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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23> 미역국과 쌀밥, 한국인을 낳고 기르다

상하귀천 구분 없이 모두가 즐긴 한민족 간편보양식 ‘미역국’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19 19:10:0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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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모들 아이 출산 후 먹는 음식
- 중국선 오래전부터 오골계 사용
- 中 문화·의학 받아들인 한반도는
- 이미 미역국 먹는 풍습 자리잡아

- 어미 고래가 먹는 모습서 유래
- 우리 민족 체질에도 잘 맞아
- 신석기 시대부터 식용하기 시작
- 왕실부터 어민까지 모두 애용

- 바닷속 바위서 자생한 미역 채취
- 궁중 진상품 올린 후 전국 유통
- 그 중 최고는 경상도 기장 미역

이덕무는 38살 되던 해 서장관으로 북경에 갔다. 호기심 많던 그는 북경의 이모저모를 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던 중 중국인들에게 건미역을 보여주게 되었다. 당시 조선 사신들이 북경에 다녀오려면 서너 달은 족히 걸렸다. 그 긴 시간 향수를 달래며 헛헛한 속을 채우던 간편 음식이 바로 건미역을 이용한 국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은 뜨끈하게 끓인 미역국에 밥 한술 말아 먹으면 속히 확 풀림을 느낀다.
   
2017년 바다사랑 공모전 수중사진 부문 우수상을 받은 김기준 씨의 ‘쇠미역 터널’의 일부. 국제신문 DB
미역을 본 중국인들은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덕무는 조선에서 미역의 쓰임새를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우선 조선의 산모는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으레 미역국과 쌀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아울러 산모가 미역국을 먹게 된 내력도 설명했다. 옛날 어떤 어부가 새끼를 갓 낳은 어미고래에게 잡아먹혔다. 그가 고래 뱃속에서 보니 미역 잎이 고래의 위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데, 미역 잎이 붙은 위벽의 악혈(惡血)은 모두 물로 바뀌었다. 이를 본 그는 미역이 산후 특효약임을 알아챘다. 천만다행으로 고래 뱃속에서 나오게 된 그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후 산모가 미역국을 먹는 풍습이 퍼졌다는 게 이덕무의 설명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덕무의 손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중 ‘산후계곽변증설(産後雞藿辨證說)’에 실려 있다. 조선과 중국의 산후 풍속이 전혀 다른 이유를 설명한 것이 ‘산후계곽변증설’이다. 변증설에 의하면 조선의 산모는 미역국을 먹지만, 중국의 산모는 닭죽을 먹는다. 수천 년에 걸쳐 교류한 조선과 중국인데 왜 산후 음식 풍속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이유를 이규경은 각각의 풍토에서 찾았다. 명나라 때 ‘본초강목’은 산모에게 좋은 보양식으로 오골계를 들고 있다. 이런 사실로 보면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산모 보양식으로 오골계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산모에게 오골계가 좋다는 사실은 중국 의학을 수용한 우리나라에도 알려졌을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삼국시대 이전에 우리 조상도 중국 의학을 통해 산모에게 오골계가 좋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수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이미 미역국이 산모 보양식으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 숙빈 최씨, 하루에 미역국 열 번
   
