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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25> 초량왜관 스캔들

남성만 거주 허락된 ‘왜관’, 조선 여인과 금지된 만남에 朝·日간 외교전 최전방 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7-03 18:57:26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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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초기까지
- 외국 유일 일본인 도시 초량왜관
- 임진왜란 이후 가족 거주 제한
- 엄격한 조선인 출입 통제에도
- 숙종 때 ‘왜관 교간사건’ 발생
- 왜관 수장 사건 해결하기 위해
- 꾀병작전·쓰시마번과 직접 교류

한국은 중국 일본과 원시시대부터 해양을 통한 인적·물적 교류가 매우 빈번한 이웃 나라로서 전쟁과 평화가 서로 교차하면서도 국가·민족·관습을 초월하여 성립된 독특한 해양문화권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한·일 양국 간의 활발했던 해양교류 양상을 잘 드러내 주는 것으로 우리는 왜관의 존재를 들 수 있다. 부산포 왜관에 대해서는 “쇄국시대의 일본인 도시로서 에도시대(1603-1867년) 전 기간뿐만 아니라 메이지 시대(1868~1912년) 초기에 이르기까지 외국 땅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도시”(다시로 카즈이, ‘왜관’, 2002)라는 표현에서 살펴볼 수 있듯 일본인 연구자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이와 같이 왜관은 전근대 한일 양국의 정치외교·경제문화 교류 실상을 분석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연구 테마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한국 측 연구는 아직 매우 부족한 형편으로 주로 조선 정부의 왜관 통제 측면에 비중을 둔 연구가 주류를 이루며, 해양 교류 및 상호 교류를 비롯한 왜관 내 생활상 등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 그려진 조선의 ‘부산포초량화관지도(釜山浦草梁和館之圖). 초량왜관 전경을 보여준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출처=부산시·부산대 공동 편집 ‘부산고지도’(2008) 박화진 제공
■ 성 추문 생기면 유배 또는 효시

초량왜관(1678~1870년) 내 사건사고는 사망·절도·싸움·무단외출·의례 분쟁·교간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스캔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나 불명예스러운 평판·소문을 뜻하나, 좁은 뜻에서 섹스 스캔들을 일컫기도 한다. ‘왜관 스캔들’ 중 교간(交奸·조선 후기 일본 남성과 조선 여성 사이의 성관계 사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초량왜관에는 여성이나 가족이 거주하지 않고 400~500명의 일본인 남성만 거주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인의 한양 상경을 금지하여 일본에서 온 사절단 및 상인도 모두 부산포에 설치된 왜관 내에 머물도록 하며 남성만 도래하도록 규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쓰시마번의 명령으로 바다를 건너 왜관에 거주했는데, 그 업무 성격에 따라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거류하면서 왜관 안에서만 머물도록 제한되었다. 그 때문에 조선인 민간인이나 여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하여 왜관 거주 일본인들이 채소·생선·과일 같은 일용 생필품을 사는 새벽시장(매일 아침 왜관 정문 밖에 열린 시장)의 경우, 젊은 여자 상인이 파는 물건은 품질과 관련 없이 매우 인기가 있었다는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왜관 거주 일본인과 동래부의 부산포·초량촌 주민의 교류를 매우 싫어해 돌담이나 설문·복병막(伏兵幕)등을 설치하고 왜관 출입을 통제했다. 만약 일본인과 조선 여성이 성적으로 접촉했을 경우 조선인 관련자는 유배 또는 효시(梟示: 사람들을 깨우치게 하는 뜻으로 죄인의 목을 베어 나무에 매달아 뭇사람에게 보임) 형에 처하고 관련 일본인들도 동률 형벌에 처할 것을 엄히 요구했다. 그러나 대개 왜관 측은 일본인을 쓰시마로 돌려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 1690년의 그때 그 사건

   
1872년 군현지도’ 중 ‘두모진지도’(규장각 소장). 지도 아래 빨간 원 부분이 1690년 7월 7일 밤 분이, 천월 내려놓은 ‘구왜관선창’이다. 현재 부산 동구 수정동으로 추정된다.
한편 조선 후기 한일 양국 문헌에 나타나는 왜관 교간사건은 11차례(1661~1859년)이다. 그중 관련 인물 및 사건 규모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한 1690년(숙종 16년) 사건에 대해, 초량왜관 ‘관수일기’ 기록을 중심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측 대응과 왜관 생활상의 민낯에 접근하고자 한다.

