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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29> 상어가죽, 조선의 가죽공예를 대표하다

바다 주름잡던 제왕의 가죽, 조선 왕의 옥새를 감싸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8-07 19:15:20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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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진한지역 패총·고분서
- 발굴된 상어 이빨·척추뼈 통해
- 선사시대부터 어획해 식용 후
- 뼈로 장식품 등 제작 활용 추정

- 모래알 같은 돌기 돋은 가죽
- 거칠고 질겨 다양하게 사용
- 특히 용의 비늘 같은 모습에
- 조선 시대 임금 ‘옥보’ 담는 함
- 장군들 ‘환도’ 칼집에도 쓰여

조선 시대 상어의 한문 표기는 ‘사어’(沙魚, 鯊魚)였다. 모래알 같은 돌기가 상어 가죽 표면에 돋아있어 생긴 말이다. 상어가 사어로 표기되었기에 그 가죽은 ‘사어피(沙魚皮)’ 또는 ‘어피(魚皮)’라 불렸으며, 달리 ‘대랑피(大浪皮)’ ‘교피(鮫皮)’라고도 했다. ‘대랑피’는 말 그대로 하면 ‘큰 파도 가죽’인데, 상어가 큰 바다에 살기에 그렇게 불렸으며, ‘교(鮫)’는 일본에서 상어를 표시하던 한자였다. 조선 시대 상어 가죽은 거칠고 질겨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다. 예컨대 조선 시대 ‘환’이라는 연장은 둥근 나무에 상어 가죽을 감싼 것으로 쇠나 옥 등의 재료를 연마할 때 썼다. 또한 생강이나 감자 등 음식 재료를 갈 때 쓰는 ‘강판(薑板)’에도 상어 가죽을 썼다. 상어 가죽은 안장, 옷장, 안경집, 도장 통 등등 조선 시대 가죽공예에도 널리 쓰였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상어 가죽으로 감싼 조선 시대 옥새함(왼쪽). 조선 시대 왕실의 패검(오른쪽)과 이순신 장검 칼잡이도 상어 가죽을 이용했다. 사진=신명호 교수·국제신문DB
조선 시대 상어 가죽을 이용한 공예품 중 대표적인 것은 왕이나 왕비의 금보(金寶) 또는 옥보(玉寶)를 담는 함이었다. 본래 보(寶)는 당나라 이후 황제의 도장인 옥새(玉璽)를 지칭한 용어다. 중국에서는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통일한 뒤 강력한 황제권력을 추구하면서 옥새를 만들었다. 그런데 옥새의 새(璽) 발음이 사(死)와 비슷하다 하여 당나라 때부터 대신 보(寶) 자를 썼다. 조선에서도 금이나 옥으로 왕과 왕비의 보를 만들었는데, 금보 또는 옥보라 했다. 금보나 옥보를 담는 통은 우리말로 ‘뒤웅이’라고 했다. 고종의 옥새를 담은 뒤웅이의 경우, 소나무로 만든 백골(白骨·뼈대)을 상어 가죽으로 감싸고 붉은색을 칠한 후 각 면에 금니(金泥)로 쌍용을 그렸다. 뒤웅이를 상어 가죽으로 감싼 이유는 상어 가죽이 질길 뿐 아니라 용이라는 왕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었다. 상어 가죽의 모래알 같은 돌기는 당연히 용의 비늘을 연상시킨다. 상어 자체가 바다의 제왕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했다.

■ 제왕의 기상까지 갖춰

   
사진은 해사가 옥포만에 세운 ‘이순신 장검비’ 모습이다.
조선 후기 인물 김려(金鑢)는 진해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1803년(순조 3년)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 어보(魚譜)로 손꼽히는 이 책에는 다양한 물고기의 생태와 쓰임새 등이 실려 있다. 그 중 가래상어인 ‘한사어(閑鯊魚)’에 대해 김려는 진해 어민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가래 상어가 다닐 때는 등의 지느러미만 세우지만, 화가 나면 양옆 지느러미까지 세운다. 그런 상태로 어민이 탄 배 밑을 지나면 배가 잘려나간다. 심지어 거대한 고래의 허리가 잘려나가기도 하고 복부가 찢기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는 진해 어민이 가래상어를 바다의 제왕으로 두려워했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상어 가죽은 용의 비늘을 연상시키며 상어 자체가 바다의 제왕을 연상시키기에 그 가죽으로 뒤웅이를 감쌌다고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도검의 칼집이나 손잡이도 상어 가죽으로 감쌌다.
한국 칼의 전통은 신석기 시대의 돌칼을 시작으로 고조선 시대 비파형 동검, 삼한시대의 환두대도를 거쳐 조선의 환도(還刀)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조선 시대 환도는 칼집에 둥근 고리가 달려 있어 환도라 했다. ‘세종실록’ 오례에 따르면, 조선 시대 칼에는 크게 운검(雲劒)과 패검(佩劍) 두 가지가 있었다. 운검은 왕의 측근 장군이 소지하는 특별 환도였다. 패검은 일반 장군이나 무사가 사용하는 보통 환도였다. 둘 다 환도였지만, 칼집 색깔과 띠에서 차이가 났다. 운검은 칼집을 상어 가죽으로 감싸고, 주홍색 칠을 하며 무두질한 가죽 띠를 썼다. 패검은 칼집을 어피로 감싼 것까지는 운검과 같았지만, 주홍색 대신 검은색 칠을 하고 무두질한 가죽 대신 사슴 가죽을 쓴 것이 달랐다.

