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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문화의 명장면 <14> ‘해동제국기’ 속 기묘한 지도 한 장

조선초 제작 추정 말굽모양 지도 한 장, 대마도 정보 결정체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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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10 18:57:4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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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 때 완성된 ‘해동제국기’
- 조선에 쌓인 일본 정보 집대성

- 책에 실린 ‘일본국대마도지도’
- 모양 왜곡됐지만 포구·군 이름
- 유력 인물들 정보 낱낱이 기록
- 세종 1년 이종무 장군의 정벌군
- 공격 지점 이름·항로 거의 일치

- 제작자로 추정되는 외교관 이예
- 헌신적 노력 덕에 정벌도 가능

기묘한 지도 한 장이 ‘해동제국기’(신숙주 편, 1471년)라는 책에 실려 있다. 얼핏 보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도 알기 어렵다. 흰 부분이 땅이고 조개 무더기처럼 보이는 것이 바다다. 그렇게 보면 비로소 울퉁불퉁한 말굽처럼 생긴 땅의 윤곽이 떠오른다. 그러나 말발굽처럼 매끈하지 않고 들쑥날쑥하게 그려져 있다. 더 자세히 보면 오목하게 들어간 곳마다 깨알처럼 작은 글씨가 쓰여 있다. 또 네모난 칸에 대마도(對馬島), 미녀군(美女郡) 같은 좀 더 큰 글씨도 보인다. 지도 오른쪽 위에는 일본국대마도지도(日本國對馬島之圖)라는 큰 글씨가 보인다. 바로 대마도 지도다.
   
대마도의 명소 에보시다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아소만 전경.
원래 대마도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마도는 남북으로 70km가 조금 넘고, 동서 최대폭은 20km가 되지 않는 길쭉한 형태의 섬이다. 그런데 이 지도는 남북으로 길쭉한 섬을 마치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처럼 그려놓았다. 왜곡도 이런 왜곡이 없다. 왜 이런 이상한 지도를 그렸을까? 조선이 대마도 지형을 제대로 몰랐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지도에는 82개 포구 이름이 기록돼 있으며 8개의 군 이름, 당시 도주 종정국(宗貞國)과 전 도주였던 종성직(宗盛職)이 사는 지역까지 정확히 표시했다.

일본조차도 170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마도의 구체적인 모습과 지명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1471년 이미 조선은 대마도의 모든 포구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해동제국기’ 본문에는 각 포구에 있는 가옥 수와 유력한 인물 정보도 낱낱이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왜 대마도를 이렇게 그렸을까? 해답은 바다 위에 그려진 흰 선에서 찾을 수 있다. 흰 선은 항로를 뜻한다.

왼쪽 위에서 내려온 흰 선은 대마도 한가운데 그려진 만(灣)을 통과해 ‘훈라곶(訓羅串)’이라 쓰인 곳에 이르러서는 다시 반대편인 오른쪽 위로 이어진다. 훈라곶은 ‘후나코시(船越·선월)’라는 일본어 음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후나코시’는 배를 넘긴다는 뜻이며, 육지로 배를 끌어 올려 반대편으로 넘길 수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 현재도 이곳에는 ‘소선월(小船越)’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데, 양쪽 바다 사이 거리는 600m 정도이고 최고 높이는 15m 전후다. 거친 바다를 100km 이상 우회하는 것보다, 육지로 배를 끌어서 넘기는 편이 훨씬 편했던 것이다. 또한 쫓기는 상황에서 이곳에 이르러 배를 반대편으로 넘기면 손쉽게 추적을 따돌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마도 지도를 제작한 사람은 이곳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 기해동정과 아소만

