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유리의 TV…태래비 <22> KBS ‘옥탑방의 문제아들’

친구들 모여 밤새 수다 떨던 어린 날 그 옥탑방 생각나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13 18:48:17
  •  |   본지 19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스물세 살, 본가에서 독립하고 처음 들어간 건물은 옥탑방이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 15만 원을 주면 옥탑 마당과 방 한 칸, 천정 위의 빨래 건조대까지 쓸 수 있었다. 친구들은 자주 내방에 놀러와 김치나 쌀이나 찬거리를 제집에서 훔쳐다 주었고, 나는 그 덕에 월 20만 원으로도 무리 없이 목숨을 이어갔다.

KBS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술을 사 오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매주 4, 5명이 모여 참치 한 캔을 털어 넣은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TV도 없어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게임을 하거나 서로 퀴즈를 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정답은 출제자 외엔 알 수 없으니 맞출 때까지 머리를 모아 쥐어짜는 일이 흔했지만, 오답이 나올 때마다 우린 배를 잡고 뒹굴며 서로를 비난했다. 정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밤새 놀다 아침을 먹고서야 집에 갈 친구들이었으니까. 옥탑방 다락엔 친구들이 스스로 가져온 칫솔과 베개, 이불이 늘 쌓여있었고, 금요일 아침엔 늘 이불을 꺼내 세탁을 해두었다. 오늘은 친구들이 내 가난한 방에 올테니까. 중고로 8만 원 주고 산 세탁기를 하루 종일 돌려 이불 다섯 채를 다 빨아 햇볕에 보송보송 말리고 나면 손님 맞을 준비가 뿌듯하게 끝났다.

물론 우리에겐 각자의 고민이 많았다. 누구는 부모님이 매일 이혼을 선언했고, 누구는 학교 성적 때문에 고민이었고, 누구는 취업이 되지 않았고, 누구는 생계가 곤란했다. 하지만 주말 저녁 나의 옥탑방에선 깔깔거리고 웃는 밤이 계속되었다. 아무도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절망하지 않았다. 평일에 어떤 지옥이 계속되더라도 주말에 밤새 웃을 수 있다면 이대로 쭉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이 주말 밤샘은 친구들이 각자 취업에 성공하고 부산을 떠나면서 자연히 해체되었다. 그 뒤로 주말을 혼자 견디기 힘들었던 건, 그들이 내 다락에 두고 간 이불 다섯 채와 베개, 칫솔이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가장 좋았어, 라고 말하는 대신 또 언제가 더 좋을까, 라고 상상해야 했기 때문이다.

KBS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단순한 콘셉트로 시작되었고, 추석특집으로 2회가 방영되었다. 김숙, 송은이, 김용만, 정형돈, 민경훈이 옥탑방에 모여 집단지성으로 10개의 퀴즈를 맞히고, 야식을 먹는 구성. ‘생각하는 사람의 정확한 자세를 취하세요’ ‘올해 최저임금은 얼마일까요’ 같은 지루한 문제에서도 다섯 명은 자취하는 친구 방에 모인 오랜 친구들처럼 오밀조밀 퀴즈를 웃음이 터지는 방법으로 맞춘다.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가 뭐 어떤지 알 리 없지 않은가. 백 개도 넘는 포즈를 취한 후에야 알아낸 정확한 포즈. 그게 뭐라고 뛸 듯이 기뻐하고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웃는 다섯 명을 보다 나는 저절로 행복해졌다. 나의 스물세 살이 거기 있었다. 현재의 나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지 않고, 주말마다 모임을 갖지도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도 거의 없다.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모임도 집에서 갖지 않는다. 방 세 개에 넓은 거실이 딸린 집에 살고 있지만, 방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친구를 초대해 밤새 술 없는 퀴즈쇼를 하는 일은 아예 없다.

이제는 웃는 일이 벅차다. 그렇게 자연스러웠던, 각자 쌀과 김치만 조금씩 덜어와 베개를 등에 대고 앉아 펑펑 터지는 웃음과 함께 날려버렸던 방 한 칸은 이제 TV 속에만 있다.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보며 쉴 새 없이 웃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추억 때문일까. 간지럽지만, 참 좋은 날이었다고 아니 말할 수는 없다.

작가·글쓰기 강사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2. 2위용 드러낸 기장촬영소…부산 대작영화 길 열렸다
  3. 3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4. 4워터펌프 쏴도 안 나가는 부캉이
  5. 5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6. 6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7. 7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8. 8“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9. 9영도구 문화도시 사업, 간부간 소송다툼도 확인
  10. 10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1. 1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2. 2“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3. 3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4. 4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5. 5與 “미래기금으로 지방정부 지원 축소될 일 없어”
  6. 6‘핵잠수함 특별법’ 국무회의 통과(종합)
  7. 7김도읍 "청와대 가덕도신공항 공사비 증액 '선 계약, 후 특별법 반영'으로 결론
  8. 8“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9. 9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10. 10“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1. 1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2. 2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3. 3亞·유럽게임 대거 참가…지스타 판 커진다
  4. 4삼정기업·삼정이앤시 회생계획 법원 인가…정상화 첫발(종합)
  5. 5도토리 숲 언덕서 ‘휴식 한 모금’…바리스타과 겸임교수 깊은 손맛
  6. 6“기장에 양성자 치료센터 짓자…우주산업 활용도 가능”
  7. 7해양·AI 중심 ‘플라이아시아’ 내달 개최
  8. 8주가지수- 2026년 9월 29일
  9. 9파생상품·해양금융 미래, 부산서 답 찾는다
  10. 10[한 손 뉴스] 수과원, 스마트폰서 AI가 고등어 어장상황 예측 서비스
  1. 1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2. 2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3. 3영도구 문화도시 사업, 간부간 소송다툼도 확인
  4. 4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5. 5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6. 6혈세 쓴 도시재생 거점시설 2년간 텅텅
  7. 7[신통이의 신문 읽기] 친근해진 ‘부캉이’…캐릭터로 그려볼까요
  8. 8부산·울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6명뿐
  9. 9통영 복합해양레저관광도시 조성 순항…도남권역 민자유치 속도전
  10. 10교실로 들어온 ‘북극항로’…지구본 만들며 배워가요
  1. 1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2. 2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3. 3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4. 4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5. 5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6. 6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7. 7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8. 8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9. 9‘세계 최강’ 안세영, 배드민턴 女단식 금메달…아시안게임 첫 2연패
  10. 10이소희·백하나 배드민턴 女 복식 24년 만에 금빛 스매시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부산의 기사식당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정답 없는 가족의 기록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빨래 /심여혜
잡는 법 /김만옥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29일 (음 8월 19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