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살, 본가에서 독립하고 처음 들어간 건물은 옥탑방이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 15만 원을 주면 옥탑 마당과 방 한 칸, 천정 위의 빨래 건조대까지 쓸 수 있었다. 친구들은 자주 내방에 놀러와 김치나 쌀이나 찬거리를 제집에서 훔쳐다 주었고, 나는 그 덕에 월 20만 원으로도 무리 없이 목숨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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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 |
내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술을 사 오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매주 4, 5명이 모여 참치 한 캔을 털어 넣은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TV도 없어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게임을 하거나 서로 퀴즈를 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정답은 출제자 외엔 알 수 없으니 맞출 때까지 머리를 모아 쥐어짜는 일이 흔했지만, 오답이 나올 때마다 우린 배를 잡고 뒹굴며 서로를 비난했다. 정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밤새 놀다 아침을 먹고서야 집에 갈 친구들이었으니까. 옥탑방 다락엔 친구들이 스스로 가져온 칫솔과 베개, 이불이 늘 쌓여있었고, 금요일 아침엔 늘 이불을 꺼내 세탁을 해두었다. 오늘은 친구들이 내 가난한 방에 올테니까. 중고로 8만 원 주고 산 세탁기를 하루 종일 돌려 이불 다섯 채를 다 빨아 햇볕에 보송보송 말리고 나면 손님 맞을 준비가 뿌듯하게 끝났다.
물론 우리에겐 각자의 고민이 많았다. 누구는 부모님이 매일 이혼을 선언했고, 누구는 학교 성적 때문에 고민이었고, 누구는 취업이 되지 않았고, 누구는 생계가 곤란했다. 하지만 주말 저녁 나의 옥탑방에선 깔깔거리고 웃는 밤이 계속되었다. 아무도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절망하지 않았다. 평일에 어떤 지옥이 계속되더라도 주말에 밤새 웃을 수 있다면 이대로 쭉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이 주말 밤샘은 친구들이 각자 취업에 성공하고 부산을 떠나면서 자연히 해체되었다. 그 뒤로 주말을 혼자 견디기 힘들었던 건, 그들이 내 다락에 두고 간 이불 다섯 채와 베개, 칫솔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가장 좋았어, 라고 말하는 대신 또 언제가 더 좋을까, 라고 상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KBS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단순한 콘셉트로 시작되었고, 추석특집으로 2회가 방영되었다. 김숙, 송은이, 김용만, 정형돈, 민경훈이 옥탑방에 모여 집단지성으로 10개의 퀴즈를 맞히고, 야식을 먹는 구성. ‘생각하는 사람의 정확한 자세를 취하세요’ ‘올해 최저임금은 얼마일까요’ 같은 지루한 문제에서도 다섯 명은 자취하는 친구 방에 모인 오랜 친구들처럼 오밀조밀 퀴즈를 웃음이 터지는 방법으로 맞춘다.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가 뭐 어떤지 알 리 없지 않은가. 백 개도 넘는 포즈를 취한 후에야 알아낸 정확한 포즈. 그게 뭐라고 뛸 듯이 기뻐하고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웃는 다섯 명을 보다 나는 저절로 행복해졌다. 나의 스물세 살이 거기 있었다. 현재의 나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지 않고, 주말마다 모임을 갖지도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모임도 집에서 갖지 않는다. 방 세 개에 넓은 거실이 딸린 집에 살고 있지만, 방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친구를 초대해 밤새 술 없는 퀴즈쇼를 하는 일은 아예 없다.
이제는 웃는 일이 벅차다.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각자 쌀과 김치만 조금씩 덜어와 베개를 등에 대고 앉아 펑펑 터지는 웃음과 함께 날려버렸던 방 한 칸은 이제 TV 속에만 있다.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보며 쉴 새 없이 웃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추억 때문일까. 간지럽지만, 참 좋은 날이었다고 아니 말할 수는 없다.
작가·글쓰기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