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가수, 작가 등 다락방 모여
- 영화 관련 재밌는 이야기 들려줘
- 집에서 함께 비디오 돌려보던
- 10대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다. 고1 때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반도 다르고 대학도 달랐지만, 우리는 주기적으로 만나 커피숍에서 서너 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
| 영화와 인문과 수다와 대화를 한꺼번에 구현하는 JTBC ‘방구석1열’ 장면. JTBC 제공 |
둘 다 숙맥이라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커피숍을 두 군데나 옮겨가며 조곤조곤 한나절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대화엔 친구 험담이나, 선생님 욕이나, 불행한 고민이 없었다. 고통을 드러낼 줄 모른다는 공통점을 가진 우리의 또 다른 공통점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었기에, 우리는 커피집을 전전하며 영화 이야기만 했다.
 |
| 제14회 차에 초청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오른쪽) 감독이 대담하는 모습. |
블록버스터는 물론, 1970~80년대 B급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했다. ‘스타워즈’로 시작한 이야기는 미국 드라마 ‘스타게이트’ 시리즈로 넘어가 각자 좋아하는 캐릭터 자랑이 됐고, ‘칵테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더라며 누군가가 툭 던지듯 이야기하면, 톰 크루즈가 주연한 모든 영화가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우리는 ‘탑건’보다 그의 데뷔작 ‘생도의 분노’나 판타지 ‘레전드’를 더 좋아했다.
한국 영화를 더 좋아하게 된 건 10년 전에 그녀와 크게 싸우는 바람에 연락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던 즈음이었다. 그녀는 마음 한곳에 묵직한 추가 되어 달렸다. 만나면 영화 얘기부터 했던 우리는 영화관에 함께 간 적이 없다. 영화티켓을 살 돈은 없었기 때문이다. 죄다 그녀의 집이나 내 집에서 비디오 데크로 플레이해서 본 영화였다. 액션 영화도 숨죽이고 봤던 그 수백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우리는 특이하게도 영화와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아이들이었고, ‘엑스파일’과 ‘프렌즈’ 이야기로 밤을 샐 수 있었다.
JTBC 예능 ‘방구석1열’은 바로 우리 같은 영화 오타쿠를 위한 프로그램이다. 가수, 감독, 아나운서, 심리학자, 인문학자, 작가가 다락방에 모여 끝도 없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 의자와 테이블도 없다. 푹신한 빈백에 몸을 묻고 둘러앉아 자세도 제멋대로다. ‘나는 어떤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냐 하면…’하며 각자 좋았던 장면을 이야기하고, 굳이 영화를 어렵게 분석하지도 않는다.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을 초대하거나 배우를 초대해 촬영 뒷이야기를 듣는 재미는 조청에 꿀이다. 15회까지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주로 맥락이 비슷한 두 편의 영화를 한 회씩 다룬다.
‘강철비’와 ‘공동경비구역JSA’, ‘1987’과 ‘택시운전사’, ‘살인의 추억’과 ‘추격자’…. 어려운 말도 하지 않고 미장센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말도 쓰지 않는다. 고정 게스트인 변영주 감독은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어떤 영화든 장점을 찾아낸다. 설사 내가 싫어했던 영화라 하더라도 변영주의 설득에 넘어가 다시 본 영화가 한둘이 아니다.
15회 차를 유료 결제해서 보고 문화강좌를 들으러 가던 어느 날, 나는 기적 같은 일을 광안리 골목 어딘가에서 겪었다. 함께 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지만 10년 전 다투고 연락을 끊었던 그 친구를 엉뚱한 골목 모퉁이에서 만난 것이다. 10년 전 네 살 된 개 한 마리를 키우던 친구는 이제 열네 살이 된 그 개를 산책시키고 있었고,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달려가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리고 껴안아 버렸다. 친구는 얼떨떨해했지만,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녀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다시 만나 밥을 먹기로 하고, 밥을 먹는 날 우리는 아마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 그리고 ‘방구석1열’에 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영화 팬이라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니까. 우리는 정말 지독한 영화팬이었으니까. 앞으로도 쭉.
작가·글쓰기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