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극 전문극단 사라지거나
- 가족극 형태로 살아남거나
- 부산의 학교·학원 밖 아이들
- 공연예술 자유롭게 즐기고
- 경험할 기회 갈수록 사라져
- BIKY도 교육청 등 도움 받아
- 예술 아닌 교육적 목적 짙어
나에게는 조카가 여섯 명 있다. 한때 방학이 되면 어린 조카들에게 주는 선물처럼 어디론가 데리고 가야만 할 것 같은 숙제가 있었다. 막내 녀석 위로는 틈틈이 연극도 보여주고 극장에도 갔다. 이제는 다 커서 그나마 숙제가 가벼워졌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초등학생인 막내조카에겐 좀 소홀해져 내심 늘 미안하다. 고모가 명색이 연극인인데, 이번 여름방학 때는 연극 한 편이라도 보여주자 싶었는데 찾아보니 마땅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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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열린 제13회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BIKY)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영화의전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BIKY 제공 |
예전에는 부산에도 아동극전문극단이 제법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어린이 연극을 보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아동극 전문극단이 ‘동그라미 그리기’ 정도이고 아동극을 하는 극단이 있긴 해도 단발로 생겼다가 채산성이 떨어지면 그마저 해체되는 식이다. 예전부터 이름을 갖고 있는 아동극 제작 극단이 있긴 하나 성인극 제작으로 잠시 소강상태이거나 성인극 단체의 부속 극단으로 교육청이나 공공지원과 연계된 공연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일반 관객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아이들은 방학 때 무얼 하나? 물어보니 학원 간단다. 아동극을 만드는 극단이 사라지거나 ‘가족극’이라는 제목으로 대형 자본이 들어가는 작품이 살아남거나, 둘 중 하나로 점점 나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학교나 학원 바깥에서 우리 아이들이 공연예술을 즐기고 경험할 기회가 매우 적다. 올해 13회를 맞은 BIKY(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도 아이들을 극장으로 오게끔 하는 데 교육계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 대부분 역시 그렇다.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고 교육정책이 뒷받침해주지 않는 이상 어렵다. 그렇다면 학교의 틀 안에서는 어떨까.
학교에서 이뤄지는 연극 경험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학교로 찾아오는 공연을 관람하는 것과 아이들이 직접 연극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약점이 있다. 학교로 찾아오는 공연은 주로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형태라 교육적인 목적성이 짙다.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선행과제라 예술적 완성도를 담보하냐 아니냐는 단체 선정 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실제로 초등학교에 오래 근무한 부장교사와 인터뷰한 결과, 학교로 오는 연극의 질적 수준이 많이 미흡해 아이들이 예술로서 연극을 접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아이들이 연극을 만드는 과정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의 경로가 약간 다르다. 초등학교는 발표회나 학예회를 전제로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중·고교는 앞의 경우에 교육청 주최 각종 연극제에 참가하는 공연이 더해진다. 교육청 주최 연극제 역시 교육적 목적이 강해 전제된 의미에 맞아야 하는 한계가 있다. 예술로서 자유분방한 공연을 기대하긴 어렵다. (순수예술로서 연극에 관심 있는 청소년이 예술성을 전제로 공연할 기회는 그나마 연극협회 주최 청소년연극제가 아직 있어 다행이다.)
교육이라는 틀 안에서 이뤄지는 공연이 지금 아이들이 직·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공연예술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예술 경험이라 하기엔 많이 모자란다. 어린이가 자라 청소년이 되고 청소년이 성인이 되는 사이 예술을 경험할 기회는 점점 줄거나 없어진다는 결론이다. 성인이 된 관객은 기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 예술을 접해야 한다. 교육도, 예술도 없는 현실만 있을 게 뻔하다. 그러므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예술이 필요하다.
예술과 교육 수준은 한 사회의 지표다. 교육은 ‘교육적’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예술을 바라봐야 한다. 예술은 ‘재화 생산만이 미덕인 사회’를 벗어나야 완성될 수 있다. 철학을 토대로 삼은 교육과 예술이 우리 아이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린이 청소년 대상 예술 분야에 전문적인 정책과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진선미·연극인·연극비평지 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