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암 투병생활에서 겪은 감정
- 담담하지만 애틋한 시로 표현
- “삶에 대한 의지 선명해짐 느껴”

“암세포는 아직 제 몸속에 살아있죠. 1.5㎝짜리가…. 저의 목표는 이것을 없애는 것이긴 한데, 저도(암세포도) 살 만한지 고대로 가만히 있네요. 의사도 ‘이대로 평생 가면 괜찮은 것’이라며 이 작은 걸 없애려고 굳이 수술할 것 없다고 해요. 스트레스 안 받고 3개월마다 병원 가서 검진받으면서 남은 생 내내 착하게 살아야 해요. 저는. 하하.”

	최근 세 번째 시집을 낸 이정모 시인이 시 쓰기와 암 투병 사이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1950년생인 이정모 시인은 2002년 부산은행 지점장 자리에서 명예퇴직했다. 명퇴한 지 보름 만에 새 사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한 운수업을 곧장 안정된 궤도에 올렸다. 2007년 숙원을 풀었다. 시 전문지 ‘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다. 숨 가쁘게 살아낸 생의 후반전에서 비로소 시를 만나 기뻤다. 2012년 그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간암은 말기는 아니었고 초기는 지난 상태였죠. 중기쯤 됐겠네요. 암세포가 3.5㎝짜리로 제법 컸어요.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색전술로 암 수술을 세 번 받았죠. 말도 못 하게 고통스러웠죠.” 이 시인은 “간암을 잡느라 쓴 약이 이차대전 때 독가스의 원료였다는, 믿기도 어렵고 안 믿기도 힘든 이야기를 들었다. 그만큼 독했다”고 떠올렸다.

수술과 치료라는 고통의 터널을 일단은 통과했다. 삶의 엄중함을 거듭 떠올렸다. 공들여 치료하고 잘 관리하면서 간암을 극복해보기로 마음먹었다. 2015년 봄 통도사 반야암에 들어갔다. 1년 있을 계획을 잡았다. “관계는 다 끊고, 전자기기는 모두 버리고, 딱 두 가지만 들고 암자에 들었습니다. 가족과 연락하기 위한 휴대전화 그리고 시.”

시(詩)와 암(癌) 사이에서 시 쓰며 사는 삶이 시작됐다. 간암 환자 이정모는 시에 기댔고, 시인 이정모는 간암한테서 삶을 잘 간추리고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다. “반야암에서 지낼 때 번잡했던 관계를 끊고, 절제하고, 좋은 공기와 경치 속에 몸을 맡기고, 책과 시를 읽으며, 고요한 가운데 시간을 보낸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건강에도 좋았고 저의 내면에도 좋았습니다.”

2016년 반야암에서 내려왔다. 집을 해운대 장산 근처로 옮겼다. 날마다 어김없이 아침 등산을 하며 생활의 문을 열기 위해서다. 물론 암을 치료하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걷고 산책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단순한 삶을 살았다. 그러자 아침 등산이 그에게 놀라운 선물을 해주었다. “관찰의 소중함을 깊이 알게 됐죠. 산길에서 만난 대상을 오래 들여다보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의 길이 더 환해지는 느낌이라 할까? 생명의 약동이라 해야 하나? ‘생명에 대한 애착과 삶에 대한 의지’가 한결 선명해지는 변화를 느낍니다.”

그는 최근 세 번째 시집 ‘허공의 신발’(천년의시작 펴냄)을 냈다. 이 시집을 ‘생명 애착과 삶의 의지라는 코드’로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이슬’이라는 시의 첫 행은 이렇다. “이슬에게도 주먹이 있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이슬의 삶 에너지를 담은 듯하다. 이슬이 허공을 향해 일갈한다. “-일생에 한 번이라도 너희는 떨어진 이후를 아니? / 그토록 괴롭히던 공중을 향해 / 나의 부재를 맛보아라 / 한 방 주먹을 날리면서.”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