1690년(일본 연호로 원록 3년)년 교간사건은 2월 26일 자 동래부 측 역관(박동지·박첨정)이 초량왜관 재판 히라타 도코로자에몬(平田所左衛門)을 찾아와 “조선인 여자 분이(粉伊) 등이 이테 쇼자에몬의 방에 은닉되어 있다는 고발이 동래부에 접수되어 하루 빨리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전달하면서 왜관 관수에게 전달·처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이날(26일) 이미 조선인 150명 정도가 왜관 바깥을 에워싸고 경비를 시작했으며 28일엔 동래부 군관이 동래에서 내려와 왜관 문 바깥에서 야간 경비를 섰다. 동래부 역관들도 같이 야간 경비에 동참했으며, 사건이 해결되는 1690년 9월 3일까지 ‘관수일기’ 기록이 매일 엄청난 분량으로 그 경위와 처리를 둘러싸고 기록돼 있다.

사건의 진상은 다음과 같다. 1690년 2월 하순 초량왜관에 거주하는 이테 쇼자에몬·이베에(伊兵衛)·한우에몬(半右衛門) 등이 부산의 이진수(李進壽, 사찰에 딸린 종)·권상(權祥)·서부상(徐富祥)과 결탁하여 조선인 여자 분이(좌수영 사령 이명원의 딸)·천월(賤月, 이명원의 누이)·애금(愛今, 사노비)과 간음한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이 발각되자 동래부는 관련자들을 잡아들였으나 분이와 천월이 아직 왜관 안에 머물고 있어 동래부 역관을 왜관에 파견, 빨리 내보낼 것을 독촉하고 동래부 군관 및 경비 대원을 150여 명이나 왜관 주위에 파견·감시했다.

한편 초량왜관 관수는 빗발치는 동래부의 요구에 대해 왜관 내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전혀 발견할 수 없다는 모르쇠 작전을 펴는데 7월 7일 야밤, 약 4개월 반을 초량왜관에 체재한 분이와 천월을 배에 태워 고관(현 부산 동구청 주변) 해안가에 몰래 내려놓았다. 이튿날(7월 8일) 아침 체포된 분이·천월은, 후일 애금·권상·서부상 등과 함께 효시형에 처해지고, 왜관의 일본인 남성 4명은 쓰시마 추방·조선 도해 금지령이라는 비교적 경미한 처벌에 처해져 교간사건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 왜관에 곧장 진입하지 않은 이유?

1690년 왜관 스캔들에 나타난 관수의 흥미로운 태도에 대해 네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이 교간사건 처리를 통해 볼 때 동래부 휘하 군관들이 분이와 천월을 체포하기 위해 바로 왜관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왜관 주위에 경비·감시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치외법권적 공간 개념이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왜관 관수는 동래부 역관의 빗발치는 독촉에 대해 조선·일본은 성신지국(誠信:정성과 신의를 바탕으로 함)이므로 만약 왜관 내에 있다면 반드시 내보낼 것이라 답변한 반면, 왜관 관리 대책회의에서는 조선 여인들이 붙잡힌다면 복잡하므로 못 본 척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셋째, 복잡한 외교문제에 대해서는 꾀병 작전을 쓰고 있다. 이것은 왜관 관수뿐 아니라 동래부 측에서도 종종 이용하는 외교전술로도 보인다. 이 교간사건에 대해 동래부사(2월 28일)를 비롯해 동래부 역관(3월 5일 이후 수차례)·관찰사(3월 27일) 등의 면담 요구에 왜관 관수는 갑자기 지난 밤부터 병이 나 만날 수 없다는 꾀병 작전을 잇달아 쓴다. 넷째, 왜관은 복잡한 외교사건 해결을 위해 비선(飛船,나는 듯이 빠르게 가는 배)을 여러 차례 쓰시마로 파견한다. 이와 같이 외교적인 제반 문제 처리와 무역교류를 위해 빈번한 선박 왕래를 통한 해양 교류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박화진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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