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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18> 정성공 정권과 해양 대만

중국선 영웅, 대만선 해적… 이율배반적인 평 받는 정성공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15 18:59:10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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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일 무역상이던 중국인 아버지
-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 명·청 교체기 ‘반청복명’ 아래
- 4000척 함선으로 대만해협 건너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몰아내고
- 명조회복 근거지 동녕왕국 건설
- 그와 후손들 22년간 통치하다
- 시랑의 정벌군에 져 청나라 흡수

-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분”
- 권력의 역사 해석 시도는 여전

해상 영웅으로 한국에 장보고가 있다면, 중국에 정성공(鄭成功, 1624~1662)이 있다. 중국 대륙에서 정성공은 네덜란드 식민주의자에게서 대만을 수복한 민족영웅 이미지가 강하다. 중국 영토였던 대만 섬을 다시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한 영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정성공이 나가사키 히라도에서 출생했으며 어머니가 일본인이란 사실을 강조한다. 일본은 대만 식민통치시기에 신사를 세워 정성공을 모시면서 대만 통치 논리로 이용했다. 반청(反淸) 운동을 한 사실을 반중국 정서로 활용한 것이다.정작 대만에선 정성공 정권을 대만 섬 일부를 점령해 38년 간 통치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처럼 외래 정권의 하나로 보는 견해가 있다. 대만사 연구가 정씨 왕조의 의미를 과장하기보다 대만 원주민을 주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웅이 아니라 해적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렇듯 한 인물에 대해 여러 평가가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성공 함대와 당시 대만을 통치하던 네덜란드 군대의 전투를 그린 기록화.
■대만 섬, 어민과 해적의 공간

명대 해금정책과 왜구 창궐은 대만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국 대륙의 복건 지역은 산이 많고 농지가 적어 연해 백성은 어쩔 수 없이 바다에서 생계를 꾸려야 했다. 특히, 값비싼 물고기인 숭어를 찾아 대만 근처 팽호(澎湖) 섬을 넘어 대만 연안까지 몰려갔다. 몇몇 사람은 개인적으로 무장해 약탈하면서 해적집단을 형성했다. 그들은 왜구와 합류해 강소·절강·복건·광동 연해 거주민을 괴롭혔으며, 그 세력은 대만해협의 양안까지 미쳤다.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대만 섬은 명과 일본 사이 밀무역 중계지로 자리 잡았다. 이 무렵 대만을 근거지로 활동한 중국인 가운데 영향력 있던 인물로 안사제(顔思齊) 정지룡(鄭芝龍) 등이 있다.

■국성야의 반청복명

   
정성공(1624~1662)의 초상.
정성공은 국제무역상이자 해적 집단 우두머리였던 아버지 정지룡과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부친을 따라 7살 때 복건으로 이주했다. 1644년 명이 멸망하고 명 황실 후예들이 남명(南明)정권을 세우자 그 가운데 한 황제인 융경제(隆慶帝)를 모셨다. 충성의 대가로 국성(國姓)인 주(朱)씨 성을 하사받아 국성야(國姓爺)라 불렸다. 외국인들은 복건 발음인 ‘콕싱가(Koxinga)’로 불렀다. 융경제가 만주족에게 살해당하자 정지룡은 청에 투항했으나, 아들 정성공은 하문을 근거지로 청에 대항했다. 정성공은 한 때 17만 병력으로 남경 수복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물러났다. 청은 정성공이 항복하지 않자 아버지 정지룡을 처형했다. 분노한 정성공은 반청복명(反淸復明) 기치 아래 명조 회복을 위해 십 수 년간 저항했다.

