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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문화현장 <53> 에필로그 : 직장인 밴드 ‘히드락’ 이야기

“또 하나의 삶이 열렸다” 직장인의 유쾌한 일탈

  • 국제신문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18-09-14 19:47:21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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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기술과장·보험인·장례지도자 등 다양한 직업의 6인
- 매주 모여 음악하며 새로운 삶의 활력 느끼고 상처도 치유
- 몸소 즐기는 예술이 곧 생활문화이자 ‘문화 도시’ 만드는 길

부산의 직장인 밴드 ‘히드락(Hydrock)’ 구성원 6명을 한자리에서 인터뷰하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 이들은 반드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연습하기 때문이다. 연습시간에 맞춰 연습장소로 찾아가면 된다. 다만, 히드락의 정기 연습이 매주 수요일 오후 8시부터 밤 10시까지라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히드락을 인터뷰하기 위해 8월 어느 수요일, 밤 10시가 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직장인 밴드 ‘히드락’이 부산 남구 문현동의 뮤직팩토리 동호회 합주실에서 연습을 하다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퍼스트 기타 박종화, 베이스 정현정, 드럼 류상우, 키보드 김도은, 보컬 박중서, 기타 김종환 씨.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밤 10시까지 기다리느니 연습시간 전에 미리 만나 인터뷰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직장인 밴드’다. 구성원들의 퇴근 시간도 다 다르고, 직장도 사방팔방 흩어져 있다. 사전에 모을 수 없다.

연습시간 도중 짬을 내 인터뷰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직장인 밴드’다. 일주일의 한 허리를 베어 겨우 만든 ‘수요일 오후 8시~밤 10시’ 연습시간이 이들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히드락의 소중한 연습시간을 뺏을 수 있는 자, 그 누구인가?

그렇게 지난달 말 직장인 밴드 히드락과 첫 인터뷰를 했다. 연습이 끝나면 곧잘 들르는 히드락의 단골 부대찌개집이 인터뷰 장소였다. 히드락 김종환(47) 대표가 미리 설명했다. “다들 다음 날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하니 뒷풀이는 도시철도 막차를 탈 수 있는 밤 11시 30분을 넘기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인터뷰는 ‘즐거웠다’. 이 팀 특유의 좋은 느낌이 줄곧 샘솟는 느낌이 있었다.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노라니, 서로 할 얘기 다 하고, 음악에 관한 불만도 털어놓고, 은근히 개인연습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하는데 전체 분위기는 묘하게 좋았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오묘하게 화기애애한 ‘케미스트리(chemistry)’가 느껴졌다. 그 비결에 좀 더 다가가고 싶어졌다. 첫 인터뷰를 마치며 “시간이 짧아 내용이 충분치 못했다”는 핑계를 대고 “다음 주에도 한 번 더 만나달라”고 했다. 히드락은 “OK!”라고 했다.

일주일 뒤인 지난달 29일 히드락은 한 멤버가 급한 집안일로 고향에 간 데다 합주실 청소 등이 있어 연습시간을 줄이게 됐다며 약속시간을 밤 10시가 아닌 밤 9시30분으로 30분 당겨줬다. 고마웠다.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직밴’

드럼 류상우(47), 양정현대아파트 기술과장. 기타 김종환(47), 보험사 지에이코리아 새암지사 지점장. 베이스 정현정(44), 감자유학원 원장. 키보드 김도은(44), 미용학원 나래스트 연산점 국비교육 강사. 보컬 박중서(37), 부산시설공단 영락공원 사업단 장례지도사, 퍼스트 기타 박종화(36), 울산 동강병원 소화기내과 과장(소화기내과전문의). 직장인 밴드 히드락의 구성은 ‘다큐멘터리 3일’이나 ‘VJ 특공대’, ‘인간극장’ 같은 데 나와도 좋을 만큼 다채롭다.

이토록 ‘다른’ 히드락의 구성원들은 왜 이토록 힘든 직장인 밴드 생활을 이토록 열심히 이어가는 걸까? 그 원동력과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 이것이 이번 취재의 주제다.

히드락이 속한, 부산에서 손꼽히는 직장인 밴드 동호회 ‘뮤직팩토리’(cafe.daum.net/busanband)는 2000년대 초 활동을 시작했다. 회장·총무·행사분과·팀분과·온라인분과·강습분과를 갖췄고, 매달 회비 3만 원을 내는 회원은 100여 명 선이다. 초심자가 들어오면 수준에 맞는 강습을 연결해주고, 기량이 올라가면 팀에 들어가 활동할 수 있게 돕는다. 또한, 정기공연을 열어 실력을 높일 수 있게 한다. 부산 남구 문현동에 합주실 두 곳(각 합주실마다 연습실이 두 곳씩 있음)을 운영하며, 산하에 13개 팀이 있다. 2011년 출발한 히드락도 그런 팀 가운데 하나다. 동호회의 구성이 꽤 체계적이고 안정감 있다.

