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면 바라보는 동물들 그림
- 울퉁불퉁한 질감 표현 인상적
- 아프리카 미술·민화 해학도
- 가나아트부산 신작 32점 전시

황소 한 마리가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기세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현란한 원색 물감을 두툼하게 바른 캔버스는 황소의 거센 콧김이 화면 밖까지 전해질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동물 그림’으로 유명한 사석원(58) 작가의 근작 ‘황소’는 돌파력과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이다. 이 그림이 내걸린 개인전 ‘정면돌파’는 작가의 색다른 인생 전시다. 코뿔소, 사슴, 당나귀 등 동물들의 두려움 없는 표정과 당당한 몸짓을 담은 그림들로 삶에 어린 감회, 청춘 시절의 에너지와 열망을 털어놓는다.

가나아트부산(부산 해운대구 중동)에서 열리고 있는 ‘사석원, 정면돌파’전은 그림 인생을 함께한 동물들의 정면 모습을 화면 가득 담은 전시다. 2010년 외국인 노동자를 테마로 한 ‘하쿠나마타타’ 전시 이후 8년 만에 부산에서 갖는 개인전이다. 평소 호흡과 리듬을 중시하며 다작(多作)을 해온 사 작가는 지난 6개월간 그린 32점의 신작을 내놨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색동 같은 원색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는 1, 2㎝ 두께의 유화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짜내 마티에르(울퉁불퉁하고 풍부한 질감)를 표현하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굵게 그은 선과 질감이 인상적인 그의 그림엔 동양화의 기운생동과 민화 속 해학이 깃들어 있다. 호랑이, 부엉이, 코뿔소처럼 강한 힘을 가진 동물들의 정면 모습에선 응축된 내면의 힘이 느껴진다. 지난 1일 부산 전시장에서 만난 사 작가는 “정면을 응시하는 호랑이의 거역할 수 없는 권위와 용맹함은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저의 모습과 대비된다. 당당하다 못해 고귀하기까지 한 동물의 모습을 흠모해 닮고자 한 열망이 힘 있는 붓질로 이어졌다”고 고백했다.

동물을 그림의 주제로 선택한 것은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과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본가인 서울과 경기 포천의 외가를 오가며 살았는데 그때 포천에서 보았던 부엉이, 소, 노루 등 많은 동물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 미술, 민화에 관심이 많아 화풍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번 동물 그림에도 아프리카 미술의 강렬한 색채와 민화적 요소를 많이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사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현란한 색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서양화의 기법을 차용했고 끊임없는 도전으로 20여 년 동안 미술계의 고정 관념을 깨 왔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최근 새롭게 시도한 화법의 작업을 선보였다. 정교하게 그림을 그린 뒤 두껍게 발라진 물감을 나무판으로 밀어낸 작업이다. 세월을 걷어내듯 물감을 밀어버리자 그림의 채도는 맑고 가볍지만, 뭉개지고 밀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다. 사 작가는 “영원한 창작 에너지는 ‘청춘’이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지웠다”고 했다. 이어 “잡고 있는 것을 놓고, 계속 쌓아온 것을 덜어내고 싶었다. 놓는 연습을 위해 계속 쌓아온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작품 ‘눈보라’는 원색의 붓질로 현란한 전시장에서 담백한 표현이 눈에 띈다. 눈 발이 휭휭 날리는 배경에 어린 사슴무리가 뛰어가는 모습이 서정적이면서도 애잔하다. 고난을 해쳐나가는 청춘의 힘과 의지를 격려하는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휴관일 없음. 관람료 무료. (051)744-2020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