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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24> 항구에서 바라본 부산화교

일본 통해 부산 온 화교들… 초량서 다국적 관광명소 일구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26 18:59:01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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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서 활동하던 화상 황야오동
- 부산 일본거류지서 상점 내려다
- 현지 일본인 상인들과 충돌 발생
- 왜관 같은 청관거리 건설 계기돼

- 해삼수출·포목점·음식점 등 운영
- 1920년대 안정적 사회 이뤘으나
- 중일전쟁 등으로 한때 인구 급감

- 6·25 이후 미군·외국 선원 방문
- 외화 흘러나오는 환락가로 호황
- 이젠 동남아인도 찾는 관광지돼

“바닷물이 닿는 곳에 화교(華僑)가 있다”라는 속어가 있다. 대륙의 중국인들이 외국으로 나가려면 바다를 건너야 했고, 도착해 머무른 곳이 다른 나라의 항구였을 터라 생긴 말이다. 동남아화교, 일본화교, 구미화교 모두 그렇다. 그런데 한국화교의 경우 인천항을 통해 건너온 경우가 많지만 만주를 통해 육로로 들어온 사람도 적지 않다. 게다가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 대부분이 푸젠성과 광둥성 출신이지만, 한국화교는 절대다수가 산둥성에서 왔다.

한국화교의 특이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오래 전부터 많은 중국인이 한반도에 거주할 법도 하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국화교 사회는 19세기말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다른 나라의 화교가 수백 년 전부터 현지 권력의 핍박을 받아가며 어렵게 성장한 것과 달리 초창기 한국화교는 청(淸)국의 지원 아래 손쉽게 정착한 특징을 보인다. 해양네트워크와 관련해 부산화교 역사의 단편을 살펴보자.
1900년대의 부산 ‘청관거리’ 풍경(왼쪽). 청관거리는 오늘날 부산 초량 차이나타운특구(상해거리·오른쪽 사진)로 바뀌었다. 조세현 제공
■ 덕흥호사건

청국조계지가 만들어진 계기는 부산에서 발생한 덕흥호(德興號)사건 때문이다. 덕흥호는 부산화교 역사의 시작이라 흥미롭다. 일본 고베에서 공흥호(公興號)라는 무역상점을 하던 광둥 출신 화상 황야오동(黃曜東)이 1883년 11월 직원이던 정씨 형제를 부산에 보내 일본전관거류지 안에 상점을 내려 했다. 덕흥호라는 지점을 열던 중 현지 일본 상인들과 충돌이 일어났다. 일본 영사가 정씨 형제를 강제로 내쫓으려 했으나 이에 불복해 조선상무위원 천수탕(陳樹棠)에게 사건 해결을 요청했다.

결국, 청일 간 외교문제로 비화되면서 청국조계지 건설 문제로 나아갔다. 덕흥호 사건은 평범해 보이지만 상징적 의미가 숨어있다. 무엇보다 부산화교의 기원이 일본화교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이다. 황야오동은 청국에서 온 인물이 아니라 일본 고베에서 활동하던 화상이었으며, 공흥호는 자본금 1만 량 이상을 가진 광둥계 기업이었다. 보통 인천 거주 청상들이 중국에 본점을 두고 조선에 지점을 두는 방식과는 다른 사례이다. 아마도 일본의 나가사키 고베 요코하마 등지에 거주하던 화상들이 일본인들을 따라 부산항에 들어오려던 것으로 보인다.덕흥호 사건은 개항장 부산 인천 원산에 청국조계지가 설립되는 데 결정적인 작용을 했으며, 결국 왜관과 대비되는 청관(淸館)거리가 만들어졌다.

■ 상하이 네트워크

부산화교를 상징하는 건물 부산 동구 초량동 옛 봉래각(옛 백제병원).
조선 거류 청상들은 일본 상인과 경쟁하기 위해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정기 항로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했다. 1888년 3월 마침내 상하이-인천 간 항로가 개설되어 1894년 청일전쟁 전까지 정기 운항했다. 이른바 상하이 네트워크이다. 이것은 19세기 후반 상하이를 중심으로 영국제 면직물을 수입해, 다시 화북지역은 물론 조선 일본 등으로 재수출하는 유통 구조를 말한다. 여기선 화상과 일상의 활동이 중요했다.