   
‘해동제국기’에 실린 기이한 형태의 대마도 지도. 지도 속 훈라곶이 배를 뭍으로 끌어올려 반대편 바다로 옮기던 곳이다.
고려 말부터 빈번하게 쳐들어온 왜구의 소굴이기도 하다. 훈라곶 또한 당시 왜구가 자주 사용한 장소였을 것이다. 실제로 기해동정(1419년 세종 1년 조선의 대마도 정벌) 때 이종무 장군이 이끈 정벌군은 아소만 입구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왜구 소굴을 소탕하고, 곧바로 만 안으로 깊이 들어가 훈라곶에 목책을 쌓고 왜구의 왕래를 차단했다. 그리고 다시 북쪽 해안으로 이동해 대마도를 지배하던 무사들의 근거지를 공격했다. 이처럼 대마도 지도의 서쪽에서 아소만으로 이어지는 항로는 기해동정 당시 항로와 일치한다.

병선 227척, 병사 1만7000여 명을 동원한 대규모 정벌을 단행하는데, 대마도 형세를 보여주는 지도 한 장 없이 바다를 건넜을 리가 없다. ‘해동제국기’의 대마도 지도가 기해동정 당시 지도라 단정할 수 없지만, 최소한 이와 비슷한 지도가 있었을 것이다. 대마도 지도의 전체 윤곽은 크게 왜곡됐지만, 정벌군이 공격해야 할 아소만 내부를 크고 자세히 나타내는 데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대마도 형태를 제대로 그린다면 아소만은 좁게 그릴 수밖에 없고, 결국 아소만 내부를 제대로 나타낼 수 없다. 실제로 공격한 지점을 현재 지도에 표시해 보면, ‘해동제국기’의 지도와 큰 차이가 없다.

■ 지도의 제작자는?

   
흔히 ‘해동제국기’의 저자를 신숙주라고 생각한다. 또한 신숙주가 일본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해동제국기’를 저술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신숙주는 일본과 대마도를 딱 1차례 왕래했을 뿐이다. 그는 편찬책임자였고, ‘해동제국기’는 당시까지 조선이 축적한 일본과 유구(지금의 오키나와)에 관한 정보를 집대성한 것이다. 그 본문에서는 대마도 지도의 훈라곶이라는 표기와 달리, ‘선월(船越)’이라는 일본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예(1373~1445년)라는 인물의 계문에서 대마도 지도와 동일한 지명 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지도에 기록된 대로 기해동정 때 처음으로 정벌군이 공격한 왜구의 소굴을 두지동, 정벌군이 목책을 설치한 장소를 훈라곶, 항로의 출발점을 내이포로 표기한 사례는 이예의 계문밖에 없다.

훈라곶과 함께 내이포라는 표기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제포의 제(薺)는 ‘냉이’라는 뜻이고, 우리말 ‘냉이’를 소리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 내이포(乃而浦)다. 내이포는 태종 6년(1406년)부터 문종 1년(1451년)까지 보이고, 단종 2년에 완성된 ‘세종실록’ 지리지부터 제포라는 표기가 나타난다. 이후 ‘해동제국기’가 완성되는 성종 2년까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오로지 제포라는 표기만 사용했다. 따라서 신숙주가 대마도 지도 제작에 간여하였다면 당연히 제포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20년 전부터 쓰이지 않게 된 내이포라는 지명이 버젓이 ‘해동제국기’에 수록돼 있다.

■ 이예는 누구인가

   
국립외교원에는 서희와 더불어 이예의 동상이 서 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관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1396년 왜구에게 붙잡혀가는 상관을 따라가 스스로 포로가 됐다. 왜구의 소굴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그는 1400년 다시 어머니를 찾아 대마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이후 40여 차례 대마도와 일본을 왕래했다. 그야말로 대마도와 일본에 관한 한 당대 최고 전문가였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과 탁월한 정보력에 힘입어 조선은 1443년 대마도와 계해약조를 체결했고, 1350년 이래 끊임없이 이어진 왜구의 활동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기해동정이라는 채찍과 계해약조라는 당근으로 왜구의 침입을 왜인의 교역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었다. 모두 조선이 왜구의 근거지에 대한 정밀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묘한 지도 한 장은 조선이 획득한 대마도 정보의 결정체이다.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부경대 사학과,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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