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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울대생의 476일 ‘감빵생활’

감옥의 몽상 - 현민 지음/돌베개/1만6000원

  • 국제신문
  •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  |  입력 : 2018-06-08 19:37:21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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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대신 감옥행 선택한 저자
- 수감생활의 고통·깨달음 기록
- 인간유형도 정치적으로 분석

감옥 문학이란 것이 있다. 신영복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이렇게 썼다. “(겨울 독방에 드는) 신문지 크기의 햇볕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손해가 아니었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받지 못했을 선물이다.” 박노해가 쓴 ‘사람만이 희망이다’와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쓴 다수의 글과 편지도 옥중문학의 계보에 포함된다.
저자 현민의 기억을 통해 일러스트로 재현한 영등포교도소. 김지하, 백기완, 김근태 등 1980년대 민주화운동 주역들이 수감됐던 역사적인 공간이다. 철거된 뒤 서울남부교도소로 이름을 바꿔 이전했다. 돌베개 출판사 제공
창살과 맨바닥, 최소한의 재화뿐인 감옥에서 문학이 꽃피는 이유는 뭘까. 빈부와 교육, 가족, 지위 등 사회의 온갖 변수들이 얼추 통제된 실험실과도 같은 공간. 맨살로 부딪히는 사람과 사람만 남은 진짜 날 것의 사회는, 사람의 본성과 사람조직의 본질을 탐구하기에 적당한 장소일 것이다. 탐구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사회에서 떨어져 나올 방법도, 심지어 따돌림받을 권리도 없다. 타고난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이, 감옥 안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분투하며 남과 내 자신을 관찰한다. 그 결과가 문학이 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감옥의 몽상을 쓴 현민은 2010년 3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다. 죄명은 병역기피. 정치적·철학적 신념에 따라 군대에 가는 대신 감옥을 택했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가 병역을 거부한 데 대한 해명이 아니라, 476일간 수인이 돼서 경험한 감옥의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목소리가 작고, 사색적이며, 비쩍 말라 근육도 없고, 피부는 허옇고,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꼬박꼬박 ~씨라고 부른다.

게다가 ‘난데없이’ 서울대 출신이라 가뜩이나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여호와의증인도 아닌 주제에 신성한 국방의 의무도 거부한 그는 자연스럽게 감옥 내 권력관계의 최하층에 자리 잡았다. 그는 감옥의 문화와 질서에 조금씩 적응하며 겪은 고통과 내밀한 ‘깨달음’, 그리고 다양한 인간 유형을 정치하게 분석한다. 그 분석은 섬세하고 인문학적이며 때로는 동물행동학적 묘사이기도 한데 결국은 문학적이다.

사람들이 흔히 “감옥가면 동성애자에게 성폭력을 당한다”고 하는데, 저자는 이것이 성소수자 혐오와 무지가 뒤섞인 잘못된 정보임을 밝힌다. 물론 감옥 내에 동성에 대한 강간과 추행은 만연했지만, 이것은 ‘동성애’의 본질과 거리가 멀었다. “제 입으로 말했듯이 광천은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여자 연예인을 소재 삼은 음담패설을 곧잘 하기도 한다.… 동성애는 성적 지향과 관련되기 때문에 성폭력을 설명하는 적합한 척도가 못 된다. 세간의 통념은 동성애자에 관한 부정적 상상만 증폭시킬 뿐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임은 은폐한다. … 형은 동생을 주무르면서 “-년아“라고 부른다. 이것은 감옥 내에서 자체적으로 ‘여자’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감옥에서도 성적 괴롭힘은 권력의 행사다. 일반 사회에서 성폭력이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닌 권력형 범죄인 것과 같다.
이 책은 감옥 이야기를 하면서 몸, 남성성, 환상, 가족, 종교, 악을 말한다. ‘감옥’이 아닌 한국 사회를 읽을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현민이라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은 2018년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치환된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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