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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가슴에 담아둔 당신의 이야기, 나눌 준비 됐나요 /정광모

모든 밤을 지나는 당신에게- 캐서린 번스 엮음 /알마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1-02 19:50:1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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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말 뉴욕에서 시작된 ‘모스’
-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 솔직히 들려주고
- 청중은 가슴 열고 그들의 삶에 공감
- 감동적 실화에서 삶의 희망·용기 얻어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자손이다. 이야기 나누기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는 더욱 즐겁고 재미도 있다. 자. 이야기 한 편을 들어보자.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더 모스’(The Moth) 행사 장면. 진실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진정한 마음으로 나누며 사람들에게 행복감과 회복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출처 ‘더 모스’ 홈페이지
당신은 아기를 둔 엄마다. 괜찮은 부모 아래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와 인연을 끊었다. 남편은 시인이지만 마약과 술에 절어 있다. 당신도 남편에게 배운 마약 탓에 인생이 엉망이고 아기는 방치됐다. 어느 날 이대로 살 수 없다고 결심하고 마약을 끊고 밤새 금단 현상에 시달린다. 세상이 온통 암흑으로 덮였다고 느낄 때 당신은 예전에 가족이 소개한 뛰어난 종교상담사 번호로 전화한다. 밤은 깊어 새벽 2시. 웬 사람이 부스럭대더니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당신은 당신이 처한 힘들고 지친 사연을 울면서 풀어놓는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네, 그렇군요. 아, 저런, 정말 힘들었겠어요, 마음이 아프겠군요 라고 말하며 몰입하고, 덕분에 당신은 후련하게 가슴에 쌓인 상처를 다 이야기한다. 밤을 꼬박 새워 상담은 이어져 해가 뜨고 있다. 당신은 이 사람, 정말 상담을 잘하는군 생각한다. 그런데 상담자가 뭔가 중요한 사실을 말하겠으니 전화를 끊지 말라고 말한다. 무슨 말일까? 당신은 탁월한 상담가의 말을 기다린다. 그분 말씀은 이렇다. 저기, 말하기가 두려웠는데, 당신은 전화를 잘못 걸었답니다.

   
이야기는 이 책에 나오는 오번이라는 여자가 겪은 실화다. 오번은 전화 상담을 한 다음 날 기쁨으로 가득 찼다. 존재가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우주 어디엔가 완전히 무작위적인 사랑이 있음을 경험하고 그 사랑은 무조건적이었으며 그중 일부가 오번의 몫임을 깨달았다. 오번의 인생은 급회전해서 제대로 된 궤도에 올라선다.

오번이 자기 경험담을 책에 쓴 건 아니다. 오번은 청중 앞에서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행사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행사는 ‘모스’로 불렸고 1990년대 말 뉴욕에서 시작했다. 누구든 무대에 올라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메모도, 원고도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될 뿐이다. 청중은 여러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사랑하고 공감하며 인정한다.

‘모스’ 이야기는 독특하다. 일반적 이야기의 법칙, 즉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어떻게 승리하고 성공했는지 등의 이야기는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고 한다. 잘 다듬어진 농담이나 적절한 경구도 박살 난다. 그 대신 아픈 곳을 드러내고, 어렵고 고된 경험을 하던 순간에 자신이 인간적으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솔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청중의 마음이 움직인다.

이 책은 이야기의 바다 ‘모스’에서 건져 올린 황금 스토리를 묶은 작품집이다.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며, 영화보다 더 영화적임을 책을 읽으면서 깨닫는다. 그러니 소설과 영화여! 현실이란 이야기의 제왕 앞에 무릎 꿇으라.
이야기를 한 편 더 들어보자. 어떤 소년이 시에라리온에서 소년병으로 전투에 참전했고 가족은 전쟁에서 모두 죽었다. 그는 뉴욕의 한 시민에게 입양 와서 학교 아이들과 모의 전투 게임을 한다. 소년은 기가 막힌 전술과 귀신 뺨치는 용병술로 다른 친구를 모두 물리친다. 아이들은 쟤는 어떻게 모의 전투를 저렇게 잘할까 신기해한다. 이기는 건 당연했다. 시에라리온에서는 까딱 실수하면 목숨이 날아가는 전장에서 늘 지냈으니까. 소년은 생각한다. 여기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 친구와 엄마가 죽는 진짜 전쟁이 아니고, 즐거운 전쟁놀이를 하니까.

   
당신이 이야기하고 싶으나 어떻게 전개할지 자신이 없을 수도 있다. 걱정 마시라. 모스의 예술감독이 도와준다. 모스 공연에서는 매번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이 모스 감독과 함께 자기 실화를 다듬고 간추려 발표한다. 당신은 진실된 경험을 지니고 청중 앞에 서면 된다. 그러니 이야기의 자손들이여! 이 밤에 모여 여러분의 삶을 나누자. 우리는 가슴을 열어 그대 이야기에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나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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