살게 하는 것은. 거제의 아름다운 해변을 지각길로 달리며 스텝을 연습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이 아이들의 반이라도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나의 소녀 시절은 활자와 입시에 갇혀 어둡고 축축했고, 나는 그 시절을 핑계 삼아 남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무기처럼 두르고 살았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내가 저지르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져 본 적이 없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나에겐 선택지가 많았으니까. 취업과, 생계와 부양을 어깨에 메고 시지포스처럼 산을 오르는 열아홉 살이 돼 본 적이 없으니까. 그녀들을 다독이고 댄스 연습장에 모이게 하는 선생님처럼 어떤 집단을 애타게 사랑해 본 적도 없으니까. 이쯤에서 나는, ‘땐뽀걸즈’가 세상에 있게 한 그 이름을 꼭 기록해야 한다.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체육교사 이규호 선생님. 사비를 털어 아이들을 먹이고 하교시키고 대회에 출전시킨, 그래서 너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가르친 위대한 이름을 칼럼의 마지막에 쓴다. 작가·글쓰기 강사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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