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해운대의 한 아파트에서 30대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7개월 만에 미라처럼 말라있는 상태에서 발견됐다. 그는 15년 전부터 가족과 관계를 끊고 살았다는데, 이처럼 외롭게 살다가 죽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의 일차적 원인은 본인의 고립된 성향, 정신적 문제 등 개인적인 것에 있으며 가족의 책임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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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봉사원들이 저소득층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그러나 조금 더 눈을 들면 다른 원인이 보인다.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이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이 그것이다. 어느 사회 집단이나 경쟁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지나치다 보면 사회의 무서운 독이 된다. 온통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와 힘을 몰아주는 사회, 이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가 이어지면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는 자연히 사회적 약자가 양산되기 마련이다. 이 중 심약한 이들은 자포자기하는 것이고, 독한 사람들은 묻지마 범죄자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2013년 기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고, 20년간 자살률이 5배 증가하고 특별히 노인 자살률이 폭발적인 증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명경시사상, 자살을 부추기는 사람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 자살의 영이 충만하다는 식의 소위 영적인 해석은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킬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척박한 환경의 당연한 귀결이다. 어느 정치인이나 기업가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당연히 교회에도 책임이 크다. 교회가 복음의 지향하는 본연의 자리에 서지 못했기에 세상을 바르게 돕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에 주신 율법(토라)은 7년마다 오는 안식년을 면제년이라 하여 채권자들에게 채무자의 빚을 탕감하도록 명하고 있다. 50년마다 오는 희년에는 종을 해방하여 자유인이 되게 하고 잃어버린 토지를 무상으로 돌려주었다. 이런 사회 시스템은 누구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 모두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도록 했다.
신약에서 최초로 세워진 예루살렘교회는 이 정신을 이어받아, 가진 자가 자신의 집과 땅을 팔아 궁핍한 자에게 나누어줌으로 교회 내에 가난한 자, 핍절한 사람이 없게 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이야말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드러내는 표지였다.
유대인은 금요일 저녁 안식일이 시작되면 상점마다 문을 닫으면서 조금 전까지 팔았던 상품 중 일정량을 가게 앞 길가에 내놓는다. 필요한 사람, 가난한 사람이 거저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대인 삶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제다카’ 즉 자선과 선행을 실천한다. 국가나 복지제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자신의 삶의 가치에 뿌리내린 제다카를 자발적으로 실천한다.
이제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셈법으로 우리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보자. 얼마나 많이 벌 것인가 보다도 얼마나 많이 나눌 것인가를 계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얼마나 앞설 것인가를 셈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더불어 갈 것인가를 셈하는 것이다. 이런 셈법이 사회를 더욱 살 만한 사회로 만들어 줄 열쇠가 될 것이다.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