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극에 입문한 시기는 대한민국이 민주화운동으로 한창 뜨거웠던 1980년대 말 90년대 초다. 시위 인파로 가득한 거리에 나는 연극 포스터를 들고 스쳐 지나갔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 생활도, 학우들이 거리로 나설 때 내 발걸음은 극장을 향했다. 그래서일까. 연극을 하면서 늘 부채 의식 같은 것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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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일터’ 김기영 연출가.(왼쪽), 김민우 연출가. |
시간이 많이 흐른 어느 날 ‘극단 일터’ 김기영 연출로부터 연락이 왔다. 극단 일터는 주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드는 단체이다. 나의 부채의식 때문에라도 기다리던 호출이었으므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대본을 받기 전 머릿속에선 웅변적인 집체극일 거란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받아본 대본 속에는 구호도 선동도 없었다. 잔잔하게 사람 사는 모습이, 서로 아픔을 들키고 같이 밥해 먹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었다.
내가 만난 김기영 연출은 의외로 웅변가도 선동가도 아니다. 이웃집 언니처럼 친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다. 밥상을 차려놓고 아기자기하게 담소를 나누며 먹다 보면 어느 틈엔가 결속감이 만들어지듯 그런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다. 실제로 그이의 작품에는 공연 도중 배우들이 음식을 만들어 관객과 나눠 먹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어느 때는 국수를, 또 어떤 때는 수제비를 끓여 관객에게 나누어 준다.
처음엔 ‘참 성가신 일도 다 벌인다’ 싶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음식이 담긴 그릇이 객석에서 오가는 동안, 한 그릇씩 받아들고 나눠 먹는 동안 서로 생면부지인 관객들끼리 유대감이 생기고, 관객과 무대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눠 먹는 국수 한 그릇, 수제비 한 숟가락의 힘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김기영 연출의 대사는 참 맛깔스럽다. 소리 내 읽다 보면 마치 오랜 기간 내뱉던 말 같다. 사람들이 어딘가에 흘려버린 말들을 몰래 주워다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 꺼내기라도 한 듯이 잃어버린 소소한 사투리 특유의 표현을 찾아내 기가 막히게 글로 차려놓는다.
몇 해 전 부산비엔날레에서 본 그림이 떠오른다. 작품제목은 ‘Propaganda’. 작은 크기의 그림 속에 달랑 꽃 한 송이. 선동은 그렇게 꽃 한 송이로 충분할 수도 있지 않나. 김기영 연출의 작품도 그랬던 것임을 공연을 하고서야 알았다.
얼마 전 성의 없는 연극을 보고 동료 연극인과 대화를 나누다 무릎을 치는 표현을 들었다. “연극하는 이들이 연극은 우습게 봐도 된다. 하지만 관객을 우습게 봐선 안 된다.”
연극이라는 예술 장르에 지나치게 경외감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관객에게 보일 공연에는 최선을 다해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지점에 적합한 연출이 있다면 김민우를 꼽겠다.
그는 참 용감하게도 한때 ‘대중적인 연극’을 만들겠다고 공표한 연출이다. 사실 연극하는 이에게 ‘대중적이다’, ‘상업적이다’라는 꼬리표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작업한 데는, 관객층이 턱없이 얇은 부산에서 지원금 없이 관객 수익으로 가능한 연극 지형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에게는 고정 관객이 아주 많다.
그의 작품이 대중적이라고 해서 그를 얕잡아 보면 곤란하다. 대충 꼼수를 부리거나 적당히 가공된 양념으로 불성실함을 눈속임하는 연출이 아니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계산된 호흡과 절묘한 타이밍, 독특한 조명의 사용, 압도적인 음향효과 등 이른바 ‘김민우 표’라 불리는 개성과 자기만의 미학이 있다.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달려드는 그를 볼 때 가끔 완전주의자를 꿈꾸는 사람 같다.
그와는 참 많이 싸웠다. 아니 솔직히 얘기하자면 내가 많이 괴롭혔다. 작품 속 의미들에 대해 배우로서 동의하지 못할 때 언어로 설득하지 않으면 양보하지 못하겠노라 버티는 일이 많았다. 그는 고집 센 나보다 훨씬 끈질긴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피로감을 숨기고 나를 설득하는 데 아까워하지 않았다. 끝까지 완성을 보고 싶어 하는 그의 작품은 그래서 견고하다.
지금은 그가 세계와 소통하고 확장하는 데 또 다른 길을 모색하고자 잠시 휴지기를 가지는 중인 것 같다. 그가 얼른 동굴 밖으로 나와 칼날 같은 세계를 보여주길 기다린다.
연극인·연극비평지 봄 발행인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