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주조합, 다큐멘터리 제작 일환
- ‘당신의 방에서 생각한다’ 전시회
- 시민과 작가 함께 작품 제작 등

원폭 피해자인 어머니를 둔 원폭 2세 고 김형률(1970~2005) 씨는 국내 원폭 피해자와 원폭 2세들의 생명과 인권을 위해 온몸을 던진 반핵평화인권운동가다. 그는 태어난 지 20일이 될 때부터 병원 신세를 지기 시작해 선천성 면역글로불린결핍증으로 2005년 5월 29일 끝내 숨을 거뒀다. 김 씨는 2002년, 30년 동안 자신을 짓누른 기나긴 고통이 원폭 2세이기 때문인 것 같다는 내용의 의사 연구논문을 알게 되고 마침내 자신이 원폭 2세 환우임을 세상에 ‘커밍아웃’하게 된다. 김 씨의 끈질긴 요구로 2004년 원폭 1세와 2세들의 기초 현황과 건강실태조사가 시행됐고, 그는 환우 500여 명을 찾아내 이들의 인권을 위한 운동에 매진하게 된다.

	일본 미술 작가 이노우에 리에(오른쪽) 씨와 고 김형률 씨의 부모가 고인이 지내던 부산 동구 자택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탁주조합 제공

김형률 씨의 불꽃 같은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탁주조합’이 원폭 3세 일본 미술 작가와 함께 그의 13주기를 기리는 전시회를 연다. 그가 생전 머물던 작은 방에서 관람객과 작가가 함께 소통하고 어울리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열린 형태의 전시로, 전시 작업의 모든 과정을 다큐멘터리에 담을 예정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집단인 탁주조합은 김형률이 살던 부산 동구 수정아파트 3동 206호에서 전시 ‘당신의 방에서 생각한다’를 19~22일, 25~26일 두 차례에 걸쳐 연다.

	원폭 2세 환우를 위한 운동에 헌신했던 고 김형률 씨. 사진가 윤정은 제공, 김형률 유고집 나는 반핵인권에 목숨을 걸었다‘에 수록.

이번 전시는 탁주조합 김지곤 감독이 2016년부터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 ‘littleboy-12725’ 제작 과정의 일부다. 영화는 김형률의 생전 기록이 담긴 일기장을 통해 그가 반핵 인권운동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주변 사람 인터뷰와 자료 조사로 그의 삶을 기록한다. 부산영상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현재 80% 정도 촬영을 마쳤으며, 올해 제작을 완료할 예정이다. 탁주조합은 부산에서 활동 중인 김지곤 오민욱 손호목 감독이 주축이 된 다큐멘터리 제작사다.

탁주조합과 함께 전시에 참여하는 미술 작가의 이력도 독특하다. 일본 나가사키 출생의 원폭 3세 이노우에 리에는 현재 경남 창원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천이나 종이 등과 같은 재료를 바느질로 이어 공간에 설치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리에 작가와 김 감독은 다큐멘터리 촬영 때 만나 원폭 피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전시를 기획했다. 리에 작가는 지난 10일부터 김형률 씨의 방에서 그의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김형률에 대한 기억을 작품에 담는 밑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김형률 선생이 머물던 공간을,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그에 대해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외친 그의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품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신청한 참가자들과 리에 작가가 함께 완성한다. 탁주조합 노수진 제작팀원은 “관람객이 김형률 선생의 못다 이룬 숨결이 스민 작은 방에서 다 함께 작업하고, 그의 삶을 돌아보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와 더불어 오는 26일 오전 11시 부산 민주공원에서는 김형률추모사업회 주최로 그의 13주기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정홍주 기자 hjey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