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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의 그곳에서 만난 책 <33> 이종형 시인과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아픔에 숨 막혀도 가만히 껴안았다…고향 제주에 부는 통곡 같은 바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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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30 18: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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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서 자라 어렴풋이 느낀 4·3
- 짓누른 고통 알수록 한몸된 듯
- 고발·추모보다는 담담한 서사
- 70년 고향의 상처 보듬다보니
- 첫 시집 내기까지 13년 걸려

봄 햇살 가득한 하늘과 바다, 생기 가득한 제주의 오름들, 눈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유채꽃. 제주의 봄은 아름다웠다. 그 섬에서 이종형 시인을 만났다. 올해로 제주 4.3 70주년을 맞았기에 이 시인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4.3 추념식 즈음에는 만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난 27~29일에는 ‘전국문학인 제주대회’도 열렸다. 바쁜 일정 사이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시인을 만난 순간 그의 입술이 짓물러 터져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이 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에서 제주 4·3을 아파한 시인 이종형이 제주 조천읍의 한 바닷가에 서 있다.
■ 제주 4.3과 함께 걸어온 삶

이종형 시인은 1956년 제주 건입동에서 태어났다. 군대, 서울과 부산에서 보낸 직장생활 등 10년을 빼고는 줄곧 제주에서 살았다. 2004년 ‘제주작가’로 등단해 제주작가회의 사무국장을 8년간 맡았고, 현재 제주작가회의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학창시절에는 글도 쓰곤 했죠. 하지만 시를 쓰면서 살아가겠다는 인생 계획은 없었어요. 보통 남자들이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았지요. 그러다 마흔다섯에 다시 시를 썼습니다. 무엇이 나를 시로 다시 끌어당겼는지 신기해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을 때 ‘잘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 ‘다행이다, 내 삶이 누추하진 않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시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이었다.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이종형 지음 /삶창 /2017
그는 등단 13년 만인 2017년 첫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을 펴냈다. 동료들이 좋은 시 그만 묵히고 이제 그만 시집 엮자고 여러 번 권했더랬다. 13년 만에 나온 그의 시집은 묵혔다기보다 잘 삭은 시들이다.

“첫 시집을 내면서 저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개가를 하셨지요. 전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자라면서 제주를 짓누르고 있는 분위기를 어렴풋이 짐작했지요. 제주에 어떤 일이 있었나를 공부하면서 4.3을 알았고, 외할머니 동네도 4.3을 겪었고, 아버지가 육지에서 온 육군대위였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그는 군인 아버지를 둔 처지였고, 동시에 피해자 입장이었다. “군경가족에 대한 시선도 느꼈고, 또 4.3에 대한 진실을 알아갈수록 아픔도 커져 갔습니다. 4.3이 휩쓸고 간 제주, 긴 세월 아파하고 견뎌내고 다시 일어서는 제주를 담담히 쓰는 것이 저의 시였습니다. 동료들은 ‘형이 쓰는 4.3 시는 우리와 다르다. 형은 형대로, 그대로 쓰면 좋겠다’고 말해요. 저도 그런 마음, 그런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현기영 선생께서 제 시집을 보고 ‘4.3의 유복자’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의 삶 전체가 4.3과 함께 걸어왔고, 한 몸이었다. 제주에서 4.3을 시로 쓰는 제주 사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가 먼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첫 시집이 나오기까지 13년이라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감히 짐작해보는 필자의 눈에도, 시인의 눈에도 눈물이 번졌다.

■ 담담한 서사로 풀어내는 제주 4.3
우리가 알고 있는 4.3 시들이 “4.3을 알아야 한다”고 고발하고 증언하는 것이었다면, 이종형의 시는 더 담담한 서사이다. 그의 시 ‘통점’의 일부를 읽어보자. 일본 NHK 방송에서 제주 4.3을 취재하러 왔을 때 현지 안내를 하면서 느낀 심정을 쓴 시다. “햇살이 쨍쨍한 팔월 한낮/ 조천읍 선흘리 산 26번지 목시묵굴에 들었다가/ 한 사나흘 족히 앓았습니다// (중략) 그해 겨울/ 좁은 굴속의 한기寒氣보다 더 차가운 공포에/ 시퍼렇게 질리다 끝내 윤기 잃고 시들어 간/ 이 빠진 사기그릇 몇 점/ 녹슨 솥뚜껑과/ 시절 모르는 아이의 발에서 벗겨진 하얀 고무신// 그 앞에서라면/ 당신도 아마/ 오랫동안/ 숨이 막혔을 것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좁은 굴 입구를 낮은 포복으로 지났기에 아픈 것이 아니라, 목시묵굴 자체가, 4.3의 흔적 모두가 제주의 통점이다. 70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파서 앓아야 하는 이 나라의 통점이다. 시인은 그 아픔을 함께 겪으며 쓰다듬고 쓸어안는다.

‘바람의 집’은 몇 년 전 제주에서 열린 전국문학인 대회에서 “4월에 눈 내리고 추운 바람이라니”라며 움츠리는 문인들과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담은 시다.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4월의 섬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이렇게 시작하는 이 시를 지난 4월 3일 제주에서 거행된 4.3 추념식에서 제주에 사는 가수 이효리 씨가 낭송했다.

인터뷰하면서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이 올해 ‘5·18 문학상’을 수상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 시인을 만난 날이 수상 소식 공식 발표 하루 전날이었다. 우리 역사의 큰 통점, 5·18과 4·3이 만나 끌어안는 느낌이었다. 축하한다는 인사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첫 시집에 큰 상을 받았으니 이 노릇을 어떡허나, 이제 큰일 났다 싶어요.”

   
시인은 또 말했다. “80주년 90주년… 언제까지나 고발과 증언, 추모만 할 수는 없지요. 긴 세월 짓눌려 왔던 것에서 풀려나 이제는 제주가 이 나라의 아픔을 가만히 껴안고 위로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깊고 오래된 통점을 가진 제주이기에 또 다른 땅의 통점을 보듬어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의 시는 그런 마음을 담고 있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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