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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37> 동래부 무관 이지항의 홋카이도 표류기

동해 표류하다 홋카이도 간 조선 무관 … ‘시’로 일본인 매료시키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30 18:59:02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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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항 타고 가던 강원도행 배
- 큰 바람·파도 때문에 길 잃어
- 북동 방향으로 며칠 흘러가다
- 조선인 최초 북해도 닿아 탐험

- 얼굴색 검은 원주민 아이누인
- 조선 복식·물품 등 문화에 관심
- 日인들 요청에 詩 지어주는 등
- 110일의 경험 ‘표주록’에 기록

조선 사람으로서 최초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를 탐험한 동래 무관 이지항의 활약과 그가 남긴 ‘표주록(漂舟錄)’은 해양 표류 관련 기록으로 매우 높이 평가된다. 한반도인의 관련 기록은 주로 중국이나 한반도 동남쪽으로 표류한 것이 많은 반면, 북쪽 바다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지항(李志恒)의 ‘표주록(漂舟錄)’에 대한 국내외 연구가 다소 있지만, 그 표류 시기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어 혼란이 있으므로 우선 그 정확한 표류 시기부터 고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 에도 시대 홋카이도 남부에 있던 마쓰마에번으로 찾아간 아이누 사람들을 그린 일본의 옛 그림. 박화진 교수 제공
하나는 1756년 4월 출발해 1757년 3월 6일 귀국했다는 설로 ‘표주록’ 원문과 해석본이 수록된 ‘국역 해행총재 Ⅲ’(민족문화추진회, 1975년) 해제에 나온다. 이는 현재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비롯한 많은 매체에 인용되는 가장 일반적인 표류 시기다. 다른 하나는 1696년 4월 출발해 1697년 3월 부산에 도착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설이다. 이는 ‘표주록’ 원문에 ‘병자년 봄 부산포 출발, 정축년 3월 부산포 도착’이라는 간지(干支)를 쓴 데서 기인한 문제다.

조선 시대 조선·일본 표류민은 초량왜관을 통해 서로 신원을 호송하도록 규정돼 있었으므로 초량왜관 ‘관수일기’(일본 측 기록)를 분석한 결과, ‘1697년 윤 2월 6일 에조(蝦夷·홋카이도)에 표류한 조선인 8명을 동래부로 호송하기 위해 정관(正官) 오이시 다키노스케(大石瀧之助) 등 사절단이 초량왜관에 도착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지항의 표류 시기는 1696년 4월부터 1697년 3월 5일(‘왜관관수일기’에는 윤 2월 6일로 돼 있음)까지라는 두 번째 설에 필자는 찬동한다.

■ 표류 중 발견한 울창한 땅

정장을 한 아이누인을 묘사한 옛 그림. 박화진 교수 제공
이지항은 어떤 사람이며 왜 표류하게 됐을까. ‘표주록’에 따르면 그는 이선달(李先達)이라고도 기록되는데 이름은 지항, 자는 무경(茂卿)이다. 그의 선조는 영천 출신으로 동래부에서 살아왔다. 수어청(守禦廳) 군관으로 있다가 본청의 정식 장관으로 임명돼 관품은 6품(品)에 올랐다고 한다. 부친의 상을 당해 고향으로 가 상기를 마치고 병자년(1696년) 4월 영해(寧海)에 왕래할 일이 생겼는데, 부산 사람 공철(孔哲), 김백선(金白善)이 ‘읍에 사는 김여방(金汝芳)과 생선 대량 구입을 위해 배를 타고 강원도에 가는데, 그곳을 지난다’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이에 쌀 서 말과 돈 두 냥을 가지고 출발했다고 한다.

병자년 4월 13일 순풍을 타고 출발했다. 배에 탄 사람은 이지항(선달, 동래부 무관, 50살), 김백선(첨지·부산포 출신·생선 장수· 71살), 공철(비장, 부산포 거주, 생선 장수·33살), 김여방(비장·동래부 거주·생선 장수·35살), 김자복(金自福·사공·울산 성황당리 거주· 海夫·61살), 김귀동(金貴同·격군·울산 성황당리, 해부·41살), 김북실(金北實·격군·울산 성황당리·해부·40살),김한남(金漢男·격군·울산 성황당리·해부·27살) 8명이었다. 이들은 동해(‘左海’로 표시됨)를 돌아 항해를 시작했는데 바람이 많이 불고 순탄하지 않아 포구마다 들러 정박했다.

