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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22> 조선 선비, 청어장사를 하다

조선 바다 가득 메웠던 가난한 백성들의 보양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12 19:12:15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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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 전 해역서 많이 잡힌
- 조선 시대 대표 어종 ‘청어’
- 경북 성주 유배된 선비 이문건
- 여러 경로로 13만 마리 사들여
- 문경새재 넘어 전국으로 유통
- 민초들 궁핍한 밥상 채워줘

음력 십일월, ‘태백’을 넘어 ‘소백’의 관문 문경새재로 몰아치는 겨울바람은 맵찼다. 지게꾼들은 연신 얼어붙은 손을 부비며 다급하게 길을 재촉했다. 그들의 등짐에는 괴산으로 가서 팔 물건이 재여 있었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우리 바다에 몰려든 물고기, 바로 청어였다. 소금에 재이고 몸은 얼어붙었지만, 바다를 향한 그리움이 가시지 않은 눈동자 속으로 조선 제일의 관문 문경새재가 잠시 머물렀으리라.
미국 화가 윈슬로우 호머의 그림 ‘청어잡이 그물’(1885)을 배경으로 배치된 청어 세밀화(일본 나가사키대 수산학부가 펴낸 도감에 수록).
노비들을 시켜 동해와 남해에서 나는 청어를 새재너머 괴산으로 판매했던 사람은 성주에 유배와 있던 어떤 선비였다. 조광조의 문하로 기묘사화에 스승이 죽임을 당하자, 다른 문인들이 해를 당할 것을 염려하여 조상을 하지 않을 때 당당하게 상례를 다했던 선비, 이문건(1494-1567)이 그 주인공이다. ‘묵재(默齋)’라는 호로 잘 알려진 그의 삶은 사화와 유배로 점철되었다. 기묘사화 끝에 중종 16년(1521) 낙안으로 유배되었던 그는 중종 28년(1527) 복권되어 순탄한 관료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명종 즉위년(1545) 을사사화가 발생하자, 이듬해 성주로 유배되어, 끝내 해배(解配)를 보지 못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문건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일기다. 그는 마흔한 살부터 일흔셋에 사망할 때까지 일기를 썼다. 전체 10책 중 3책부터 끝까지가 성주 유배생활을 담았다. 얼핏 단조롭게 여겨지는 그의 유배생활은 의외로 다채로웠다. 중앙에서 고관을 지낸 경력과 조광조의 문하라는 학통은 유배 중임에도 그를 유력자로 떠올렸다. ‘묵재일기’를 보면, 유배 중인 이문건이 성주목사를 비롯해 주변의 지방관, 관찰사와 얼마나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는지 알 수 있다. 퇴계 이황을 비롯한 지방 사림들과의 교유관계도 흥미롭다. 더하여 다양한 의료 행위, 세시풍속, 노비나 장인의 생활 등 관찬사료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 중기의 풍부한 일상이 담겼다.

■ 이문건이 사들인 청어 13만 마리

<그림 1> 올라우스 마그누스가 펴낸 ‘북방민족의 역사’에 나온 준트 해협 청어어업.
성주가 깊은 내륙에 위치함에도 뜻밖으로 다양한 해산물이 이곳까지 유통됐다. ‘묵재일기’에는 대구, 넙치, 숭어, 조기, 전어, 삼치, 방어, 병어, 문어, 오징어 등의 바닷물고기 이름이 등장한다. 이문건이 친분을 활용해 여러 경로를 통해 구입하거나 제공받았던 것들이다. 이들 물고기 중 가장 많이 유통됐던 것은 단연코 청어다.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청어에 대한 기록은 이어졌다. 다른 물고기가 몇 마리, 몇 두름, 혹은 몇 첩 정도 단위로 헤아려졌던 것과 달리 청어는 그 단위가 달랐다.

예컨대, 명종 19년(1564) 10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그가 경상도 각 지방관에게서 제공받은 청어의 양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부산첨사에게 10동(冬), 진주목사에게 20동을 비롯해 하동, 밀양 등의 지방관에게서 모두 63~64동을 제공받았다. ‘1동’은 물고기 종류에 따라 단위를 달리하는데, 조기는 1000마리, 청어는 2000마리이다. 그렇다면 12만6000에서 12만8000마리이다. 이와 별개로 노비인 만수가 쌀 10말로 바꾼 청어 50두름(冬音=20마리)을 비롯해 자잘한 것을 합하면 적어도 1115마리이다. 그해 겨울에만 거의 13만 마리 청어를 확보한 것이다. 이문건은 이처럼 풍부한 청어를 판매하여 경제를 일구었던 것이다.

