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도전’ 종영 후 그의 행보는
- 온종일 시민과 만나 퀴즈풀기
- 길위 다양한 사연에 울고 웃으며
-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발휘한다
미리 쓰자면, 이번 리뷰는 TV리뷰라기보다 유재석 전기에 가깝다. 그러지 않고서는 tvN의 새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설명할 수 없다. 나는 그가 데뷔한 1991년부터, 아니 그 이전, 고등학생들을 학교별로 출연시켜 장기자랑 비슷한 걸 촬영세트에서 했던 ‘비바청춘’에서 직접 만든 콩트에 출연했던 1989년부터 그의 팬이었다. 대학개그제로 데뷔한 그가 10여 년 무명 생활을 거치는 동안 나는 가슴 졸이며 그의 성공을 기도했다. 그는 다른 코미디언들과 달랐다. 슬랩스틱을 해도 그루브가 있었고, 애드립을 쳐도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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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이끄는 유재석(오른쪽)과 조세호. tvN 제공 |
물론 그의 20대적 유머감각이 시대와 맞지는 않았다. 나는 좋아했지만. 결국 자신감을 잃고 카메라 울렁증까지 생긴 덕분에, 그는 간간이 TV에 얼굴을 내보이며 무명 아닌 무명을 견뎠다. 1997년 KBS ‘코미디 세상만사’에서 대책 없이 권위적인 백수 남편 역할로 인지도를 조금 쌓은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9년 1월 5일, 당대 최고의 인기프로그램 KBS ‘서세원 쇼’의 코너 ‘토크박스’에서 코미디 역사에 남을 토크를 해낸 후부터였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방송 활동이 뜸할 때 토크쇼 연습을 하기 위해 모든 토크쇼를 다 녹화해두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일시정지한 후 ‘나라면 이때 어떻게 토크를 할까’를 연구하며 연습을 반복했다고 했다.
2000년, 처음으로 메인 MC를 맡은 MBC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을 성공시킨 후 여러 프로그램의 메인을 섭렵했다. 그리고 2005년, 출연자들을 혹사시키는 콘셉트이던 MBC ‘무모한 도전’을 만나게 된다. 2018년까지 계속되다 종영된 국민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전신인 셈이다. ‘무한도전’이 방영된 12년 동안 나는 유재석을 비롯한 모든 출연자의 팬이었다. 팬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신자(信者)’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다 보았음은 물론, ‘무모한 도전’부터 다시보기로 통째로 2번을 더 보았으니 615회를 각각 세 번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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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장면. |
‘무한도전’은 12년 동안 시청자를 웃기고 때로는 울렸다. 사회의 아픔을 함께하고, 은근슬쩍 능글맞게 부당한 정치를 비판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종영 뒤 유재석에게 여러 방송사의 러브콜이 쏟아졌으리라. ‘무한도전’ 촬영은 매회 힘들었다. 단 한 회도 편한 촬영이 없었다. 낯선 길을 달리고, 시민을 만나고, 세트에서도 마냥 토크만 하는 일이 적었다. ‘무한도전’ 종영 후, 그도 얼마든지 더 쉬운 프로그램을 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결국 선택한 것은 조세호와 함께 아침부터 길거리로 나가 오후 6시까지 수많은 시민을 만나며 삶의 이야기를 듣고, 5개의 퀴즈를 맞추는 사람에게 즉시 가장 가까운 ATM기에서 100만 원의 상금을 뽑아주는 ‘유 퀴즈 온 더 블럭’.
촬영 당일 하루 9시간을 거리만 걷는 셈이다. 상금을 자신의 난치병 치료비에 많은 돈을 쓴 부모님께 드리고 싶다는 고등학생이 5문제를 다 맞췄을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삼십몇 년 동안 한자리에서 에어컨도 없이 한 평 잡화가게를 한 어르신이 지난 이야기를 할 땐 가슴이 먹먹했다. 퇴근 후 요리학원에 가는 사회복지사, 점심시간에 짬을 내 거리를 걸으며 커피를 마시는 회사원, 대학교 앞에서 41년 동안 식당과 작은 슈퍼마켓을 꾸려온 할머니, 방글라데시에서 와 10년째 일하는 이주 노동자, 유재석은 그들을 만나고, 퀴즈는 덤이고,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웃고 울고 하며 또다시 그에 대한 신앙을 확인한다. 유느님. 당신은 최고예요. 내가 사는 시대에 활동해주어서 영광입니다. 진심이에요.
작가·글쓰기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