4월 28일 바람이 조금 순해져 배를 움직였는데 신시(申時·오후 3-5시)께 횡풍(橫風)이 크게 일어 파도가 하늘에 닿을 듯해 대해로 떠밀려 가 몇 날 며칠 큰 바다 가운데서 바람 부는 대로 표류하여 북동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생쌀을 씹어 먹고 약간의 물로 갈증을 풀면서 겨우 목숨을 유지했다. 그러다 5월 12일 미시(未時·오후 1-3시)께 눈 덮인 산과 초목이 울창한 땅을 발견하고 정박했다.

■ 아이누인들의 환대

아이누족을 찍은 옛 사진.
다음 날(13일) 아침 겨우 상륙해 돌아보니 초가 20여 채마다 대구, 청어 등을 매달아 말리고 있었다. 다음 날(14일) 아침 인가를 찾아 가보았다. 이곳은 제모곡(諸毛谷·현, 禮文島)이라는 곳으로 이후 홋카이도 북동쪽 해안을 따라 점모곡(占毛谷)→지곡(志谷)→종곡(宗谷)→계서우(溪西隅)→우보려(羽保呂)→석장포(石將浦)→강차(江差)→송전(松前)에 이르러 마쓰마에 번주(松前藩主)의 융숭한 접대를 받으며 표류한 유래와 경과 등에 대해 여러 질문을 받았다. 에도 막부의 명령으로 마쓰마에서 쓰가루~센다이~에도~오사카~효고~시모노세키~이키~쓰시마를 거쳐 부산에 송환됐는데, 표류 기록은 북해도 최북단 제모곡 표착(5월 12일)부터 마쓰마에 출발(8월 30일)까지 약 110일 동안 체류에 대해 대체로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지항 일행은 홋카이도에서 만난 아이누인들이 얼굴이 검고 풍속이 달라 살해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으나, 아이누인들이 생선 등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바치는 것을 보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져 교류를 시작했다. 아이누인들은 글자로 소통하는 풍습이 없었으며 털가죽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수염이 남녀를 구별하는 수단으로 남자들의 수염은 매우 길어 심지어 주머니를 목에 달아 수염을 넣어 다닐 정도로, 길이로 환산한다면 1.5~1.8m였다.

특히 아이누인은 조선인 일행의 의복과 물품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물물교환을 원했는데, 이지항의 남빛 명주 유의(儒衣)를 비롯해 갓끈의 수정(水晶), 허리에 두른 옥(玉), 뱃사람의 그릇과 무명 홑이불, 보자기 등을 수십 장의 담비 가죽, 여우 가죽, 수달피와 교환할 것을 제시했다. 그리고 남쪽 마쓰마에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었다.

■ 필담 나누며 문물 교류

그리하여 금 채굴을 위해 홋카이도에 와 있던 일본인들을 계서우(溪西隅)라는 곳에서 만났을 때 이지항은 앞의 아이누인들과 달리, 쌀밥을 먹고 잠을 잘 집이 있으며, 의복·그릇·접시 등을 갖춘 점이 왜관의 모습과 비슷했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그리고 마쓰마에 번주를 만나 신원을 밝히고, 표류의 이유와 경로, 조선 풍습 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활발한 필담 문답을 나누었다. 특히 계서우부터 예사치, 마쓰마에번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의 요청으로 이지항이 그들에게 시를 지어준 것이 거의 100여 권이나 됐다고 하며, 이에 마쓰마에 번주는 글씨를 청함이 많다는 것을 듣고 토끼털로 정교하게 만든 대·중·소의 붓과 고급 명주, 고급 종이, 독수리 날개 1미(尾),황금(黃金) 2전(錢),떡·국수·물고기·술 등을 많이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표주록’에 따르면 홋카이도 아이누인들의 조선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뿐 아니라 동래부 무관에 지나지 않던 이지항의 문필력이 홋카이도 일본인들을 매료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는 당시 조선 후기 부산 사람들의 지식과 인문학 수준이 대단하였음을 알려준다.

■ 부산의 해양교류사에 관심을

1696년 부산은 우리나라 해양교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또 한 가지 하였다. 전근대 울릉도와 독도 분쟁에서 국토 수호로 빛난 인물 동래부 수군 안용복을 들 수 있다.

그는 1693년(숙종 19)과 1696년(숙종 22) 두 차례 울릉도 조업 중,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일본으로 잡혀가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아내고 마침내 에도 막부에서 공식적인 사과와 일본인의 출어 금지를 확인받았다. 안용복의 쾌거가 이루어진 해도 1696년이었으니, 흥미롭기 그지없다. 조선 후기 동래부 부산을 중심으로 한 환동해권 해역사회 교류 양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연구가 기대된다.

박화진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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