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식 감독의 ‘곤지암’(2018)은 일견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라는 소장르의 범주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인위적으로 연출된 상황을 마치 실제 현실에 들어간 사람의 시점인 듯 다룸으로써 생생한 현장감을 자아내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형식이다. 이는 ‘84 찰리 모픽’(1989)이 관객을 만들어진 베트남의 전쟁터로 초대하면서 일찍이 정립된 바 있으며, 이를 호러 영화에 접목해 본격적인 파운드 푸티지의 시효가 된 ‘블레어 위치’(1998)의 성공은 유사한 일련의 작품군을 대거 양산하며 현대 공포물의 한 페이지를 연 바 있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에선 드물게 시도되는 본격적인 파운드 푸티지 호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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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범식 감독이 연출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 ‘곤지암’. |
영화의 서사적 얼개는 단순하다. CNN 선정 세계 7대 괴기 장소로 꼽히는 곤지암 남양정신병원으로 카메라를 든 일군의 젊은이들이 찾아간다. ‘호러 타임즈’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이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폐허가 된 정신병원에 잠입해 영상을 촬영하지만, 이윽고 초자연적 현상을 접하게 되면서 목숨을 위협받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버려진 정신병원 내부를 탐사한다는 콘셉트는 ‘그레이브 인카운터’(2011), 기법의 측면에서 ‘블레어 위치’와 ‘샤이닝’(1980)의 흔적 또한 엿보인다. 숱한 호러 영화에서 반복되어온 ‘방탕한 행실을 일삼거나, 그릇된 동기를 가진 젊은이들이 금기를 범하고 저지른 악덕의 대가로 살해당한다’는 장르의 클리셰(Cliche, 굳어진 영화적 관습)는 ‘곤지암’에서도 어김없이 지켜진다.
이처럼 익숙한 요소로 찬 장르영화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곤지암은 보다 진지한 독해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마치 감독의 전작인 ‘기담’(2007)의 정신적 속편처럼 보인다. 기담의 주 배경이었던 안생병원이 1940년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 유신정권의 시대에 허물어진다면, 망령이 가득한 채 시간이 멈춰버린 곤지암 정신병원은 전혀 다른 공간임에도 안생병원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화와 근대화, 국민 계몽의 미명 하에 온 사회와 국가를 병영 사회화하며 국민을 통제하고 도구화한 박정희의 유신은 강제로 환자를 가두고 교정하는 정신병원이라는 은유로 치환된다. 이러한 역사성을 상기시키는 공간의 설정을 통해 감독은 기담이 종결된 자리에서 다시 한번 역사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물으려 한다.
등장하는 청년들은 호러 영화에서 익히 접하는 망령의 사냥감인 동시에, 21세기에도 반복되는 유신 체제의 희생양이라는 담론적 위상 또한 갖는다. 물속에 가두어진 것처럼 표현되는 장면에서 피해자들은 정신병원의 환자들과 동일시되며, 이로써 곤지암은 군사독재의 종식과 함께 버려지고 봉인되어야 했을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에도 남아 세월호 참사와 같이 오늘날에도 피해자를 낳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일말의 정치적 해석을 은밀히 내비친다. ‘택시 운전사’(2017)나 ‘1987’(2017)처럼 정치를 직접 다루려 하는 영화일수록 도리어 탈정치적 멜로드라마에 처하게 되는 한국영화의 경향에서 빗겨나, 곤지암은 오히려 장르 영화 안에서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성이 가능하다는 역설을 실천해낸다. 마치 야누스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의 양면과 같이, 곤지암은 호러 영화에 기대하는 장르성에 충실한 이면에 사회 정치상에 대한 메타포를 감춰놓으면서 장르 그 너머를 지향하는 작품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