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에 보면, 철학을 쉽게 설명하려고 든 비유 중 이런 이야기가 있다. 머리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심한 두통을 느끼는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직관으로 당장 두개골 속으로 공기를 불어 넣으면 두통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머리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친구에게 옆으로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 사람은 뇌출혈로 죽어있다. 책에는 정말 드릴로 뇌에 구멍을 뚫는 우매하면서도 끔찍한 그림이 보인다.
이처럼 직감을 따르는 사람과 달리, 의사는 우리 육체에 대한 보다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갖고, 더 훌륭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때로 아파죽겠는데 의사가 당장 약을 주지 않는 것은, 더 정확한 병의 원인과 부작용 없는 더 나은 치료법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의 설명은 철학의 성격이 바로 이 의사와 같다는 것이다.
그의 이 비유를 갖고 철학을 넘어 신앙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그런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즉흥적으로 당장 위기를 모면하는 방안도 있겠고, 좀 더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방안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경륜으로 무장돼 있다 해도, 이 시공의 한계 속에서 우리 생각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정보가 쏟아져 나오지만, 알면 알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안다’보다는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이 훨씬 많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일어나는 문제의 진짜 원인을 집어내기도 어렵고, 더구나 그것을 해결할 근본적 대답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해결됐다고 만족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이미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다. 무더운 사막 한가운데서, 물 한 모금만 마시면 목마름이 해갈되겠는가?
어떤 여인이 더운 대낮에 우물로 물을 길으러 왔다. 그를 보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그 밑에 담긴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사람들은 자기 속의 갈증을 돈이나 권력, 명예, 사랑 등 온갖 좋은 것으로 채우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만족은 사라지고 다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주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가 주는 물은 다른 물이다. 그 물은 그저 우리의 표피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성격이나 인격 정도를 고치는 것도 아니다.더욱 근본적인 것, 우리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영혼을 치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심어주신다.
그 물은 영혼을 가득 채우며 우리를 지족(知足)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썩고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될 것이다.
두통을 없애기 위해 머리에 구멍이라도 뚫고 싶은 사람,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여인처럼 우물을 찾는 사람에게 영혼 깊은 곳의 목마름을 축여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이 물을 권하고 싶다. “생수 드세요!”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