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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휘의 시네필] 영화 ‘인랑’…인터넷 여론의 정념과 영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09 18:43:45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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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의 ‘인랑’(2018)은 열화와 같은 혹평의 물결에 휩쓸려 침몰했다. 총 제작비 230억 원을 들인 블록버스터의 흥행 성적은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는 89만 관객에 그쳤고, 인터넷 평점 역시 5점대의 저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정작 논란의 핵심은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발화(發話)의 양상으로부터 발견된다. 예멘 난민에 관련한 배우 정우성의 사회 참여성 발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여론을 비롯해 주연 배우들에 관한 인신공격성 발언에 이르기까지 작품 외적인 면면을 표적 삼은 격정적이고 일방적인 발화들은 단순히 영화 한 편에 관한 좋고 싫음의 표시만으로 예사로이 넘기기 어렵다.
영화 ‘인랑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분명 ‘인랑’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영화다. 주인공의 죄의식과 심리적 공황에 대한 묘사는 빈약하고, 인물 간의 관계 형성을 그리는 멜로드라마는 피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축약돼 있다. 더군다나 남북통일을 가정한 극 중 미래의 정치상이 인물의 동기에 긴밀하게 밀착되지 않다 보니 후반의 액션과 결말에 감정적인 몰입도와 설득력이 실리지 않는다. 영화의 만듦새, 내적인 결함은 얼마든지 비판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이 영화로부터 초점이 떠난 폄하와 비난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조리돌림에 가까운 비난의 언설이 번성하는 가운데, 영화의 면면에 관한 다양한 시선의 접근, 난민 혐오와도 맞물려있는 사안의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예리한 논증과 성찰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이는 영화의 옹호 여부와는 다른 문제다.

흥미로운 건 영화에 관한 단평을 쏟아내는 네티즌들 사이에 흐르는 정념이다. 영화를 둘러싼 의견, 분위기의 대세가 정해지면, 그에 편승해 다른 각도에서 영화를 바라보고 접근한 다른 의견을 묵살하는 걸 당연시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언어학자 월터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서 문자문화 사회에서의 언표(言表)가 정념을 절제한 가운데 이성과 논리에 근간한 토론의 양상을 띠지만, 구술문화 사회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위한 내기와 승부의 양상을 띠며 손쉽게 감정적 싸움으로 몰리게 됨을 지적한다. 공교롭게도 한국의 네티즌 상당수가 보여주는 극단적 언사는 구술문화 사회에서의 언표 양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집단의 의식 공동체를 이룬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배제하는 걸 유희하는 진풍경 속에서 정치적인 옳고 그름의 분별, 냉철한 비평적 시선은 작동할 여지를 잃는다. 여기에는 더 이상 대중지성도, 비평적 담론의 생성도 없다.

공교롭게도 이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 때와도 흡사한 상황의 반복이다. 대중 여론의 발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화에 대한 객관적 비평의 장을 봉쇄했다는 점에서 이 양상들은 매우 닮아있다. 정념의 과잉과 반지성주의, 견해의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집단주의적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다양성과 합리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전제는 차츰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인터넷 여론이 지니고 있었던 ‘공론장’(公論場)의 기능이 마비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다수가 항상 ‘참’과 ‘옳음’을 담보하진 않는다. ‘인랑’을 둘러싼 발화들은 어쩌면 다수의 여론이란 명목 아래 비난의 표적감을 찾으며 미시적 파시즘으로 치달아가는 우리 시대 대중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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