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고전 요약본 아닌 에세이
- 웹툰 작가의 ‘개인적’ 시각 투영
- 따뜻한 그림체와 짧은 글로 표현
- ‘책 읽고 싶은 상태’로 만들어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여행.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눈치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여행이라면, 오래전 외국에서 외국어로 쓰인 책을 읽는 것은 최대한 멀리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닐까.’ 승객 모두 스마트폰과 눈맞춤을 하고 있는 지하철 안에서 홀로 책에 푹 빠져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지금 책 속에서 어떤 시대, 어떤 철학, 어떤 사람과 만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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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툰 작가 ‘의외의사실’이 그의 책 ‘퇴근길엔 카프카를’에 실은 그림과 글. 의외의사실은 이 책에서 고전 문학 작품을 자기의 시선과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민음사 제공 |
‘의외의사실’이라는 저자가 쓴 ‘퇴근길엔 카프카를’은 외국 고전소설 서평집이다. 특이한 점은 그게 카툰 형식이라는 것. 미리 밝혀두지만, 고전 소설을 안 읽고도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요약본 정도로 생각하고 이 책을 구입하면 실망할 게 분명하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작품-체호프 단편선,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카프카의 ‘변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을 읽고 쓴 서평은 맞지만 소설을 읽어내는 시각은 작가 특유의 경험과 감성, 입장이 투영된 ‘순전히 개인적인 것’ 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필명이나 단순하고 부드러운 그림선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겠다. ‘의외의사실’은 레진코믹스에 연재된 인기 웹툰 ‘마루의 사실’ 작가로, 그가 출판사 민음사 블로그에 2년간 연재한 글을 엮은 게 이 책이다. 필요한 직선 말고는 한 군데도 모나지 않은 그의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준다. 딱 ‘책 읽고 싶은 상태’로 만들어준다고 할까.
카툰으로 된 서평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그러나 카툰 서평이 대체로 감성적이고 가볍게 읽히는 현대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이 책은 시간과 싸워 이긴 고전소설이나 그에 준하는 인기를 누린 세계적인 문학작품을 다룬다는 점에서 오히려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어쩌면 결코 이뤄지지 않을 망상과도 같은 꿈인 걸 알면서도, 단 한순간 빛나는 이상을 실현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개츠비의 위대함을,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몽글몽글하게 소환해 보이는 와타나베(‘노르웨이 숲’)의 독백을,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삶의 고통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것만이 삶의 해법이라고 여기는 의사 리유(‘페스트’)의 담담함을 짧은 글과 단순한 그림으로 표현한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잠들기 전에 머리맡의 책으로 손을 뻗는 사람, 엄숙한 서평보다 감성과 감성이 소통하는 독후감을 선호하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는 고전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가 읽은 고전 작품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가면 당신도 뭔가 새로운 형식의 서평을 쓰고 싶을지 모르겠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