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회는 본래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였다. 분쟁이나 폭력 살인과 전쟁은 교회와 거리가 멀었다. 주님은 ‘원수를 갚지 말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고,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10리를 동행해라!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또한 제자들에게도 그의 뒤를 좇게 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는 악을 철저히 응징하고 힘을 숭배하면서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힘의 우위로 평화를 유지하려 했다. 그들 눈에 교회가 걸어간 십자가의 길은 비현실적이고 어리석게 보였고, 약자와 패자의 자기합리화로 여겨졌을 것이다.
로마제국의 냉혹한 박해로 교세가 약화되고, 교회가 지상에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다 해도, 교회는 무력으로 저항하거나 스스로 정치세력화해 기독교 권익을 지키려 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야 하는 군인은 믿는 자의 직업으로 합당하지 않다는 교부 터툴리안의 가르침을 좇아 많은 교인이 군인 되기를 거부했다. 그리스도인은 그야말로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평화주의자들이었다.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공인된 종교가 된 뒤 사람이 교회로 밀려들어 오고, 기독교도가 사회의 다수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국가 안위는 자연히 교회의 안위와 직결되면서 교회는 점차 악을 징벌하는 수단으로 전쟁을 합법화하게 됐다. 병역과 전쟁 거부는, 국가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커다란 책벌의 대상이 됐다.
교부 어거스틴은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풍전등화가 된 위기상황에서, 전쟁을 ‘불의한 전쟁’과 ‘의로운 전쟁’으로 구분하면서 이 외적과의 전쟁을 ‘의로운 전쟁’(bellum iustum)으로 정당화했다. 물론 그는 전쟁의 당위성을 사회의 보편적인 선을 위하고, 법질서가 위협받거나 손상을 입는 경우, 전쟁 이전보다 훨씬 더 법질서의 평화를 보장하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했다. 그러나 중세 이후 현대까지 세계사 중심에 서게 된 기독교는 이 ‘의로운 전쟁’을 남발하면서 성경이 지향하는 평화를 망각했다. 예루살렘 성지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십자가전쟁으로 수많은 이슬람교도를 학살했고, 가톨릭과 개신교 분쟁은 30년 전쟁으로 이어져 독일 국민 3분의 1이 사망했다. 1·2차 세계대전 때 교회는 민족주의에 경도돼 기독교문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전쟁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선교를 앞세우며 제국주의의 잔혹한 식민정책에 직·간접으로 간여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긴 세월을 거치며 힘의 종교라는 DNA를 품게 됐다. 너무 오래 전쟁 논리에 익숙해졌다. 마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로마인의 정신이 기독교와 뒤섞여버린 것 같았다. 세속화되는 사회에 대항해 힘을 키우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거짓과 술수, 때로는 폭력까지 정당화해왔다. 사회의 어떤 대상에 대한 증오감을 키우고, 도덕적 이슈를 정치화하고, 정치이념을 종교화해 힘의 논리로 기독교를 지키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를 지키는 길이 아니다.
교회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본질적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십자가의 길이다. 교회의 힘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과 자기 부인과 희생에서 나온다. 그것이야말로 기독교를 지키고 이 세상에서 진정한 화평을 이룰 힘이다.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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