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활동 그림작가와 협업
- 지역 문화재·설화 재해석한
- 탐스러운 동화 10편 담아

‘구쁘다 이야기 열 조각’(호밀밭 펴냄)은 꽤 탐스러운 옛이야기책이다. 이 탐스러운 동화책을 한 꺼풀 더 들추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과정과 기획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구쁘다 이야기 열 조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천하무적 갈봉이’(곽수아 동화작가 작품)를 그린 남서희 그림 작가의 삽화. 호밀밭 제공

이 책에는 경남 고성군의 옛 이야기 10편이 담겼다. ‘고성이 담뿍 담긴 책’이라 해도 좋겠다. 먼저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필진이다. 경남 고성군에서 태어난 동화작가나 고성과 깊은 인연을 맺은 아동문학가가 이 책의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고성이 고향인 필진은 곽수아 (부산아동문학상 수상) 김영호(전 부산아동문학인협회장) 김진숙 (창주문학상으로 등단) 최미선(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아동문학평론 신인상) 동화작가이다. 필진으로 동참한 한국 아동문학계의 거장 배익천 동화작가는 경남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 맑은 산골에 오랜 세월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가꾸며 경남 고성을 멋진 아동문학의 고장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다섯 명이 ‘구쁘다 이야기 열 조각’의 저자이다.

책의 ‘재료’ 또한 눈길을 끈다. 이 책은 고성에 전해져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재료 삼아 현대의 동화작가들이 요즘의 감각에 맞게 그리고 작가들 자신의 색깔을 입혀 다시 쓴 동화 10편을 실었다. 배익천 동화작가가 쓴 ‘용국에서 온 걸인의 발자국’은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411호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 발자국 화석산지에 작가가 상상력과 마음을 입혔다. 곽수아 동화작가가 쓴 ‘천하무적 갈봉이’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도 올라 있는 고성군 삼산면 상촌마을의 갈봉이 이야기를 재료로 활용했다. 소년 천하장사 갈봉이의 착한 마음과 슬픈 삶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최미선 동화작가의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는 고성읍 송학동고분군의 지석묘에 새겨진 북두칠성을 보고 썼다. 국가 사적 제119호 고성 송학동 고분군의 지석묘에는 매우 드물게 북두칠성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김영호 동화작가가 쓴 ‘걸어가는 고자국 산’은 옛날 고성에 자리 잡았던 나라 고자국(고자미동국)과 고성의 명소 거류산을 담았으며, 김진숙 동화작가의 ‘하늘로 오른 상다리’는 ‘한국구비문학대계’에 나오는 ‘옥황상제 옷을 짜던 상족암’을 재료로 했다. 상족암은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바닷가의 절경이자 지질학적인 ‘보물’로 유명하다.

책에 실린 작품들은 대체로 옛이야기의 구수하고 부드러운 숨결을 살리면서도, 익숙한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지 않고 ‘열린 결말’ 형태를 취하거나 상상력의 옷을 입히는 등 개성을 보여준다.

책에 실린 그림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그림작가 김종원 김진영 남서희 추주희 홍석진 씨가 그렸다. 호밀밭출판사 박정오 편집자는 “고성 출신 동화작가들과 부산의 그림작가들이 협업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성군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책은 문화재청 문화재지역 주민공감정책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적극적인 기획과 다양한 협력이 밑거름이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구쁘다’는 “배 속이 허전해 자꾸 무언가 먹고 싶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조봉권 문화전문기자 bgjo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