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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딸이 기록한 ‘특별한’ 역사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 이흥섭 지음 /번역공동체 ‘잇다’ 옮김 /논형 /1만5000원

  •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  |   입력 : 2018-12-14 18:55:42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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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일본 끌려간 이흥섭 씨
- 파란만장했던 인생 털어놓고
- 딸이 그걸 받아써 구술사 완성
- ‘가족의 삶=현대사’임을 일깨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번 주 쏟아진 책 중에서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란 제목만 보고 바로 잡았다. 제목이 책의 절반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술을 통해 ‘딸이 전하는 아버지의 역사’를 쓴 이흥섭 씨. 2014년 세상을 떠나기 전 그가 운영하던 고철상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논형 제공
사정은 이렇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한때 왕조 중심의 거대 담론을 역사라 불렀다. 그러다 점점 더 다양하고, 미세하고, 평범한 분야들을 역사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령 음식의 변천사를 통해 각 시대의 흐름과 분위기를 파악하기도 한다. 마침내 구술사까지 이어졌다. 단순하게 보면 생존한 어르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이다. 마을 단위 어르신들의 육성을 모으면 한 마을의 역사가 된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으면 가족사가 된다. 구술사가 중요한 것은 가장 가까운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영웅호걸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웃, 내 가족이 겪은 살아 있는 현대사라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를 보자. 이흥섭 씨다. 이름이 낯설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그의 이야기가 의미를 지니고 역사가 되는 것은 그가 살아온 길이 현대사의 한 장면을 너무나 생생하게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1944년 5월, 불과 16살의 나이에 황해도 곡산의 콩밭에서 아버지와 콩을 매다 끌려갔다. 꼬박 엿새 동안 처음 보는 커다란 배와 기차, 트럭에 실려 도착한 곳은 일본 사가현 도쿠스에의 탄광이었다. 그때부터 매일 ‘훈도시’(일본 성인 남성이 입는 전통적인 속옷)만 달랑 걸치고 지하 갱도로 내려가 석탄을 캤다. 1945년 1월1일까지 7개월 동안 지옥 같은 생활을 버틴 저자는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했다. 배고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탓이었다. 운이 좋아 일본 곳곳에서 조선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1945년 8월15일 방공호를 파다가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들었다.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그는 끝내 대한해협을 건너는 배를 타지 못했다. 일본에서 평생 고향 황해도 쪽을 바라보다 2014년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한 사람의 역사를 정리하면 간단하지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만만치 않다. 책에서만 봤던 징용이란 건조한 단어가 저자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이 된다. 콩을 매다 가족과 이별 인사를 할 틈도 없이 끌려가던 순간, 일본으로 가는 거대한 배의 밑바닥에서 불안에 떠는 조선 청년들을 만난 장면, 탄광에서 조선인 감독이 조선인 광부를 괴롭히던 모습, 비인간적인 탄광 노동 등이 저자를 통해 숨을 쉬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궁금해진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어떻게 책으로 나왔을까. 그 과정도 흥미롭다. 저자의 딸 동순 씨가 중학교 3학년 때 일본인 담임교사가 ‘아버지의 역사’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 교사는 일본의 과거를 반성하고 세상에 알리려는 양심적인 지식인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아버지가 말하고 딸이 받아쓰면서 초고가 완성됐다. 부녀가 함께 마주친 과거는 편하지 않았다. 상상해보라. 딸이 30년 전 자기 또래의 어린 아버지가 겪었던 불행한 과거와 만났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944년 5월 처음으로 일본에 와서 지금까지 살아온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다 쓴다는 건 중3 딸에게도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딸 동순 씨도 비슷하다. “대강이나마 글을 완성하자 아버지는 더 이상은 쓸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왠지 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딸의 생활이나 환경이 너무나 달랐던 겁니다. 전쟁이라는 사건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다. 부모님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어떨까. 부모님은 오래 기다리지 않는다.

김희국 기자 kuki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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