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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허를 찌르는 상상력, 그 속에 묵직한 메시지 /박진명

회색인간- 김동식 /요다 /1만3000원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5-04 19:12:4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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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공포·판타지물 단편모음집
- 작품 간 이음새는 다소 허술하지만
- 짧고 간결한 문체·빠른 이야기 전개
- 엉뚱한 발상으로 독자들 끌어들여

땅속 지저세계의 인간들이 지상을 정복하지 않는 대가로 하루아침에게 납치당한 1만 명의 사람들(‘회색인간’). 손대면 안 되는 신의 항아리를 파내는 바람에 인류의 반은 밤에만, 나머지 반은 낮에만 좀비가 되는 저주에 걸린 이야기(‘낮인간 밤인간’). 사람과 구분하기 힘든 인조인간을 찾아내 세상에 공개하던 기자가 기자정신을 되찾고자 인조인간의 비밀이 숨겨진 Area510에 잠입하는 이야기(‘아웃팅’). 갑자기 정부가 인공진화법안을 통과해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가 탄생했는데 알고 보니 비선실세의 사업에 국비를 몰아주기 위한 것임이 밝혀져 정책은 폐기되고 신인류가 갑자기 소수자가 되는 이야기(‘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
   
소설집 ‘회색인간’을 펴낸 소설가 김동식. 소설가로서는 드문 이력과 개성 있는 작품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요다 제공
‘회색인간’은 이처럼 주로 SF, 공포, 판타지라는 카테고리에 어울릴 만한 단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는 이야기의 전개가 너무 빠르고, 뭔가 아귀가 딱딱 맞지 않는 느낌이 들어 머리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야기 하나 둘을 넘어가면서는 말도 안되는 상상에 무릎을 탁 치기도 하고,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에 심각해지기도 하고, 전개상에서는 다소 생뚱맞지만 분명 재미는 있는 ‘드립’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웃고 있는 독자가 되어 있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 외에도 지구의 인구 포화에 대한 정책으로 노인을 가상지구에 이주시키고 가족의 뇌를 스캔해 정기적으로 업로드해주는 ‘디지털고려장’, 어느 날 건물에 입이 생겨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하는 ‘식인빌딩’, 저승의 대표가 찾아와 이승의 사망률이 너무 낮아 한 명이 죽으면 한 명을 더 데려가겠다고 1+1 정책을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사망 공동체’ 등 이야기마다 파격적인 상상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대부분 이야기는 그러한 판타지 세계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간결하고 짧게 불쑥 던진다.

이처럼 판타지의 세계를 구축하는 발상 자체가 재밌기도 하지만 실제 이 이야기들의 힘은 상상으로 펼친 여러 극단의 상황 속에서 그것에 대응하는 인간 군상의 반목과 헛발질, 서로를 대하는 인간의 잔인함과 무지, 이중적인 태도 등을 드러내는 데 있다. 판타지를 통해 극단의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익숙한 사회나 문명이라는 것을 조금만 걷어내면 인간이 얼마나 ‘똥멍청이’이거나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것도 짧고, 쉽고, 간결하고, 심지어 재밌게.

확실히 이 짧은 소설들은 이음새나 매무새가 썩 정교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재미가 있고 이야기가 던지는 주제나 메시지 또한 묵직하다. 이러한 둘 사이의 부조화는 작가의 이력과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배경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된다. 고졸. 10년 넘게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일하면서도 틈틈이 인터넷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2016년부터 글을 올리기 시작해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300편이 넘는 글 게재. 그리고 바탕화면에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글 100여 개. 평생 10여 권 책밖에 읽은 적이 없으며, 글을 쓰고 싶어 네이버로 ‘글 쓰는 법’을 검색해서 독학. 이 책이 담은 독특한 세계관이나 개성과 더불어 작가의 등장에 세상이 떠들썩한 이유다.

이 작가의 등장을 통해, 통과한다고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닌 세계에서 대학이나 등단이라는 시스템이 그동안 너무 거추장스럽지는 않았는지, 또 이런 개성 있는 이야기꾼의 등장을 막고 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화두는 한 명의 묻혀 있던 천재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 없는 것과 엉뚱한 상상을 다양한 개성으로 수용하지 못한 시스템의 내부를 환하게 밝힌다.

   
어린 시절 이런저런 공포영화를 짜깁기한 이야기로 청중을 몰입하게 했던 형의 입담이 생각난다. 참 재미있었는데….  

기획자·청년정책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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