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를 넘기도록 3평 남짓한 방을 할머니와 함께 썼다. 할머니는 내 보호자였고, 양육자였고, 룸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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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 MBC TV ‘할머니네 똥강아지’. |
내 낮은 자존감은 할머니에게서 왔다. 할머니는 내 굵은 다리와 곱슬한 머리카락과 큰 덩치와 거북목과 왕성한 식욕이 싫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에미 없는 칠삭둥이 손녀를 떠안은 할머니는 늘 안절부절 했고, 과보호했고, 나와 친어머니의 완벽한 단절을 원했다. 나는 공식적으로 엄마의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것이었다.
mbc tv 프로그램 ‘할머니네 똥강아지’는 어느 집이나 다 할머니라는 사람들이 마냥 퍼주기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암시를 준다. 1, 2회에 방영된 배우 김영옥이나 남능미, 아역 배우 이로운의 매니저 겸 할머니 안옥자는 모두 일반적인 할머니 상과는 거리가 멀다.
언제나 무표정한 김영옥은 손녀에게 상처 주는 말을 여과 없이 툭툭 내 뱉고, 남능미는 딸의 이혼 후 양육한 손자를 지나치게 통제하려 한다. 안옥자는 배우로 활동하는 두 손자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다이어트를 시킨다.
내가 아는 한 할머니는 손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예뻐. 무슨 짓을 해도 예뻐. 내가 책임질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예뻐.” 할머니네 똥강아지’의 할머니들은 그 적당한 거리를 두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김영옥에게 큰손녀는 아낌없이 사랑했던 첫사랑이고, 남능미에게 외손자는 딸이 해내지 못한 양육을 대신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다. 안옥자에게 손자들은 돌봄 대상이자 집안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들이다. 나는 나에게 가장 복잡한 관계의 가족이었던 나의 할머니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할머니의 일흔 살 생일, 아들 손자 며느리가 다 모인 장소에서 할아버지는 ‘쓸데없이 할마이 생일을 챙긴다’라며 연신 타박을 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떨구었고, 누구도 그 폭군을 말리지 않았다. ‘할아버지 생일엔 뷔페 빌려놓고 왜 할머니 생일 갖고 그래요?’라고 외친 건 역시 할머니의 룸메이트였고, 나는 할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어른들’에게 욕을 먹었고, 결국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엉엉 울었다. 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할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어둑한 놀이터로 나를 찾으러 나온 건 할머니 혼자였다. 할머니는 내가 거기 있을 걸 알고 있었다. ‘어른한테 그렇게 대드는 거 아니다’ ‘허구헌 날 저러잖아!’ 버릇없고 드센 손녀를 달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머니는 슬쩍, 이렇게 흘렸다. ‘그래도, 니가 아니면 누가 내한테 그래 주겠노.’ 할머니는 나의 아픔을 알았다. 나도 할머니의 아픔을 알았다. 그래서 서로 비뚤어진 방법으로 사랑했다. 지금도 내 오랜 룸메이트와 나의 관계에 대해 섣불리 언급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체면도 못 차리고 발칵 성을 낸다. 네가 우리 사이에 대해 뭘 아냐고. 우린 서로가 서로의 구원자였다고. 그래서 그토록 서로를 미워하고, 사랑하고, 오랫동안 마음 아파했다고.
훈훈한 장면만 연신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혼자 울었다는 사실을 나는 고백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의 똥강아지였다. 그녀의 아들들을 제치고 가장 사랑받고 싶었던 똥강아지.
그녀에게 묻고 싶다. 가장 사랑한 건 누구였어? 강아지들은 서열경쟁을 하기 마련이니까.
작가·글쓰기 강사
※ 이 기사는 부산시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