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상- 친정엄마의 커피잔
김희정 (44·주부)
엄마가 쓰러지셨다. 꽃샘추위가 끝나고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하던 몇 년 전 봄날의 일이다. 대낮에 욕실에서 나오다 거실에 쓰러졌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집안에는 엄마 혼자뿐이었다. 그때 엄마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정신을 잃지 않고 언제 올지 모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날 근처에 사는 오빠네 부부가 엄마를 발견했고, 119구급차로 병원에 옮겨졌다. 뇌진탕이었다.
일찍 독립했던 나는 다정다감하지 못했으며 무뚝뚝한 딸이었다. 혼자 끙끙 앓아눕는 한이 있더라도 속마음 한 번을 제대로 내비친 적이 없다. 그러나 병상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바다였다. 그때 알았다. 그 시간이 내가 성인이 된 후 엄마와 가장 오래 함께했던 날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엄마와 함께한 추억이 많지 않다는 것을.
엄마를 볼 때마다 나중에, 언젠가 시간이 되면,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자고 했다. 하지만 그냥 말뿐이었다. 엄마와의 여행계획은 늘 먼 미래의 일이었다. 그러다 엄마의 긴 병원생활이 끝난 후에야 미뤘던 일들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함께했던 부산 광안리 여행도 그중 하나다.
부산으로 출퇴근을 했던 내게 광안리는 그리 특별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와 여동생에게는 TV에서나 봤던 장소였다. 광안대교가 보이는 한 호텔을 예약했다. 하룻밤이었지만 오랜만에 여자들끼리만 하는 여행이라 살짝 들떴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백사장을 걷다가 이른 저녁을 했다. 빵빵해진 배를 두드리며 유유자적 걸었다. 사람 구경도 재미가 쏠쏠했다. 잠깐 걷다가 돌아가야지 했는데 마법에 걸린 듯 민락수변공원, 마린시티를 거쳐 결국 센텀시티가 보이는 수영강변까지 이르게 됐다. 그때, 동생이 외쳤다.
“와, 저 집 예쁘다.”
노란 가로등 아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작은 성. 그곳은 카페였다. 들렀다 가자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엄마는 쓸데없는 데 돈 쓴다고 내키지 않아 했다. 기분 한번 내자는 두 딸의 성화를 엄마는 이기지 못했다. 카페 내부에서는 센텀시티 도심과 수영강변이 한눈에 들어왔다. 어두워질수록 낮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이 살아났다. 이 카페는 홍차가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 맛을 모르는 우리는 아메리카노 두 잔과 허브차, 스트로베리 팬케이크를 주문했다. 엄마가 또 나섰다.
“이런 거 밥값보다 비싸다던데, 왜 먹는지 모르겠다.”
“이러려고 돈을 버는 거예요. 힘들게 벌었으면 값지게 써야지. 지금이 그 시간이야.”
카페 바깥이 동화 속 성처럼 보였던 것처럼 카페 내부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한 장면처럼 예뻤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성냥팔이 소녀가 부러워하던 그런 집의 모습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엄마와 이런 공간에서 차를 마신 것도 그 날이 처음이었다. 주문한 커피와 팬케이크가 나왔다. 자동 물개박수. 엄마도 주문 전과 달리 만족스러워하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커피 잔과 허브티 잔, 티 포트가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각종 무늬가 그려진, 도도해 보이는 찻잔들은 볼수록 매력적이었고, 대접받는 기분이 들었다. 하얀 접시 위의 팬케이크는 이미 배가 부른데도 식욕을 자극했다.
“이런 찻잔들은 비싸겠지. 아, 나도 이런 예쁜 찻잔을 갖고 싶다.”
동생과 나는 커피 잔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탐닉했다. 그러자 엄마가 한마디 했다.
“우리 집에도 돈으론 따질 수 없는 커피 잔이 있지.”
“엄마, 그런 잔이 집에 있어요?”
“왜, 기억 안나? 언니 이름으로 엽서를 보내 퀴즈에 당첨돼 받았던 커피 잔!”
생각난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당시 엄마는 매일 아침 방송되는 TV교양프로그램에 퀴즈 정답을 적어 엽서로 보냈다. 처음에는 기대감에 부풀어 보냈고, 어느 날부터는 의무가 됐다. 결국 우리 집 주소와 함께 내 이름이 방송에 호명됐다. 며칠 후, 집에 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은은한 우윳빛의 자기로 만들어진 커피 잔과 받침이 여섯 개 들어있었고 파란색으로 방송사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배송 중 하나는 깨져 다섯 개만 살아남았는데, 이것이 우리 집의 첫 커피 잔이었다. 그 날 이후 우리 집에도 커피가 들어왔던 것 같다. 지금은 믹스커피지만 당시는 유리병에 담긴 커피가 인기였다. 그땐 커피가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달콤할 줄 알았다. 하루는 엄마가 외출한 틈을 타 커피를 마셔보기로 했다. 커피, 프림, 설탕 각각 두 스푼씩 넣고 저었다. 향이 집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맛도 이런 향기 같을 것이라 상상하며 한 모금 마셨다.
“으악~ 퉤퉤!! 이게 무슨 맛이야?”
그땐 약보다 더 썼다. 대체 이런 쓴 물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커피의 쓴맛은 시골사람이었던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당시 우리 집에서 커피 향이 나는 날은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였다. 엄마는 손님이 오면 고이 모셔둔 커피 잔을 꺼내 대접했고, 그 커피 잔은 30년이 넘는 시간을 엄마와 함께하고 있다.
“엄마, 그 오래된 커피 잔을 아직도 갖고 있어요? 버릴 때도 된 것 같은데?”
“멀쩡한 커피 잔을 버리긴 왜 버려! 지금도 그때, 그 색 그대로거든!”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우리가 예쁜 커피 잔 사드릴게요.”
“아니 됐어. 아무리 값비싼 잔을 사준다 해도 난 그 커피 잔을 버릴 생각이 없어!”
“엄마는 그게 뭐라고?”
“그게 뭐긴, 추억이지. 처음 그 커피 잔이 우리 집에 왔을 때부터 특별한 날, 귀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찻잔이야. 나한텐 보물과도 같은 거야. 그런 걸 어떻게 버려?”
엄마 말대로 아직도 그 커피 잔은 은은하면서도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비록 요즘은 믹스커피 찻잔이 돼버렸지만 그 날, 수영 강변의 카페에서 본 커피 잔 못지않게 날로 추억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그 날 엄마의 말을 듣고 친정집에 갈 때마다 그 커피 잔으로 티타임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우리는 엄마의 커피 잔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래서 요즘 더 자주 친정집에 가려고 애쓰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가보처럼 돼버린 그 커피 잔이 과연 누구에게로 갈지 궁금하다.
나는 엄마의 커피 잔이 우리 집 수납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만약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잔에 얽힌 추억을 두고두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중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들도 빼놓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