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란시장 이야기 담은 그림책
- 10개월간 오일장마다 찾아 취재
- 현재 겨레말 큰사전 세밀화 작업
- 결혼 후 또다른 터전된 김포시장
- 구석구석 돌다 상인과 대화하고
- 매콤한 비빔국수 먹는 것 즐거워
- 일상 속 풍경·사람 계속 그릴 것
아이들 여름옷, 가방, 싱싱하고 푸른 채소, 곡류, 신발, 달콤한 향을 물씬 풍기는 과일, 해산물, 토종닭, 국숫집….
상품별로 분류한 매장이 아닌 시장은 눈 가는 곳, 발 닿는 곳에서 어떤 물건을 만날지 알 수 없다. 더 재미있다. 다음은 뭘까 기웃거리는 발걸음 위에 여기저기 흥정하는 소리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생생한 즐거움이다. 시장 한 바퀴 다 돌았는데, 눈앞에 나타나는 물건은 여전히 새롭다. 시장 구석구석까지 더 돌아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구경했던 장날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시장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낸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의 김은미 작가를 경기도 김포시 김포시장에 가서 만났다. “책 배경은 모란시장이지만, 김포시장은 제 일상생활의 배경이에요. 김포에서 만나요, 오일장 열리는 날 오세요.” 약속에 맞춰 찾아간 김포시장은 풍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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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책을 펴낸 김은미 작가가 집에서 가까운 김포시장을 찾아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 |
■ 삶의 풍경을 그리다
김은미 작가는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까지 살았던 동네의 시장이 그가 처음 보았던 시장이다. 분당으로 이사한 뒤에는 모란시장이 그의 시장이었다. 2008년 결혼해 김포에서 살면서부터는 김포시장을 다니고 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 좋아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그림책 공부를 했다. ‘한국 생활사박물관’ ‘눈 먼 아비 홀로 두고 어딜 간단 말이냐’ ‘나의 첫 국어사전’ 등의 책에 그림을 그렸다.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는 온전히 그의 기획 의도대로 만들어진 첫 번째 책이다. 현재 그는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 사전 발간 사업에 참가해 세밀화를 그리고 있다.
올해는 그림 전시도 두 번 했다. 첫 전시는 북한 마을이 보이는 김포의 제일 끝자락 보구곶 마을에서 열렸다. 마을의 방공호를 미술관으로 만들어 마을 주민의 일상과 사물을 담은 그림을 전시했다. 두 번째는 아버지의 오래된 사진첩 속에 담긴 인생의 순간과 단편을 담은 그림들을 김포아트홀에서 전시했다.
“되짚어보면 저의 작업은 늘 일상 이야기에 닿아있었어요. 최근 트렌드나, 유행하고 주목받는 것들과는 늘 거리가 있었어요. 주목받지 않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 그 안에 스며든 이야기에 관심이 갔어요. 작지만 더없이 소중한 것, 사소하지만 따뜻한 것, 그런 삶의 풍경에 마음이 끌려 그림 작업으로 이어 왔습니다.” 늘 사람을 바라보는 그가 시장 그림을 그린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함께 시장을 둘러보다가 국숫집에 앉았다. 시장에 오면 그는 매콤한 비빔국수를 즐겨 먹는다. “시장은 제 생각이 닿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장소였어요. 이어질 후속 작업도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풍경을 그리게 될 거에요. 누구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곳에 가서, 듣고, 쓰고, 그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림에 담아낸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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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 -
김은미 지음·2018·온다프레스 |
김은미 작가는 ‘이야기를 그려드립니다’를 위해 모란시장을 10개월여 동안 오일장날마다 찾았다. 그는 시장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썼다. “시장을 유독 좋아해서, 익숙한 곳이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장으로 갔고, 그곳에서 오간 대화들을 풀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부터 파장할 때까지 상인들 옆에 앉아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바쁜 상인들에게 말을 걸기가 겸연쩍어 물건을 사기도 했죠. 상인들이 다들 바쁘시니까, 필요한 물건을 일단 사고 말을 걸었어요. 과일, 사탕, 들기름, 아이 옷…. 시장에 오면 필요한 물건이 눈에 쏙 들어왔으니까요. 나중에는 저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 주시는 분들도 생겼죠.” 시장을 눈과 마음에 담았다. 사진도 찍었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면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람과 사물이 그 안에 있더군요. 사진을 확대해 꼼꼼히 봤죠.”
수채화로 그린 시장 사람들과 장날 풍경 그림 옆에는 이야기가 짧은 글로 실렸다. 첫 장은 대형 파라솔을 설치하는 상인 모습이다. “새벽에 집을 나와 짐을 싣고 장터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천막을 치는 거야.” 차일 아래 가지런히 널어놓은 예쁜 이불 그림 옆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이불 장사는 여름엔 잘 안 되지. 그나마 인견이불이 좀 팔리고 솜이불은 추워야 잘 나가. 이쁘지? 그래도 백화점 납품하는 것들만 가져다 놔서 디자인이 다 괜찮아.” 마지막 장은 비 오는 날 파장 장면이다. “비가 장사 끝날 때쯤 내려서 그나마 좀 팔았지. 비 오는 날은 원래 장사가 잘 안돼. 오늘은 일기예보가 틀리나 보다 하고 있는데 쏟아지더라니까. 떨이로 다 팔았으니까 들어가서 애들 엄마랑 소주나 한잔하고 일찍 자야지. 담주에 뭐 하러 또 와. 할 얘기도 없는데.”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상인들의 말에 두런두런 왁자지껄 시장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시장 구경 제대로 하는 기분이다. “활력이 넘치는 곳, 공기 자체가 살아있는 곳, 언제나 에너지를 받고 오는 곳.” 김은미 작가는 시장을 이런 곳이라 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장이 오래 우리 곁에 머물기를.
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