히드락에서 드럼을 치는 류상우 씨는 뮤직팩토리 동호인으로 16년째 활동하고 있다. 2011년 출범한 히드락의 창설 멤버다. “환하게 늙자, 잘 늙자, 곱게 늙자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운동도 하고, 몸과 마음을 관리합니다. 그중 ‘직밴’ 활동이 가장 소중하고 보람이 큽니다. 갓 30대가 됐을 때 들어와 드럼을 시작했는데, 한창 때는 밤에 당직 서면서 ‘딱판’을 갖다 놓고 밤새 드럼을 연습했죠. 드럼이 고급스럽게 잘 깔려야 밴드의 음악이 사니까 열심히 했고, 실력이 좋아진 걸 느낄 때 얻는 성취감은 정말 큽니다.”
밴드 생활이 오래된 만큼, 상우 씨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에피소드가 있다. ‘직장인 밴드 생활이 삶에 좋은 이유 100가지’쯤은 식은죽 먹기로 댈 수 있다. 그중 핵심은 이것이었다. “직장인 밴드 생활 속에 또 하나의 삶이 있죠.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독하게 연습하고, 호흡 맞추고, 때로 갈등하고 장벽에 부딪히지만, 서로 맞춰가며, 엄청난 성취감을 얻습니다. 이만한 취미생활이 없죠.” ‘직밴’ 생활 속에 ‘또 다른 삶’, 다시 말해 또 다른 우주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동호회 활동 통해 내가 바뀌더라”

   
직장인 밴드 ‘히드락’의 공연 모습.
히드락 활동의 매력을 묻자, 구성원들은 쉴새없이, 참새처럼 이야기했다. 이렇게 생기 넘치는 사람들은 참 오랜만에 만났다. 보컬 박중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하는 영락공원 장례지도사 일은 ‘감정노동’ 성격이 크고 고인의 시신을 날마다 대하고 만지며 슬픔을 접하는 일인데요, 그런 제게 힘을 줘요. 열심히 연습하고 경연에 나가 상이라도 받으면 아내도 좋아하고 가정이 화목해지죠.” 퍼스트 기타 박종화 씨는 더 ‘센’ 이야기를 들려줬다. “결혼한 지 1년 반만에 이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집에 갔는데, 집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충격이 컸죠. 혼자 집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대학 때 치던 전자기타가 불쑥 나왔어요. 다시 음악을 시작하고 싶은 열망이 솟구쳤죠. 무척 힘들었는데 지금은 음악 덕분에 치유가 됐어요.”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신문에 써도 괜찮겠느냐’고 묻자, “지금은 다 치유됐다. 팩트니까 상관없다”고 답했다.

곁에서 듣던 히드락 대표 김종환 씨가 “종화는 히드락에 갓 들어왔을 때 뾰족했다”고 회고했다. 그러자 종화 씨는 “맞다. 초창기엔 화도 많이 냈고 카톡방에서 욕 비슷한 말도 하고, 많이 뾰족했다. 그러나 음악과 히드락 동료들 덕분에 지금은 많이 둥글둥글해졌다”고 말하며 웃었다.

류상우 씨와 부부인 김도은 씨와 올해 6월부터 히드락에 합류한 정현정 씨도 같은 의견이었다. “집에서 TV를 잘 안 봐요. 음악을 연습해야 하니까. 만약 나 혼자 연습을 제대로 안 해오면 팀 전체 분위기가 깨져요. 삶에 자극과 활력이 주어지니 직장에서도 더 열심히 일하고 태도는 적극적으로 변하더라고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종합하듯 김종환 대표가 말했다. “음악이 딱딱 맞아 들어갈 때면 전율을 느껴요. 그때 팀원들 눈빛을 보면…, 감동이죠.”


#생활문화에 답이 있다

반짝반짝 문화현장을 제53회로 끝낸다. 그 소회와 결론을 말한다면 “생활문화, 시민이 몸소 즐기는 예술문화”라고 답하겠다. 특히 2018년의 ‘반짝반짝 문화현장’은 생활문화 현장을 많이 찾아다녔다. 거기에 문화도시 부산의 답과 질문이 있었다. 부산문화재단과 부산시 등이 최근 생활문화정책을 강화하고 나섰다. 그 길이 맞다. 한 점 망설임 없이 그 길로 가시기를. 그 길에서 문화 부산이 빛난다. 반짝반짝.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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