당시 부산항은 청상이 동해의 원산이나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인 훈춘 등과 교역할 때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골목이었다. 개항기 화상의 부산 진출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데, 중국 자료에는 부산항을 통과한 화상 명단이 남아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푸젠 상인의 존재는 초기 부산화교의 주류가 산둥계가 아닌 남방계(광둥과 푸젠)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푸젠성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일본 나가사키 등지의 화교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널리 알려졌듯 푸젠인은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며, 일본 화교 사회에서도 광둥인 다음으로 다수를 이룬다.

■ 삼파도와 해삼 수출

중국어에 삼파도(三把刀)라는 세 자루의 칼을 의미하는 말이 있다. 세 자루의 칼이란 식칼(菜刀), 가위(剪刀), 면도칼(剃刀)로 각각 요리, 포목, 이발에 필요한 도구를 의미한다. 화교 다수가 이 세 가지 기술 중 하나를 갖고 있어 외국 생활에서 유용하게 썼다. 부산화교 역시 포목점이나 음식점에 종사하는 수가 많았다. 포목점에는 상하이 등지에서 수입한 삼베나 비단과 같은 직물은 물론 잡화와 식료품이 넘쳐났다. 비단 장수 왕서방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나가사키 등지에서 점포를 운용하던 화상들에 의해 수출도 이루어졌다. 대부분 해삼과 같은 말린 해산물이었다. 조선인들은 해삼을 잘 먹지 않았으므로 화상들은 이를 값싸게 구해 대륙의 요릿집에 팔았다. 조선 시대부터 인삼과 홍삼은 주요 수출품이었는데, 여기에 해삼까지 추가되니 이른바 ‘삼(蔘)’이 오랜 수출 효자 품목이었나 보다. 1920년대부터 부산화교 사회는 산둥 출신 이주민을 중심으로 안정화가 이루어졌으며 중국음식점이 주종을 이루었다. 부산항 매축공사에 동원된 중국인 노동자들이 한몫했다. 하지만 만보산사건과 중일전쟁으로 고국으로 철수해 화교 수가 급감하기도 했다.

■ 충효촌의 기원

부산화교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한국전쟁이다. 부산으로 몰려드는 피란민으로 화교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피란민 대부분이 초량 청관거리로 몰려들었다. 청관거리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다다르자 영주동에 충효촌이 건설되었다. 충효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광둥성 상인 양무민(楊牧民)이란 사람이 목재를 싣고 바다에서 표류하다 선원 몇 사람이 죽었다. 이들이 바다에서 우연히 발견한 빛을 따라 온 곳이 부산항이었다. 빛이 나던 곳인 영주동 야산 자리를 사서 죽은 선원들의 묘지를 썼다. 당시 중화상회에 땅 문서를 맡기고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이 지금의 충효촌 자리라 전한다.

전쟁이 끝난 후 원래 근거지로 돌아가지 않고 부산에 남은 화교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중공군 반공포로가 부산화교의 일부를 구성한 사실도 이채롭다. 냉전시대는 부산화교에게 고향인 대륙을 버리고 가본 적도 없는 대만을 조국으로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에서는 중국인으로, 대만에서는 한국인으로, 심지어 대륙에서는 대만인으로 대접받으며 국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다.

■ 초량차이나타운

1953년 중앙동에 있던 부산역이 대화재로 소실되자 그곳 텍사스촌이 청관거리로 옮겨왔다. 주한미군 감축으로 미군 출입이 줄었지만 부산항으로 들어오던 외국 선원과 미국 군함 병사들이 꾸준히 찾아왔다. 폐쇄적 구조 탓에 도심 슬럼가의 모습이 없지 않았지만, 외화가 흘러나오는 환락가여서 나름대로 호황을 누렸다. 1990년대 초반 러시아와 국교를 맺자 러시아 선박이 부산항에 입항하고 선원과 보따리상들이 대거 부산항으로 유입됐다.

텍사스거리에 러시아어 간판이 걸리고 러시아인을 상대로 한 점포들이 문을 열었다. 다시 1992년 8월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맺어짐과 동시에 한국과 대만 간 국교가 단절됐다. 갑작스런 한중 수교로 대만 국적이던 부산화교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겪었지만, 곧 제2 부흥기를 맞이했다. 현재 부산 초량차이나타운은 동남아 사람들까지 들어오면서 다국적 공간이자 관광 명소로 변화하고 있다. 이처럼 부산화교는 부산항과는 뗄 수 없는 운명의 끈으로 질기게 이어져 있다.

조세현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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