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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5> 이하은 작가와 동화 ‘황산강 베랑길’

양산 옛길(황산강 베랑길:옛 낙동강 벼랑길)에서 펼쳐진 시간여행 … 작가는 길에서 이야기를 건졌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28 18:39:12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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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년간 교사로 근무하다 등단
- 퇴직 후 영남대로 탐방하며
- 조선시대와 현대 뛰어 넘은
- 두 소년의 흥미로운 동행 상상

- “빼어나게 아름다운 길 걷다보니
- 저절로 몸과 마음 새 힘 얻어
- 꾸준히 지역과 역사 공부하며
- 옛날 이야기 계속 들려주고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옛길 중에 ‘황산잔도’가 있다. 한강 유역과 낙동강 유역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의 3대 잔도 중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는 이 길 근처에 황산찰방역이 있었고, 선비들은 이 길을 따라 한양까지 과거를 보러 가고, 보부상들은 짐을 짊어지고 땀을 흘리고, 백성들은 바깥세상을 만났다. 그 길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함께 흘렀다. 예부터 이 길을 황산강 베랑길이라고 불렀다. ‘황산강’은 낙동강의 옛 이름, ‘베랑’은 벼랑의 지역 방언이다. 이 길을 걸으면서 역사판타지동화 ‘황산강 베랑길’을 쓴 이하은 작가를 만났다.
자전거길이 조성된 황산강 베랑길에 자전거를 몰고 온 이하은 작가.
■황산강 베랑길을 걷다

이하은 작가는 195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1980년부터 2012년까지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어린이동산’ 동화 공모에 중편동화 당선, MBC창작동화대상 장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하늘목장’ ‘금동향로 속으로 사라진 고양이’ ‘황산강 베랑길’ “첫사랑 탐구하기‘ 등을 펴냈다. 2006년부터 양산 화제리 내화마을에 전원주택을 지어 현재까지 살고 있다.

“명예퇴직 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와 멋진 작품을 쓰리라 마음먹었지요. 그런데 뜻하지 않게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순례길을 떠날 수 없었어요. 그 때, 그 길을 대신한 것이 바로 황산강 베랑길입니다.”

이하은 작가는 양산의 아름다운 옛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길에는 기차가 달리고 있었다. 하긴, 기찻길이 되기 이전에도 베랑길은 위험하기로 유명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 길, 발아래로는 짙푸른 낙동강이 흐른다.

황산강 베랑길- 이하은 글·김옥재 그림 /북뱅크 /2017
2012년 5월 1일, 옛길을 따라, 강물 위에 황산강 베랑길 자전거길이 개통됐다. 이 길은 아름다운 국토종주 자전거 길 20곳 중 한 구간이다. 낙동강 자전거 종주길 사업으로 조성된 자전거길은 밀양 삼랑진으로도 연결된다. 자전거 동호인들은 물론이고, 빼어나게 아름다운 낙동강 주변 경관을 보면서 걷고 싶은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길이다. 이하은 작가는 비가 오는 날도, 바람이 부는 날도, 추운 날도, 더운 날도, 시도 때도 없이 그 길을 걸었다. 좋은 날도, 슬픈 날도, 외로운 날도, 힘든 날도 그 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황산강 베랑길‘을 썼다.

“내화마을의 집에서 출발해 뻘등 들길을 지나, 토교마을, 베랑길, 물금을 지나 대학병원까지 3시간을 걸으면 몸과 마음이 새 힘을 얻었답니다. 이 길은 제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베랑길과 관련된 역사 공부, 답사도 함께 시작됐다. 삼랑진까지는 직접 걸었고, 그 외 구간은 기차를 타고 가서 걸었다. 걷고 걸으면서 그는 이야기를 건졌다. 그는 자전거길 입구에서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말을 피해 갔는데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보행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걷고, 공부하고… 길에서 쓴 이야기

‘황산강 베랑길’의 주인공 열세 살 소년 태양이는 자전거를 타고 황산강 베랑길에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거기서 조선의 또래 소년 학구와 만난다. “옛길 위로 놓인 기찻길을 보세요. 굴 입구가 보이죠? 저 곳을 태양이가 조선으로 가는 지점이라고 상상했어요.” 태양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곳은 순조 때. 혼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 호랑이에게 쫓기던 학구를 만난 곳이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여서 옛날에 호랑이가 많이 나왔대요.” 호랑이가 작품에 괜히 등장한 게 아니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공부했던 수고는 책 내용 전반에서 고루 느껴진다.

200년을 뛰어넘은 두 소년은 함께 영남대로를 걸으며 한양으로 향한다. 태양이는 그 과정에서 조선의 아이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느낀다. 같은 나이의 학구가 훨씬 어른스러운 것을 보면서 태양이의 마음도 훌쩍 자란다. 그 기본 줄거리에 생명력을 더하는 것은 저자가 길을 걸으며 공부했던 역사와 풍속이다. 두 아이가 삼랑진 장에 도착했을 때 장터를 설명한 대목은 생생한 현장감이 있다. “보부상들이 봇짐을 풀자 그 속에는 비녀, 노리개, 단추, 구슬, 댕기, 동곳 같은 신기한 물건들이 잔뜩 나왔다. 여자들은 그 앞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황산강에서 잡은 붕어와 잉어, 가물치, 메기 같은 민물고기들이 항아리 속에서 아가미를 벌렁거렸다. 명지도에서 소금 배가 도착했다며 사람들이 분주했다. 소금을 이고 파는 아낙네들이 모여들어서 함지에 소금을 받아 갔다. 마른 생선과 소금에 절인 생선을 파는 장사꾼들도 보였다.”

황산강 베랑길에서 출발해 영남대로를 걸어 한양에 도착할 때까지 두 소년이 겪는 일도 재미있지만, 순조 때의 역사와 백성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것은 더 의미가 크다. 이 작품은 2017년 양산시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대상 도서로 선정돼 양산 시민과 어린이의 사랑을 받았다.

역사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은 계속된다. 곧 출판될 책은 일제강점기 때 황산강 베랑길과 함께 화제, 물금, 양산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 시절, 양산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또 다른 태양이와 학구가 들려줄 양산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길에서 만들어지는 책, 책 속에서 뻗어나가는 길을 걷고 싶어진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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