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필 작가와 나는 얼마 전 촬영한 영화에서 감독과 배우로 처음 만났다. 당연히 영화감독인 줄 알았던 마필 감독은 부산 인디밴드들의 뮤직비디오들을 몇 편이나 촬영·연출했다고 했다. 뭐 어쨌든 같은 영상작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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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필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 페이퍼컴퍼니 제공 |
알고 보니, 꽤 익숙한 음반 디자인과 지역잡지 편집 디자인, 독립 영화 포스터와 공연, 전시 포스터들도 마필 작가의 솜씨였다. 심지어 그래피티 작가로 활동한 이력도 있고 지금은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다. 회사명이 어디서 많이 들어본 꽤 유명한 회사인 것 같다. 주로 뉴스에서 들어본 것 같다. 마필이 운영하는 1인 회사의 이름은 바로 ‘페이퍼컴퍼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마필 작가에 대한 궁금함이 증폭되고 있던 중 불쑥 연락해 부산대학교 후문 쪽에 있는 갤러리를 겸한 그의 작업실에 찾아갔다. 커피도 녹차도 없다며, 뜨거운 물이 담긴 머그잔을 건넨 마필 작가는 과묵해보이던 첫인상과 달리 나긋나긋한 차분한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묘하게 집중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지면이 한정돼 있어 아쉬울 따름이다.
애초에 공부에 뜻이 없었던 학창시절의 마필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래피티 작가로 활동하며 돈을 벌었다. 번 돈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샀다. 돈이 남아 있으면 의뢰가 들어와도 거절해왔다고 했다. 대부분의 경우 그래피티 작업은 불법이고 범죄였다. 어느 날 주인모를 담벼락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마필에게 경찰이 다가왔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 마필에게 경찰은 작품의도를 물어보고, 잠깐 감상하다 떠났다고 한다. 불법이라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그래피티는 생소한 작업이었다. 20대 때는 그냥 열심히 그림만 그렸다.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평생 그림만 그리고 살 수 있을까? 당시 마필이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한 달에 30만 원이었다. 그 정도로 사회성이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래피티는 익명성이 매력이었지만 한국이란 나라에선 그게 잘 지켜지지도 않았다.
좀 더 개인적인 작업을 하고 싶었던 마필은 2014년부터 ‘논리적 후원’이란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도움이 필요한 개인이나, 기관, 단체, 회사, 뮤지션들에게 1 년 동안 무보수로 자발적 재능기부를 시작했다. 좋은 의도로 무보수로 작업을 고수했지만, 간혹 누군가는 오해를 하기도 했고, 어쩌면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반대로 돈을 버는 작업을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하는 건 체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자체판단하고 2015년부터 가상의 회사라는 의미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가상 회사라는 의미와는 달리 사업자등록도 돼 있다.) 편집디자인의 최소단위인 종이를 뜻하는 중의적 의미도 있다.
본격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작업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지역 인디 뮤지션들과 관련된 작업은 후원 개념으로 돈을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밴드 스카 웨이커스의 2집 앨범 같은 경우엔 대중들에게 최초라고 알려진 GD(지드래곤) 보다 먼저 USB 앨범을 시도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작업들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누군가 뭐하는 사람인지 묻는다면 마필작가는 과연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했다. 보통 ‘주민’이라 대답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저 관심사가 다양한 것이고, 관심 있는 일을 진행하며 행복해하는 주민일 뿐이라 한다. 이것, 저것 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매체에 따라서 표현하고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 한다. 문득 새롭게 꽂힌 분야가 있는지 물으니, ‘과학’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물리학을 이해하고 싶어 쉬운 것부터 찾아보고 있는 중이란다. 한참을 수다 떨며 마필 작가를 나름 어느 정도 파악해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실패다. 앞으로 더욱 더 그의 행보를 예의주시 할 수밖에 없겠다. 참고. 페이퍼컴퍼니 홈페이지(https://cargocollective.com/papercompany)
작가·다큐멘터리감독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