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2월 17일까지 국제갤러리
사진작가 구본창(65·사진)의 대표작인 ‘백자 시리즈’는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하게 됐다. 외교관 부인으로 추정되는 한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져간 것 같은 커다란 달항아리 옆에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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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창 작가의 작품 ‘OM 17’(오른쪽 사진)과 ‘OM 19’. 박물관 진열장에 갇혀있던 백자를 꺼내 재해석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그 백자가 먼 이국땅에서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구본창) 사진의 정체는 그로부터 15년이란 세월이 흐른 2004년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에서 한 큐레이터를 통해 알게 된다. 사진 속 여인은 ‘루시 리’라는 오스트리아인 도예가였으며, 그녀 옆에 있던 달항아리는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것이다. 이후 구 작가는 세계의 주요한 백자 컬렉션을 찾아다니며 오랫동안 백자 촬영에 열중했다. 2006년에는 대영박물관에서 루시 리의 달항아리도 사진에 담았다. 지금까지 4개국 16개 박물관에서 마치 한 사람, 한 사람 인물 사진을 촬영하듯 백자의 혼을 카메라로 담아냈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점은 내년 2월 17일까지 구 작가의 개인전 ‘Koo Bohnchang’을 연다. 2006년 첫 전시 이후 대표작으로 부상한 ‘백자’ 연작 9점을 비롯해 새롭게 선보이는 ‘청화백자’ 연작 6점, 대형 ‘제기’ 등 총 3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먼저 관람객을 압도하는 건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대형 ‘제기(祭器)'. 가로 190㎝, 세로 152㎝의 이 작품은 대상의 크기와 형태를 구조적으로 극대화해 제기가 지닌 건축학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실장은 “구 작가는 백자를 시각적으로 재현하거나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백자의 형태를 빌어 존재 자체를 드러내며 새롭게 해석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백자라는 일종의 유물에 상상이 개입할 여지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구 작가를 대표하는 건 박물관 진열장에 갇혀있던 유물을 꺼내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독창성. 사실적·기계적이라는 사진 매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백자가 자아내는 초현실적 경험의 결과물을 보여준다. 연분홍 한지를 배경으로 한 백자의 표면과 색채, 여백은 박물관 조명 아래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는 “박물관 유리 상자에서 백자를 꺼내 찍을 기회는 단 한 번뿐인 만큼 심혈을 기울인다. 주로 박물관 창고에서 촬영하는데 미리 두꺼운 한지를 배경으로 준비하고 유물에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간접조명으로 자연스러운 빛을 연출해 몽환적인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박물관 전시 도록에서 보는 윤기 나는 유물보다도 오히려 강력한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백자 연작이 순백자가 가진 여백, 비정형성, 불완전함의 아름다움 등을 조명한다면, 2014년에 작업한 이후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된 청화백자 연작은 당대의 기호, 욕망, 가치 등의 화두를 서정적으로 풀어내며 존재를 강조한다. 구 작가는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푸른 빛에 물들다’ 전을 계기로 조선 청화백자를 처음 접했다. 화려하고 정교한 중국과 일본의 청화백자와는 달리 조선의 청화백자는 당시 귀한 안료를 아껴야 했던 현실 때문인지 무늬가 연하고 여백의 미감이 돋보인다. 그는 “백자 연작과 마찬가지로 청화백자 연작도 대상 자체의 존재감을 주관적인 시선으로 담았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백자와 청화백자를 촬영하고, 국내외에 조선 도자기에 대한 인식을 다시 부각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