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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34> 델프트의 푸른빛 : 청어와 네덜란드의 번영

‘푸른 물고기’로 거대한 재력 쌓아 … 네덜란드, 세계를 호령하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02 18:57:09
  •  |  본지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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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트해 가득 메웠던 청어
- 15세기 북해로 대거 남하
- 당시 가난했던 네덜란드
- 최대 2년 보관 기술 개발
- 청어잡이 전문 선박도 등장
- 원양어업 통해 주변국 압도

- 푸른색 안료·중국 청화백자 등
- 아시아와 교역한 동인도회사
- 네덜란드 번영의 또 다른 축

1660년 봄, 헨드릭 하멜(1630-1692)은 강진에 있었다. 스무 살에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고국을 떠났던 청년은 삼 년 뒤(1653년), 나가사키를 향하던 중에 태풍을 만나 조선에 표착했었다. 몇 차례 우여곡절을 거쳐 1656년부터 강진병영에 살게 되었는데, 마침 그해에는 오랜만에 호의적인 절도사를 만나 안도하고 있었다.
17세기의 유명한 네덜란드 화 가 얀 베르메르가 그린 ‘델프트 풍경’. 이 그림에 네덜란드의 번 영과 청어 어업 발전상이 숨어 있다.
그때 그의 고국 네덜란드의 델프트에서는, 하멜보다 두 살 연하의 얀 베르메르(1632-1675)가 자신의 고향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풍경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던 베르메르에게 ‘델프트 풍경’은 이례적인 작품이었다. 그것은 델프트 남동쪽에 위치한 콜크 항의 맞은편에서 델프트를 바라본 모습이다.

델프트는 푸른빛이다. ‘델프트 풍경’에는 마르셀 프루스트를 매혹시켰던 찬란한 ‘황색’도 있지만, 베르메르의 다른 작품처럼, 끝내 눈길이 머무는 곳은 푸른빛이다.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터번이 푸른색이 아니라고 상상해보라.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이나 ‘화가의 아틀리에’처럼 베르메르의 작품 곳곳에서 푸른색은 이국적인 신비를 뿜어낸다. ‘델프트 풍경’에도 뭉게구름 사이의 하늘, 운하의 잔물결, 수문 오른편 건물 지붕에 푸른색이 물들어 있다. 또 하나, 오른편에 매여 있는 선박에도.

한적해만 보이는 ‘델프트 풍경’에는 당시 세계를 지배한 네덜란드의 번영과 그 비밀이 담겨 있다. 그 비밀을 풀 첫 열쇠가 바로 오른편에 매여 있던 배 두 척이다. 밑이 널찍한 이들 배는 매년 6월이면 북해(North Sea)로 나아가 청어를 잡던 선박이었다. 그런데 그림을 살펴보면, 왼편에도 몇 척의 선박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른편 선박만이 청어잡이배라 확신할 수 있는가? 아니, 그 전에 청어가 왜 중요한가?

■ 어부 빌렘 벤켈소어와 뷔스 선박

청어 염장법에 일대 혁신을 일 으킨 14세기 네덜란드 어부 빌 렘 벤켈소어( Hilmar Johan nes Backer, 1821)
네덜란드의 번영은 청어라는 물고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중세시대 ‘금요일의 물고기’ 청어는 발트해의 준트해협에 풍부하게 났다. 뤼베크가 ‘한자동맹의 여왕’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작은 물고기 때문이었다(해양문화의 명장면 제4회).

그랬던 청어가 15세기에는 발트해에서 점차 사라지더니 네덜란드의 앞바다인 북해로 이동해버렸다. 유럽의 궁벽했던 이 ‘저지대(Nederland)’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역사학자 티모시 브룩은 네덜란드 청어어업의 성공을 ‘윈드폴(windfall)’, 곧 ‘뜻밖의 행운’이라 표현했다. 소빙기(Little Ice Age)라는 지구적인 기후한랭화로 스칸디나비아와 발트 해에서 나던 청어가 대거 남하한 것이 ‘윈드폴’의 배경이었던 셈이다.