   
조선 환도의 칼집에 상어 가죽을 감싼 것은 삼한시대 환두대도 전통을 계승한 것이었다. 중국 요녕성 지역에서 시작된 비파형동검은 칼집을 나무 또는 청동으로 만들고 금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반면 삼한시대 환두대도 칼집은 상어 가죽으로 감쌌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삼한 지역 바다에 상어가 많기 때문이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상어를 위시한 바다 생물이 조각돼 있다. 선사시대부터 울산 지역 사람들이 상어를 관찰하고 어획했음을 뜻한다. 가야, 진한 지역 패총이나 고분에서는 상어 이빨 또는 상어 척추 뼈가 다량 발굴된다. 이를 통해 삼한 지역 사람들이 선사시대부터 상어를 어획해 고기는 식용하고 이빨이나 뼈로 장식품이나 도구를 제작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오늘날 경북 지역에서 널리 애용되는 상어 고기, 즉 돔배기 역시 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어 가죽도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다가 환두대도의 칼집과 손잡이까지 감싸게 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 전통이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 환도의 칼집과 손잡이에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조선 시대 운검 칼집에 주홍색 칠을 한 이유는 주홍색이 군사 또는 전쟁을 상징하기 때문이었다. 조선 시대 국방을 담당한 병조는 하관(夏官)이라고도 불렸는데, 병조가 여름처럼 뜨거운 관청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일 중 전쟁 또는 군사는 마치 여름처럼 뜨겁고 피처럼 격렬한 것이기에 군사를 담당하는 병조를 하관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운검의 칼집을 주홍색으로 한 이유는 칼집의 색을 통해 전쟁 본질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패검의 칼집에 검은색 칠을 한 이유 역시 전쟁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손자병법’에서는 전쟁의 본질을 ‘속임수’라 하였으며, 그 속임수는 ‘깊은 지혜’에서 나온다 하였다. 조선 시대 유교에서 속임수 또는 지혜를 상징하는 색은 검은색이었다. 패검 칼집에 검은색을 칠한 이유는 장군이나 무사가 칼을 뽑기 전 깊이깊이 생각하고, 한 번 칼을 뽑았으면 확실하게 적을 소탕해야 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 이순신 장군의 장검

그런 점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 ‘이순신장검’이다. 보물 326호인 ‘이순신장검’은 아산 현충사에 소장돼 있다. 한 쌍으로 이루어진 이순신장검은 길이가 2m에 가깝다. 환도 형식으로 제작된 이순신장검의 칼집은 상어 가죽으로 감싸졌으며 검은색이다. 그 칼에는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검명(劍銘)이 있어 칼을 대하는 장군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첫 번째 칼의 검명은 ‘석자의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三尺誓天)/ 산하의 색이 돌변한다(山河動色)’이다. 언제 칼을 뽑을지에 대한 장군의 맹세다. 칼은 아무 때나 뽑는 것이 아니다. 외적이 쳐들어오거나 역적이 일어나 나라를 위기에 빠뜨릴 때 뽑는다. 그래서 칼을 뽑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온 천하 색깔은 핏빛으로 돌변한다.

두 번째 칼의 검명은 ‘한바탕 휘둘러 소탕하니(一揮掃蕩)/ 핏물이 산천을 물들인다(血染山河)’이다. 칼을 뽑은 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장군의 맹세이다. 칼을 뽑았으면 적을 섬멸하는 것이 마땅하다. 외적도 사람이고 역적도 사람이지만, 칼을 뽑은 이상 살려둘 수 없다. 천하의 끝이라도 쫓아가 죽여 소탕해야만 한다. 그래서 칼을 한 번 뽑게 되면 온 천하를 피로 물들여야 한다.

   
이렇게 여름처럼 강렬하고, 피처럼 붉은 무사의 일편단심을 한 자루 칼에 담에 상어 가죽으로 감싼 검은색 칼집에 꽂았다가, 조국의 위기 앞에 분연히 뽑아 적을 소탕하겠다는 맹세가 이순신 장군의 마음이자 무사의 마음이었다.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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