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犬)를 길들여온 역사는 길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동물인 만큼 개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 언어적 표현은 문화 일부로서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인간은 항상 대상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인간의 관점, 인간 사회의 가치관을 투영하며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충성심에 대한 칭찬이 되었든 아니면 짐승이라는 비하가 되었든, 사람을 잘 따르는 개의 습속을 대하는 문화적 인식은 도리어 개라는 프리즘을 관통해서 역으로 ‘인간다움’이라는 수사법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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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에 관한 양면적인 인식을 영리하게 파고든 영화 ‘개들의 섬’. |
웨스 앤더슨의 ‘개들의 섬’(2018)은 버려진 애완견을 찾으러 온 소년 그리고 소년과 동행하며 길들여지는 야생견 이야기다. ‘판타스틱 Mr.폭스’(2009)에서 야생 여우를 기성 질서에 맞서는 반항아이자 유쾌한 잠행자로 그렸던 감독은 사회 질서의 외부로 내몰린 소수자이자 외부자로서 개를 다룬다. 가까운 미래 일본의 도시 메가사키에 신종 독감이 퍼지고, 전염의 원인으로 몰린 개들은 시장의 행정조치와 돌아선 여론에 의해서 쓰레기 폐기장이 된 외곽의 섬으로 버려진다. 폐기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며 힘겹게 생존해가던 개들은 자신의 애완견을 찾으러 섬에 불시착한 소년 아타리의 길동무가 되어 모험에 나서게 된다.
이야기의 바탕은 소년이 개, 원숭이, 꿩과 함께 요괴를 물리치러 간다는 일본의 전래 설화인 ‘모모타로 이야기’(영화의 일본어 제목 ‘이누가시마(犬ヶ島)’는 설화 속 모모타로가 요괴를 물리치러 가는 섬의 이름 ‘오니가시마(鬼ヶ島)’를 살짝 비튼 것이다.), 그리고 동료가 될 싸움꾼들을 모은다는 점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1954)의 전반부를 뒤섞은 것이다.(아타리가 소형 라디오로 트는 옛스러운 곡이 바로 ‘7인의 사무라이’의 메인 테마곡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향해가는 방향은 사뭇 다르다. 정작 소년이 찾는 건 요괴가 아닌 친구이며, 베어야 할 요괴는 개들을 버린 인간들의 이기심이다. 괴물은 언제나 우리의 안에 있다.
‘개들의 섬’은 두 개의 상반된 입장이 충돌하는 영화이다. 죽도록 버려진 유배지에서조차 주인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개들의 반대편에는, 편견과 선동에 휩쓸려 개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고 헌신짝처럼 버린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있다. 인간은 자신만을 지키기 위해 개들과 맺었던 관계를 파괴하고 광기에 몸을 맡기며 ‘짐승’이 된다. 한편 짐승인 개들은 인간과 함께하고 교감하는 관계 맺기의 방식을 회복하고, 때로는 배워감으로써 ‘친구’가 된다.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선을 긋고 타자들을 외부로 쫓아내며 영역을 지키려 하는 인간들은 오히려 그로 인해 ‘비(非)인간’이 된다는 아이러니에 처하는 것이다.
환대받는 반려인 한 편으론 천대받는 짐승이기도 한, 개를 두고 갈리는 인식의 양면성을 ‘개들의 섬’은 아주 영리한 방식으로 파고든다. 개는 일종의 은유이다. 우리는 영화의 개들이 놓인 자리에 십자군이 학살한 이슬람 신도,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피해자, 이민자 등 모든 종류의 ‘타자’들을 대입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개들의 섬’은 역사성에 대한 메타포가 담긴 동화이다. 차별과 배제가 낳은 인류사적 비극을 망각해가는 현재,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실로 아름답고도 통렬하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