부산 기장군 칠암 바닷가에서 어민들이 미역을 말리는 장면.
한반도 지형이 확정된 것은 약 1만 년 전인 신석기시대쯤 부터라 한다. 그때쯤 한반도 주변 바다에는 고래가 아주 흔했다. 그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증거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수십 마리 고래이다. 신석기에서 청동기 시대 작품으로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에 수십 마리 고래가 새겨졌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고래를 면밀하게 관찰, 연구했다는 뜻이나 같다. 그런 관찰, 연구 과정에서 새끼를 갓 낳은 고래가 미역을 먹는다는 사실도 알아냈을 것이고, 미역이 식용 해조류임도 알아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조상은 신석기시대부터 미역을 식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아마 처음에는 바닷가 산모들이 산후 보양식으로 미역국을 먹기 시작했을 터이지만, 그것이 퍼져 우리 조상 전체 풍속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미역이 흔해서이기도 했지만 우리 조상 체질에도 잘 맞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수도 경주는 바다 가까이 있다. 신라왕실의 식자재에는 미역을 비롯한 해산물이 적지 않았다. 통일신라시대 미역은 왕실을 비롯하여 귀족과 평민 나아가 어민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애용하는 식자재가 되었다. 그 같은 풍속은 고려 왕실을 거쳐 조선왕실에 전해졌다. 조선왕실의 경우, 왕비는 물론 후궁도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었다. 영조를 출산한 숙빈 최씨는 해산 한 시간 전쯤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 아이를 낳을 때 필요한 기운을 축적하기 위해서였다. 해산 당일에는 무려 열 차례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 해산 직후 허한 기운을 채우고 신생아에게 필요한 젖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런 사실을 보면 조선 시대 산모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것이 미역국과 쌀밥일 뿐 아니라 신생아가 처음 먹는 모유도 미역국과 쌀밥에서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왕도 미역국과 쌀밥을 자주 먹었다. 조선 시대 왕은 가뭄, 홍수 같은 천재지변 또는 제사나 장례 같은 때 고기가 없는 음식을 먹었는데, 그것을 소선(素膳)이라 했다. 소선의 주재료는 조곽(早藿-올미역), 분곽(粉藿-좋은 미역), 곽이(藿耳-미역귀)에 더해 쌀이었다. 이능화의 ‘조선여속고’에 따르면, 조선 시대 임신부가 있는 민가에서는 짚자리, 기저귀, 쌀, 미역을 장만해 놓고 기다리다 해산하면 미역국과 쌀밥을 마련했는데, 먼저 방의 서남쪽 구석을 정갈히 하고, 상에 미역국 세 종지와 쌀밥 세 종지를 차려 삼신께 제사한 뒤 산모가 미역국과 쌀밥을 먹었다고 한다. 미역국과 쌀밥에 삼신의 축복까지 추가해 산모의 기운을 북돋고 신생아의 만복을 기원했다. 예부터 한국의 어머니들은 미역국과 쌀밥 힘으로 아이를 낳고 길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기장 바다 ‘곽전’은 문전옥답

   
한국인을 ‘낳고 기른’ 미역국.
조선 시대에는 바닷속 바위에서 자생하는 미역을 어민이 공동으로 채취, 가공, 생산했다. 미역이 자생하는 바위는 곽암(藿巖) 또는 곽전(藿田)이라 했다. 곽암은 ‘미역바위’, 곽전은 ‘미역밭’이란 뜻이다. 실제는 미역바위이지만, 단순한 바위가 아니라 마치 문전옥답처럼 소중한 부동산이어서 곽전이라고까지 불렸다. 논밭에서 생산되는 쌀과 콩이 단순한 곡식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주식이었듯, 곽전에서 나는 미역은 단순한 해조류가 아니라 산모의 보양식이자 신생아의 모유 밑천이었다.

미역은 벼나 콩처럼 1년생 식물이다. 봄에 일찍 생산되는 미역은 조곽(早藿-올미역)이라 하고, 제철 여름에 나는 미역은 감곽(甘藿)이라 했다. 전통시대 미역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기세(磯洗)’ 작업이었다. 기세란 ‘바위를 깨끗이 씻는다’는 뜻으로 미역바위에 붙은 잡초를 제거하는 공동 작업이었다. 마치 논밭 잡초를 제거하는 김매기작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출렁이는 바닷물 속에서 하는 기세는 고되고 위험했다. 어민들은 함께 노동요를 부르며 그 고되고 험한 작업을 이겨나가곤 했는데, 노랫말에 담긴 소망은 풍년을 고대하는 농민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예컨대 기장의 기세작업 노랫말은 이랬다.

“어이야 어이샤 호마리 찍고 호마리 찍고/ 이 돌을 실글(닦으)려고 찬물에 들어서서/ 바다의 용왕님네 굽이굽이 살피소서/ 나쁜 물은 썰물 따라 물러가고/ 미역 물은 밀물 따라 들어오소/ 백석같이 닦은 돌에 많이많이 달아주소/ 어이샤 어이샤 호마리 찍고 호마리 찍어/ 내년 봄에 미역 따서 풍년 되어 잘살아 보세.”

   
조선 팔도 곽전에서 생산된 미역 중 최상품은 궁중 진상품이 되었다. 조선 시대 가장 많은 종류의 미역을 진상한 곳은 경상도였다. 강원도와 전라도에서는 조곽과 분곽을 진상했고, 함경도에서는 조곽을 진상했지만, 경상도에서는 조곽과 분곽은 물론 곽이(藿耳)까지 진상했다. 경상도 미역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기장 미역이었다. 궁중 진상품을 제외한 미역은 농촌, 산촌, 도시 등 조선팔도 백성들에게 돌아갔다. 저 멀리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의 어머니들은 왕실부터 어민에 이르기까지 상하귀천 구분 없이 모두가 미역국과 쌀밥 힘으로 아이를 날고 길렀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한국인을 낳고 기른 것은 미역국과 쌀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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