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민은 13년 전에도 살인을 하고 빠져나갔어. 이번에도 못 잡을 것 같아서 내가 직접 해치운 거야. 살릴 수 있었는데도 죽는 걸 보고만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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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나쁜 형사’의 한 장면. MBC 제공 |
형사 우태석은 스스로 범인을 죽였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순경 시절 보호할 수 없었던 목격자를 살해한 놈을 13년이나 쫓다 마침내 잡고 시원하게 경찰복을 벗겠다며 스스로 약속한 사람이다. 동료 경찰에게 취조를 당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살인을 했다고 자백하고 법대로 처리하라며 염증을 낸다. ‘죄짓고도 벌 안 받는 놈들 꼴 보기 싫어서 형사 짓 했는데, 제가 그런 놈이 될 순 없잖습니까’. 그의 방어는 그게 다다. 정의로운 문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쁜 형사’이다. 세상엔 법이 있고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형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진짜 나쁜 형사인 이유는, 나쁜 놈들을 죽이기 전에 갈등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살인을 고백하기 전 울며불며 한이 가득한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하지 않고, 묵직하지도 않다. 나쁜 놈인데 권력층이라 안 잡히잖아. 법이 뭣 같아서 안 잡히잖아. 그래서 내가 죽였어.
우태석을 연기한 배우가 신하균이기 때문일까. 난 신하균 팬도 아닌데. 법과 원칙을 강하게 준수한 나머지 길가에 쓰레기 한 점 버리지 않고 신호위반도 하지 않는 내가 거침없이 법을 위반하는 우태석이란 캐릭터에게 단 한 점의 거부감도 들지 않는 건 왜일까. 왜긴, 살면서 그가 증오하는 행태를 너무 많이 보았으니까.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말이다, 돈 있고 권력 있으면 법 따위 얼마든지 피해 가는 걸 늘 보고 사니까. 이상한 형법 체계 때문에 저지른 죄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으니까.
영국 BBC 드라마 ‘루터’를 리메이크한 MBC 드라마 ‘나쁜 형사’는 첫 회부터 강렬한 위법으로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아동 성폭행을 저지르고 12년(아동성폭행이 12년이라니, 고작 12년이라니)을 복역하고 출소한 남자가 또 아동을 납치한다. 아이가 감금된 곳을 모르니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우태석은 한 치 망설임 없이 남자의 집 현관문을 망치로 깨고 들어가, 도망치는 놈을 잡아 고층 난간에 대롱대롱 매단다. 살고 싶으면 아이 있는 곳을 말하라고. 보고 있는 시민의 눈이 많지만 개의치 않는다. 결국 아이는 살고, 우태석은 파면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가 파면되었다면 1회에 드라마가 끝났겠지만 이 드라마는 4회까지 방영되었다. 경찰복 벗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어째서 4회까지 경찰인 것일까?
원작 ‘루터’의 루터 역시 4회는 무슨, 5시즌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시청자는 우태석과 루터를 원한다. 시청률 1위라는 숫자가 시청자의 입 대신 말하고 있다. 아주 예전, 라틴어를 모르면 읽을 수 없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해 누구나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한 신부가 있었다. 그의 이름 역시 루터였다. 덕분에 신을 믿는 이는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서도 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는 정말 대혼란에 빠졌을까. 그저 라틴어 조금 안다고 뻐기던 성직자들의 권위가 해체되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살인 면허를 주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007이고. 장기까지 훼손한 아동 성폭행범이 고작 15년을 받고 몇십 억 횡령과 탈세를 저지른 자가 재산 환수도 없이 몇 개월 징역을 사는, 이제야 재산환수를 하러 집에 들이닥쳤더니 알츠하이머 행세를 하는 독재자가 무탈하신 이 나라에서 우태석을 원하지 않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한 명쯤은 나쁜 형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신드롬이고 증후군이고 모르겠고, 그저 2020년에 출소하는 조두순을 위한 나쁜 형사 하나쯤 있었으면. 작가·글쓰기 강사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