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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19> 부산포 초량왜관의 생활상

부산은 일본인에 기회의 땅… 쓰시마서 수백명이 초량왜관 왔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22 18:42:4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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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일본인 외국 거주지였던
- 부산의 절영도·두모포·초량왜관
- 180년여 걸친 관수의 일기들
- 한일 교류 다양한 실상 알려줘

- 10만 평에 가옥·상가·사찰 배치
- 술 두부 곤약은 쓰시마서 공수
- 동래부 허가없이는 출입 금지

- 생활고에 목숨 끊으려던 일본인
- 왜관을 희망의 장소로 그리기도

부산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고대 이래 오랫동안 일본과 교류해 온 항구도시이다. 15세기 초두(1407년) 부산포에 설치되어 일본 메이지(明治) 초기(1870년)까지 400여 년 이상 존재한 왜관은(개·폐의 시기도 있었지만), 에도시대 외국 땅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거주지로서 학계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조선 후기 왜관은 부산포에만 설치되어 그 지역에 따라 절영도왜관·두모포왜관·초량왜관 시대로 구분되는데 바야흐로 동래부는 한일 양국 외교의 최전방으로, ‘가까운 타자(他者)’ 왜관과의 끊임없는 갈등·모순 극복을 통해 한일 양국 평화 유지에 주력하였다.
부산포의 왜관 변천사를 나타낸 그림.
특히 초량왜관 시대(1678~1870년) 왜관 총책임자인 관수에 의해 기록된 일기들은 한일 양국 교류의 다양한 실상에 대해 알려줘 매우 흥미롭다. 184년 동안(1687~1870년)에 걸쳐 기록된 이 기록들은 현재 860여 책의 방대한 분량으로서 한일 양국의 외교·무역·문화 교류는 물론이고 전근대 부산포 기후·해양 환경, 다양한 스캔들 등에 대해 참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10만 평’ 초량왜관에 다양한 건물

부산에서 활동한 조선 시대 화가 변박이 그린 왜관도. 왜관의 공간 구조를 잘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선 초량왜관 공간구조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총 면적은 약 33만578㎡(10만 평)으로 이전의 두모포왜관 보다 약 10배로 증가하여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서관으로 나뉘었다. 용두산 동쪽 해안가에 왜관 사람들의 거주공간이라 할 수 있는 동관, 용두산 서쪽에 일본에서 파견되어 온 사절단의 숙소 공간인 서관이 배치되었다.

동관에는 해안가를 따라 많은 건물이 즐비하였으니 관수 가옥을 비롯하여 개시대청(매달 3·8일 개최되는 5일장 형태의 한일 무역공간), 왜관관리 가옥(대관 代官·재판 裁判·서승 書僧·통사 通事·회계 會計·목부 目付·로두 老頭·금도 禁徒·응장 鷹匠·도공 陶工), 상가(떡집·술집·찻집·약국·그릇집·국숫집·염색집·다다미집·목수집·설탕집), 사찰(동향사 東向寺)·신사(변천신사 辯天神社), 부두·창고, 출입문(수문 守門·북문 北門·수문 水門) 등이 있었다.

‘관수일기’ 속에 나타난 왜관의 일상 업무는 기후(날씨·풍향)·선박출입 파악을 비롯하여 야간경비순찰, 매달 2차례 축하행사(1·15일 왜관관수 가옥에서 거행됨)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축하 행사는 왜관 내 모든 거주자들이 관수의 집에 모여 거행하였는데(다만, 해양경비만 제외), 이는 아마도 월 2회의 왜관 휴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유추한다. 나아가 연중행사는 정월 초하룻날의 신년하례식, 정월 초이튿날의 창고조사, 활쏘기, 1월과 7월의 동향사 아귀보시, 2월과 7월의 고관성묘(고관은 옛 두모포왜관의 약자임), 단오·칠월칠석·백중·중양절 등 24절기 관련 축하 행사, 연말 종무식(12월) 등으로 대표된다.

■동래부 허가 있어야 외출

일본에서 19세기에 제작된 왜관도. 일본인 개인 소장
초량왜관 생활상에 대해 살펴보면 거주자들은 주로 일본 쓰시마에서 건너온 수백 명에 이르는 성인 남자들로서 가족이나 여성을 동반할 수 없었다. 왜관 바깥에는 6개의 복병막이 설치되어 감시 하에 놓여 있어 동래부 허가 없이는 왜관 밖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일용 음식물 중 쌀·채소·생선 등과 같은 것은 왜관 수문 밖 새벽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었으나 현지 조달이 불가능한 일본 술·두부·곤약·감귤 등은 쓰시마에서 가져왔던 것 같다.

한편 왜관 내 갑작스러운 죽음의 양상은 어떠하였을까. 왜관 거주자 중 갑작스러운 환자가 발생하면 왜관 의사의 치료를 받는 한편으로 조기 귀국을 조치하였으나 사망자가 발생하면 더 복잡한 조치가 취해졌다. 사망사고는 크게 병사·급사·자살(自害)·자살 미수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대상은 관수를 비롯해, 왜관 내 여러 신분의 거주자들이 포함됐으며 사건 횟수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망 사건이 일단 발생하면 즉시 왜관 관리들을 그곳으로 파견해 장소·시간·상태·원인 등을 조사·기록한 다음, 유품을 거둬 시체와 함께 쓰시마로 보내고. 그 조사 기록도 쓰시마번 조선어용 담당관에게 보내었다.

■대출금 고민에 우울증 걸린 사내

여기서 17세기 말 발생한 어느 자살미수 사건을 중심으로 초량왜관 속 생활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사건은 1693년(숙종 19년, 일본 원록(元祿) 6년) 11월 26일 축시(丑時,새벽 오전 1~3시께)에 발생한 이치하시 시로우에몬(市橋四郞右衛門)의 자살 미수이다. ‘관수일기’ 등을 살펴보면 자살 사건이 적지 않았으나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자살 원인과 생활상은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치하시 시로우에몬의 경우 생존 이후 몇 건의 진술서 제출을 통해 본인의 자살 시도 원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그는 무라세 만우에몬(村勢万右衛門)의 부하로 천장에 목을 매달아 죽으려 하다가 실패하여 신음을 내는 바람에, 같은 방에 있던 로쿠자에몬(六左衛門)이 발견하여 생존할 수 있었다. 왜관 관수는 이 자살 미수자의 빠른 회복을 위해 왜관 거주 의사에게 인삼을 주어 치료하도록 조치하는 한편, 몇 건의 본인 진술서를 제출하게 하였다.

이치하시 시로우에몬은 진술서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집이 가난했는데, 9년 전부터는 부친의 대출금 등이 겹쳐 더욱 힘든 생활을 해 왔다. 약 2년 전 왜관 내 술집에 고용돼 쓰시마에서 부산포로 건너와 다소 돈을 벌어 조금씩 빚을 갚아 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빚도 많이 남은 상태에서 쓰시마로 돌아가게 되어, 빚 독촉 속에 수많은 걱정으로 이리저리 고민하던 중에 우울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덧없고 한 많은 이 세상을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에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은 힘들어

우리는 이치하시 시로우에몬 진술서에서 몇 가지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첫째로 만약 이치하시 시로우에몬이 쓰시마로 돌아가지 않고 초량왜관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었다면 자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둘째로 진술서 속에 늙은 모친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다른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 미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셋째로 부산포 초량왜관은 쓰시마를 비롯한 일본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희망의 장소였다는 점이다. 부산포와 쓰시마를 왕복하는 선박의 빈번한 출입도 이를 증명하는 것 아닐까.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서민의 생활고와 청년의 고민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박화진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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