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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의 TV…태래비 <19> KBS2 ‘오늘의 탐정’

약한 것에 강함을 강요하는 순간, 그녀가 속삭인다 “넌 혼자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10-02 18:44:22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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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 휩싸여 자살 부추기는 생령
- 그녀를 잡기 위한 탐정단의 활약
- 결국 약자 돕는게 사람사는 세상

- 스토리·캐릭터·연기 조화 매력적

사람 마음을 교묘히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약점을 잘 알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략하고,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질투해서 파괴한다. 판타지가 아닌 세상에서야 고작 사기꾼이나 사이비 종교 하나쯤 만들겠지만, KBS2 드라마 ‘오늘의 탐정’처럼 판타지 호러블 월드에선 생령에다 온갖 능력을 다 장착해 검거하기도 어려운, 검거할 법도 없는 연쇄 살인범이 된다.
   
KBS 2TV 드라마 ‘오늘의 탐정’ 한 장면. 이 독특한 매력의 드라마는 지금껏 크게 주목받지 않은 배우의 연기 장점만 살리는 데서도 빛난다. KBS 제공
열두 살 소녀가 있었다. 그녀에겐 장애가 있는 남자 형제가 있었고, 모든 걸 견디기 어려워 죽고 싶어 하는 가난한 아버지가 있었다. 휘청거렸던 아버지는 어느 날 아들을 죽이고 자기 자신도 죽인다. 닫힌 방에 소녀 하나만 남겨둔다. 오랫동안 썩어가는 시신을 보며 구원을 기다렸던 소녀는 어느 설화의 악귀처럼, 지금 날 여기서 꺼내주면 누구든 고맙겠다고 생각하다, 누구에게든 보상을 해주겠다고 생각하다, 누구든 죽여버리겠다는 증오의 혼란에 빠진다. 소녀는 구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죽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몸의 나이만 더해간다. 12살의 생령은 20대의 형상으로 ‘약한 것’들을 찾아내 속삭인다. “아들은 네가 짐이 된다고 생각해.” “네가 이런 장애를 입고 뭘 할 수 있겠어.” “넌 네 동생 때문에 인생 망쳤다고 생각하잖아.” 그녀 목소리를 듣고, 그녀를 본 사람들은 차례로 목숨을 끊는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에 묘한 현실감이 드는 것은, 우리도 한 번쯤 이런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네 미래엔 아무것도 없어. 넌 이렇게 끝날 거야. 넌 달라지지 않아. 세상이 널 버렸어. 넌 혼자야. 그러니까 먼지처럼 사라지는 거야. 혹은, 사라져서 모두를 마음 아프게 해서 복수하는 거야, 같은 악의에 가득 찬 목소리들 말이다. 탐정 이다일(최다니엘)은 그녀의 속삭임 때문에 몸이 아픈 어머니를 잃었고, 정여울(박은빈)은 청각장애인 여동생을 잃었다. 둘은 동료를 모아 악귀가 된 그녀를 없애려 동분서주한다.

동료들의 힘도 범상치 않다. 열 살에 신내림을 받고 열다섯 살에 영업을 접은 후 국과수 부검의가 된 길채원(이주영), 사건에서 배제된 뒤로도 자살처럼 보이는 타살 사건들을 계속 수사하는 경찰 박정대(이재균). 이들은 ‘어퓨굿맨’이라는 이다일의 탐정사무소에 모여 계속 그녀를 추적한다. ‘오늘의 탐정’은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와 특이한 등장인물도 재미있지만, 이제껏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배우들의 연기를 장점만 살리는 연출력도 있다. 아역 때부터좋은 연기력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했지만, 대박 작품을 만나지 못한 박은빈이나,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씬스틸러로 눈도장을 찍은 이주영이 그렇다. 극 중에서 이주영은 여성스럽지도, 남성스럽지도 않다. 젠더를 뛰어넘은 국과수 전문의, 성별 같은 걸 지정하는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한 이주영의 캐릭터는 극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다.

   
사람을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으로 나누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습속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속된 사회는 마치 골반 뼈가 부러진 새끼를 버리고 무리를 따라 떠나는 어미 사자처럼 애써 살 것과 못 살 것을 구별하려 한다. 우리가 한사코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곳은 정글이고, 이곳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드라마 속 생령이 속삭이는 것은 모두 우리가 약하다고 지정된 것들에게 붙이는 이름 아닌가.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은 사람에게 약간 도움을 주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이다. 사실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판타지 호러블 드라마의 리뷰가 복지 개선 요구로 끝나야만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약한 것들에게 강함을 강요하지 말길. 그런 정글에 그녀는 어김없이 찾아올 테니까.

작가·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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