■정성공의 대만 점령

장기적인 반청운동을 위한 근거지가 필요했다. 그 무렵 네덜란드 군대에서 통역하던 사람이 정성공을 찾아와 대만 점령을 권하면서 군대가 배치된 지도를 건넸다. 대만은 원래 정지룡의 근거지였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개발로 상당한 인력과 생산성을 갖추고 있었다. 1661년 3월 정성공은 2만 5000여 명 병력과 400여 척 함선을 이끌고 금문을 출발해 대만해협을 건넜다. 팽호 섬에서 전투 준비를 마친 뒤 만조를 이용해 대남의 녹이문으로 상륙했다.
양자 간에 치열한 해전과 육전이 벌어졌다. 네덜란드인들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성안으로 물러나 농성에 들어갔다. 동인도회사 근거지가 있던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 구원병을 요청하고, 정성공과 화의를 시도했다. 수비병이 1100여 명에 불과했던 네덜란드 군대는 8개월간 대치 끝에 결국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정성공이 대만에 상륙한 사건을 보통 한인(漢人) 왕조가 처음 대만에 출현한 것으로 본다.
   
대만 연안을 그린 청나라의 지도.
■정경과 동녕왕국

정성공은 대만을 점령하고 5개월 뒤 39세 젊은 나이로 돌연 사망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문이 많다. 아들 정경(鄭經, 1643-1681)이 즉위해 대만의 이름을 동녕(東寧)으로 바꾼 뒤 동녕왕국을 건국했다. 국제적으로는 ‘대만의 왕(The King of Tyawan)’이라 불렸다. 그 후 해양입국의 정씨 왕조는 일본 나가사키와 대만 및 복건·광동 연해의 국제무역을 장악해 동아시아와 남양을 포괄하는 해상무역왕국을 만들었다. 정경은 아버지를 이어 반청운동을 재개해 복건 연해에서 6년 간 전쟁을 벌였다. 대만 섬 통치는 유교를 추종하던 진영화(陳永華)에게 맡겼다. 1680년 정경이 별다른 성과 없이 대만으로 철수할 무렵 진영화가 죽었다. 다음 해 정경도 아버지처럼 39세 젊은 나이로 죽었다. 곧이어 왕위 계승을 둘러싼 참혹한 권력투쟁은 국력을 약화시켰다.

■시랑의 대만 정벌

12세에 불과한 어린 정극상(鄭克塽, 1670-?)이 정경을 승계했으나 대만 사회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1683년 청은 정성공의 부하였다가 투항한 시랑(施琅)을 수사제독으로 임명했다. 600여 척 선박에 6만 병사를 실어 팽호를 점령하고 대만을 공격했다. 해군사의 시각에서 시랑의 수군이 팽호에서 정씨 왕조 수군과 벌인 해전은 무려 500척 이상의 범선 전함이 동원된 것이어서 주목한다. 당시로는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 해전이었다.

결국 정씨 왕국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조선의 예를 따라 삭발하지 않고 다만 신하를 칭하며 공납을 바치는 선에서 관계 유지를 희망한다”는 오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극상을 비롯한 문무관원은 모두 변발한 채 청에 항복했다. 이로서 정씨 통치시기 22년간의 독립정권이 막을 내렸다. 그 뒤에도 대만 섬에서는 “3년에 한 번 작은 반란이 있고, 5년에 한 번 큰 반란이 있다”는 속어처럼 관방과 민중 간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민족영웅 vs. 국가영웅

중국 대륙에서는 “대만은 중국의 불가분의 일부분”이라는 관점을 줄곧 유지해왔다. 기본적으로 대만사는 중국의 지방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씨 해상집단의 흥망과 정성공의 반청복명을 다루면서 네덜란드를 물리치고 대만을 수복한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시랑이 대군을 이끌고 정씨 왕조의 대만을 정벌한 사건 역시 높이 평가한다. 시랑은 애국주의 영웅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민족영웅 정성공과 국가영웅 시랑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반청복명을 역사적 뿌리로 삼아 정성공을 숭상하는 해외 화교의 입장에서 이런 이중적 해석은 혼란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대만 학계에선 정성공이 반란을 일으킨 까닭은 만주족 정권에 불만이 있어서이고 대만을 점령한 것도 반청운동이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처럼 역사에서 국가와 민족의 이름 아래 이율배반적인 해석이 나타나는 것이 어찌 정성공만의 사례뿐일까? 권력이 역사 해석에 간섭하려는 시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런 왜곡 현상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세현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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