왜 하필이면 청어일까?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났던 물고기가 바로 청어였다. 조선 전기에 청어는 조기, 대구와 더불어 대표 어종이었다. 하지만 대구가 동해와 남해, 조기가 서해에서 난다면, 청어는 전 해역에서 났다. 조선 후기에는 명태가 강력한 경쟁상대로 떠올랐다. 서유구(1764-1845)는 함경도에서 무진장하게 나는 명태를 묘사하면서, 청어가 명태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는데, 초여름에는 사방 수백 리 바다를 메워 청어를 먹지 않는 이가 없다고 했다. 이익(1681-1763)도 이 점을 분명히 했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함경도에서 나는데, 형체가 매우 크다. 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지면 경상도에서 나고, 봄이 되면 차츰 전라도와 충청도로 옮겨 간다. 봄과 여름 사이에 황해도에서 나는데, 점차로 서쪽으로 옮아갈수록 점점 자잘해져서 극히 천해지니 사람마다 먹지 않는 이가 없다.”
조선 시대 ‘해동지도’ 가운데 경상도. 어획된 청어의 이동 경로를 추정할 수 있다. 김문기 제공
■ 기후변동과 격변을 예고한 청어

가을철 함경도 바다에서 내려오기 시작하여, 동해와 남해를 거쳐 봄과 여름 사이에는 황해도에 이른다고 했다. 조선 후기에 ‘북해의 명태, 남해의 대구, 서해의 조기’로 대별된다면, 청어는 사시사철, 동서남북 바다에서 모두 잡히는 거의 유일한 물고기였다. 명태가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어종이라 한다면, 청어는 전 시기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물고기였다. 청어야말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어종이라 할 수 있다. 정약전(1758-1816)은 “정월이 되면 알을 낳기 위해 해안을 따라 회유해 오는데, 이때 청어 떼는 수억 마리가 대열을 이루어 오므로 바다를 덮을 지경”이라 했다. 유한준(1732-1811)은 청어가 너무나 많이 나서 선박으로 청어의 양을 헤아리기에 이르렀으며, 청어 1두름에 1~2문밖에 하지 않아 물려서 다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논밭의 거름으로 쓰며, 더 심한 경우 버리기까지 한다고 했다.

조선 후기 문신 성해응(1760-1839)은 “이른바 청어라는 것은 무리를 이루어 바다를 덮어 오는데, 사람이 배를 버리고 그 위에 설 수 있다”고 했다. 청어 떼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그 위에 올라가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해응의 이 말은 발트 해 청어어업을 묘사한 올라우스 마그누스<본 연재 제4회>를 떠오르게 한다. 스코네에 몰려드는 청어가 얼마나 많은지 그 위에 미늘창을 꽂아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묘사한 그림은 성해응의 말과 너무나 닮았다<그림 1>. 청어는 우리 바다와 유럽의 바다를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준다. 이문건은 멀리는 광양,

하동 등의 지방관들로부터 제공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괴산에서 넘어온 노비들을 현풍, 대구, 고령 때로는 김해와 동래까지 보내 청어를 구매했다. 동해와 남해에서 잡힌 청어는 낙동강을 따라, 또는 육로를 통해 성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었다. 이문건의 사례는 청어가 어떻게 심산유곡에까지 유통되었는지 보여준다.

180여 년이 지난 영조 12년(1736) 겨울, 영천과 군위를 지나던 권상일(1679-1759)은 말에 싣고, 등에 지고 청어가 내륙으로 끊임없이 흘러드는 모습을 보면서, “바다가 무진장하다는 것을 알겠다”고 했다. 이규경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속언에 ‘궁핍한 선비와 가난한 백성들이 만약 청어가 없었다면 어떻게 소찬(素餐)을 해결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했으니, 과연 명언이다.”

이문건이 성주에서 해배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로마에서는

스웨덴에서 망명 왔던 올라우스 마그누스(1490-1558)가 고국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그누스가 생애를 마칠 즈음 발트 해 청어가 대거 북해로 이동했듯이, 이문건이 세상을 떠났을 즈음에 동아시아의 바다에도 거대한 변화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조선이 맞이할 참혹한 전쟁의 전조이기도 했다. 소빙기(Little Ice Age)의 기후변동이 본격적으로 몰아치려 했던 것이다.

김문기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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