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숲이 있다. 호수에 비친 숲 그림자가 햇빛을 반사해 유난히 반짝인다. 겨울이 끝나가는 계절, 소복했던 눈이 녹기 시작하고 봄 냄새 나는 바람이 양 볼을 간지럽힌다. 메말랐던 마음도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감각이 녹아내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과 다시금 연결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존재들이 무감각에서 깨어나 점차 눈을 뜨는 해빙’의 순간은 곧 ‘느낌의 0도’이자 삶의 길을 찾는 진단의 시작이 된다.
저자는 방향을 상실한 시대에 답을 찾기 위한 기본 덕목으로 완전히 해빙된 시적 감수성과 생태적 상상력의 회복을 제시했다. 느낌의 0도는 ‘남다르게 예민한 시적 감수성과 생태적 상상력을 지닌’ 여덟 명 작가를 통해 이 시대가 직면한 문제부터 찾아낸다. 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을 통해 우리가 걷는 길을 반성하고, 경제학자 E.F. 슈마허를 통해 ‘시간의 변화와 함께 노동도 삶의 기쁨에서 생존을 위한 노역으로 변질되었’음을,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통해 ‘저항할 때 비로소 자유인으로 살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저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문명의 파괴적인 측면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생태적 관점과 시적 감수성이라는 말이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다. 지나치게 근본주의적이고 ‘나이브’하며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라 예단할 수 있다. 그러나 치유를 견인하는 풍요로운 상상력이 예상보다 훨씬 단단하게 우리의 구체적 현실과 엮여있다. 문학에 담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성찰을 예민하게 나눠온 저자의 감수성 덕분이다. 0도에서 시작할 우리의 감각은 이 같은 답을 얻을 수 있겠다. 저자가 책에서 제시한 표현을 살짝 바꿔서 써보면 이렇다. ‘살아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나처럼 너도 소중한 생명임을 알아차리는 것, 삶이란 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임을 알아차리는 것, 세상의 무관심과 잔인함에 맞서고 이 세상의 근원을 찾아내 우리 존재의 총체성을 발견하는 것’.
안세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