네덜란드 청어어업의 성공신화에 상징처럼 등장하는 것이 ‘빌렘 벤켈소어’라는 어부이다. 그는 14세기 중반 단칼에 청어의 내장을 제거해 통 속에 염장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알려졌다. 이것은 일대 혁신이었다. 기름기 많은 청어는 쉽게 부패했는데, 이 새로운 염장법을 통해 1년 동안 보관이 가능해졌다. 여기에 소금물을 새로 갈면 길게는 2년이나 보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청어의 장거리 교역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청어염장법의 등장은 원양어업을 가능하게 했다. 이제 청어어선들은 잡은 청어를 급하게 연안으로 옮겨 염장할 필요가 없었다. 청어를 잡은 즉석에서 내장을 제거하여 통절임을 했다. 이를 위해서는 더 폭넓은 갑판이 필요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뷔스(buss)’라는 청어잡이 전문 선박이다. 1416년 처음 등장한 뷔스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악천후에서도 조업하면서 염장작업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됐다. 적재량은 80t에서 100t에 달했고, 세 개의 돛대를 장착했다. 뷔스에는 염장 숙련공은 물론이고 통 만드는 기술자도 동승했다. 네덜란드는 이 두 가지의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주변 경쟁국들을 압도했다.

■ 울트라마린과 델프트 블루

네덜란드의 청어 어업을 그린 그림(Roelof van Salm)
네덜란드 어선은 청어 이동경로를 따라 셰틀랜도 제도에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도거뱅크까지 쫓아가면서 조업했다. 네덜란드에서 청어어업은 국가사업으로 그들은 이를 ‘거대어업(Great Fishery)’이라 불렀다. 어선 수는 1560년 1000척, 1610년 1500척, 1620년 2000척에 이르렀다고 한다. 1669년 통계에 따르면 네덜란드에는 3만 명의 어부가 있었고, 청어어업에 수반하는 보존가공업 및 통과 그물 제조업을 포함하면 45만 명이 종사했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북해는 네덜란드의 바다였고, 청어는 네덜란드의 광맥이었으니, 암스테르담은 청어의 뼈 위에 건설됐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리라. 프랑스 박물학자 퀴비에(1769-1832)는 “커피콩, 홍차잎, 열대지역의 향신료, 그리고 비단을 짜는 누에조차도 북쪽 바다에서 잡히는 청어보다 국가의 부에 더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고 했다. 북해 청어로 거대한 부를 일구었던 국가! ‘델프트 풍경’에 보이는 오른편 선박이 바로 네덜란드 번영의 비밀인 청어잡이배 ‘뷔스’이다.

푸른빛으로 돌아가자. 델프트의 푸른빛은 아시아에서 왔다. 베르메르가 그토록 소중하게 다루었던 ‘블루’ 물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나는 청금석을 원료로 하는 울트라마린이었다. 18세기 초 프러시안 블루가 탄생하기 전까지 푸른색 안료는 오로지 동방에서 왔다. 베르메르의 그림들에서 푸른빛이 신비감을 더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델프트에는 또 하나의 푸른빛이 있으니, ‘델프트 블루’로 알려진 청화백자이다. 17세기에 대량의 중국 자기가 유입되면서, 청화백자의 푸른빛은 단숨에 유럽 왕족과 귀족을 매료시켰다. 눈치 빠른 델프트 도공들은 중국 청화백자를 모방해 모조품을 만들었다. 바로 ‘델프트 블루’다. ‘델프트 블루’는 고가의 중국 자기를 살 수 없던 유럽 서민의 수요와 욕망을 충족시켰다. 이들 델프트의 푸른빛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아시아와 교역하던 동인도회사의 존재다. ‘델프트 풍경’에서 왼편에 길게 늘어선 붉은 타일의 지붕이 동인도회사 델프트 지부의 창고이다. 이것이 네덜란드 번영의 비밀을 캐는 두 번째 열쇠다.

■ 조선이 세계와 연결된 방식

델프트에 빛이 쏟아진다. 구름에 흐려진 전경과 달리, 후경에는 햇살이 눈 부시다.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예외 없이 창이 있고, 빛이 들어온다. 연결된 세계 속에서 새롭게 밀려드는 발견들을 해석하려는 열정이다. 이런 빛이 조선에는 투과되지 않았다. 조선의 문은 닫혀 있었고, 외부에서 들어온 하멜이라는 빛도 애써 외면했다. 하멜은 조선에서도 청어를 만났고, 그의 동료는 조선인에게 벤켈소어의 청어염장법을 가르쳐주었다. 하멜이 조난당하고 얼마 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명·청교체로 파괴된 경덕진을 대신해, 일본에 자기 제작을 주문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도공이 만든 ‘일본 자기’가 그림 속 저 붉은 창고에 보관돼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조선은 눈 감았지만, 세계로 연결돼 있었다.

다시 그림으로 들어가자. 저기 로테르담 수문의 다리 위를 베르메르와 동갑내기 친구들, 레벤후크와 스피노자도 거닐었으리라. 5월 햇살이 델프트를 푸르게 비춘다. 자, 이제 닻을 올려라. 푸른 파도 넘실대는 북해에는 델프트처럼 ‘푸른 물고기’가 기다리고 있으리니.

김문기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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