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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9> 소설가 하창수의 소설집 ‘달의 연대기’

구름 뒤에 숨은 달처럼, 작가는 잊고 있었던 의식을 비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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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7-23 18:49:41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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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시절 문학에 눈 뜬 소년은
- 군대 제대 후 작가의 길을 걸었다
- 자신이 겪은 세상을 담아낸 소설은
- 분주한 현대인의 ‘생각’을 깨운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는 요즘, 태양의 존재감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그만큼은 아니지만, 인간에게 달만큼 익숙한 천체도 없다. 지구인이 최초로 가본 천체이기도 하지만, 달에는 인간의 감정이 이입되어 온 긴 역사가 있다. 옥토끼가 떡방아 찧는 달, 여인네들이 정화수 떠놓고 비는 달, 늑대인간과 흡혈귀의 전설이 있는 달….

달에서 살다 온 때를 그린 소설을 쓴 작가도 있다. 소설집 ‘달의 연대기’를 쓴 하창수 소설가다. 그는 이 소설집을 ‘달에서 살다온 때를 그린 11가지 이야기’라고 했다. 강원도 춘천시 소양강변에서 그를 만났다. 폭염의 기세가 등등했지만, 소양강이 보이는 강변 언덕에는 그나마 바람이 불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동안 더위도 잠시 뒤로 물러났다. 하창수는 1992년 춘천으로 와, 현재 소양강이 보이는 우두동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파트에서 몇 발자국 걸으면 소양강이다. 강을 따라 함께 흐르는 언덕이 작가에게는 산책로이고, 사유로이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하창수 소설가를 소양강변에서 만났다. 그는 최근 달에 관한 작품만을 모아 ‘달의 연대기’를 펴냈다.
■군제대 후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다

하창수는 1960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청산유감’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수선화를 꺾다’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 장편소설 ‘허무총’ ‘1987’ ‘천국에서 돌아오다’ 소설집 ‘달의 연대기’ 등을 펴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윌리엄 포크너’ 등 주요 영미 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했다. 한국일보문학상(1991), 현진건문학상(2017)을 수상했다.

그가 한국문학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큰 형이 자전거 뒤에 박스를 하나 싣고 퇴근했다. 연일 회사로 찾아오는 서적 외판원에게 책을 샀던 것이다. “50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전집 박스를 열었죠.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시작으로 50권을 다 읽고 고등학교에 갔지요.”

대구로 이사를 가서 입학한 학교는 문학명문고로 이름난 대구 대건고였다. 문학은 고매한 것이고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문예반 활동을 하진 않았으나 훗날 시인, 소설가, 문학평론가들이 될 선후배와 동기들을 그 학교에서 만났다. 영남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중 군대를 다녀왔다. “1984년에 제대를 하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군대에서 많은 일을 겪었고, 처음으로 세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총체적인 생각의 전환이 왔던 거죠. 배낭 메고 돌아다니거나, 도서관에서 온갖 문예지 다 읽고, 소설 쓰고…” 그는 졸업하던 1987년에 등단했다. 지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문득, 그가 달에서 살았던 한 시절 이야기였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행위와 행위 사이에는 의식이 있다

   
달의 연대기 - 하창수·2018·북인
소설집 ‘달의 연대기’는 1995년부터 20여 년 동안 발표했던 ‘달’과 관련이 있는 중단편 소설 들을 모은 책이다. ‘달의 거리’ ‘나는 달’ ‘월면보행’ ‘달의 귀환’ ‘달의 사랑’…. 제목에 모두 ‘달’이 떴다. 소설의 무대는 지구이나, 소설 안 어딘가에서 달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 달은 보이지 않지만, 느껴진다. “작품을 이루는 에피소드까지 치면 70% 정도가 제 이야기인 셈이죠.”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야기라기보다 그의 ‘의식’이다. “제가 읽은 소설들은 99%가 이야기였어요. 문득, 그 이야기의 세계가 공허하더라고요. 작품 속 인물들이 이런 저런 일들을 겪는 이야기들, 다 읽고 나면 ‘그래서 뭐?’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있는 ‘의식’에 대한 것이 없는 거에요.” 그렇다면 그의 소설은 ‘의식의 흐름’인걸까.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의식이거나, 의식이 아니거나이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그걸 쓰는 게 저의 소설쓰기 방식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방법이 다른 거지요. 사람의 행위와 행위 사이에는 장강과도 같은 의식이 흐르고 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의 행위, 그 행위들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소설 읽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하창수의 소설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주변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행동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떠올리고 의식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한다. 읽는 사람도 무언가를 생각하고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까맣게 잊었던 옛일이 불쑥 떠오르고,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난다. 마치 구름 뒤에 숨어있던 달이 어느 순간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떠오르다보니 소설을 읽으면서도 머릿속이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했다.

현대인들은 분주하게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쫓기거나, 끌려가거나, 밀리거나, 휩쓸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시간, 일정, 계획, 목표가 가득하다. 그 사이 사이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수도원의 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달력 없이 어떻게 달력에 박혀 있는 날들처럼 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저절로 알게 되었다. 달력은 법칙이지만, 시간은 그 달력의 법칙과 무관하게 흘렀다. 산딸기가 맺히거나 밤꽃이 피는 것은 달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중략) 그것들은 모두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삶이 역시 어찌 매순간 유의미한 행위만으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저절로 그렇게 되어가는 자연처럼, 저절로 떠올랐다가 흩어지고 어딘가 숨어있다 불쑥 찾아와 끝없이 이어지는 의식도 있다.

   
소설집 속 11개의 작품을 읽을 때 ‘달’을 ‘의식’하지 말기를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소설을 읽는 동안 문득 느낄 것이다. 달에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음을.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타나거나 숨는 달처럼, 그 시절 역시 우리에게 그렇게 남아있다. 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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