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원래 모든 갈등의 핵심은 자기 집착에 있고, 그것을 풀어야 할 더 큰 책임은 강자에게 지워져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의 갈등은 양보나 이해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차원은 아닌 것 같다.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는 철저한 역지사지의 입장전환이 없다면 이 갈등들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로 남을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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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문고를 배우며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했던 공자. 국제신문 DB |
불교적 관점을 적용하자면 이해는 그 수준에 따라 피상적 이해, 심층적 이해, 동체대비적 이해로 등급을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입장에서 시비선악을 판정하는 것은 피상적 이해다. 이 경우, 이해하면 할수록 대상을 소외시키고 물화시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비해 자아의 선입견을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심층적 이해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과연 객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정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객관은 주관적 집착의 교묘한 위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동체대비적 이해는 나와 대상의 경계를 허무는 일로 이루어진다. 나와 대상의 분별을 내려놓고 본래의 한마음으로 돌아가 한 물결로 출렁거리는 것이다. 이해하는 주체와 대상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함께하는 출렁거림만 충만한 이것을 진정한 이해라 할 만하다. 불교가 아니라 해도 진정한 이해는 이럴 수밖에 없다.
옛날 공자가 사양(師襄)에게서 거문고를 배웠는데 열흘이 지나도 새로운 곡을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양이 말했다. “진도를 나가도 되겠습니다.” 공자가 말하였다. “제가 그 곡조를 익히기는 했지만 박자의 묘미를 얻지 못했습니다.” 얼마가 지나 사양이 다시 말했다. “이제 그 박자의 묘미를 알았으니 진도를 나가도 되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가 아직 그것에 담긴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얼마 지나 이렇게 말했다. “이미 그 뜻을 깨달았으니 진도를 나가도 되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제가 아직 그 사람됨을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가 지나고 나서 공자가 말하였다. “마치 조용히 생각하는 듯, 느긋하게 높은 곳에서 조망하며 원대한 뜻이 있는 듯합니다. 제가 그 사람됨을 알고 보니 얼굴이 검고, 키가 크며, 눈길은 먼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마치 왕이 사방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문왕(周文王)이 아니고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사양이 자리를 피해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저의 스승님께서 이 곡의 이름이 ‘문왕의 노래(文王操)’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자는 자아의 울타리를 허물고 주문왕과 하나로 만나는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원리가 그렇다. 운동이 그렇고, 음악이 그렇고, 자연과 관계가 그렇다. 하물며 하늘과 땅 사이 가장 고귀한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이겠는가?
부처님은 보살행을 닦던 시기 진흙탕에 자기 머리칼을 덮어 연등불이 지나가게 하였다. 팔다리를 자르는 가리왕의 칼날을 봄바람처럼 대접하였다. 자아를 내려놓음으로써 본래의 부처와 한 몸으로 만나는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사회관계라 해서 다를 게 없다. 사회적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이들부터 스스로의 벽을 허물어 이해의 마당을 넓히는 그런 고상한 사회가 되도록 불교도들이 앞장설 수도 있지 않을까?
동의대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