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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의 TV…태래비 <7> tvN ‘라이브’

삶에 쫓겨 일에 밀려…아버지는, 경찰은, 오늘도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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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4-03 18: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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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 경찰관들의 지구대 수난사
- 취객에 까이고 의원에 뺨맞고…
- 드라마로 엿본 현실도 고달픈데
- 가장의 무게 견딘 아버지의 삶
- 얼마나 고단했을지 코끝이 찡

소설가를 꿈꿨던 나의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사람 키만큼 소설 원고를 쌓아두고 베트남전에서 구해온 미제 만년필로 습작을 하던 시골 청년은 할아버지의 성화에 등 떠밀려 경찰이 되었다. 중부서에서 퇴근할 땐 책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남포동 서점 앞에 쌓아두고 파는 120원짜리 소설을 잔뜩 사다 주고 흐뭇해하던 나의 아버지가 절도범을 따라 뛰고, 취객의 진상 짓을 말리고, 밀수범을 잡으러 바닷가에서 열 몇 시간 잠복도 하고 받은 월급으로 여섯 식구가 먹고살았다.

   
지구대 경찰이 주인공인 드라마 ‘라이브’.
다대포 구석에 있는 19평 아파트의 대출금도 20년간 냈다. 나와 동생의 학자금도, 할아버지의 통신비도,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도 아버지의 월급봉투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철없는 딸은 경찰이 얼마나 고단한 직업인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새벽에도 비상이 걸리면 달려나가던 그를 보며, 비상이란 놈이 뭘까 잠시 상상했을 뿐이다. 아버지가 견뎠던 세월을 드라마에서 알게 될 줄을 몰랐다.

노희경 작가의 tvN 드라마 ‘라이브’에선 내가 몰랐던 지구대 경찰 수난사가 생생히 살아있었다. 홍인 지구대 경찰들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공황장애가 있는 싱글 맘의 딸 한정오는 불공정한 취업경쟁에 염증을 느꼈고, 빌딩 청소원의 아들 염상수는 외국으로 도망친 형 대신 가장 역할을 떠안았고, 방앗간 집 네 딸 중 장녀인 송혜리는 강한 아들 노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스물아홉, 취업시장에서 들들 볶이고 상처받은 데다 막차까지 탄 이 ‘시보 순경’들은 죽을 만큼 공부해 지구대의 사건 현장에 뛰어들었다.

도로로 밀치는 취객에게 저항하지 않았다고 까이고, 음주단속에 걸린 국회의원을 봐주지 않았다고 까이며 지구대 옥상에 모여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며 투덜거린다. 식구들은 공무원이 된 아들딸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이 젊은이들은 명색이 공무원이라, 가장 노릇과 전셋집 마련이 늘 뒤에서 쫓아오는, 죄 없는 범인처럼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취객이 경찰차에 잔뜩 흘려놓은 토사물을 닦은 날 저녁엔 남편에게 찔려죽은 여자의 사건현장에 간다. 사건 해결의 영광을 얻으려 평생 가정을 같은 경찰인 아내에게만 맡겨놓은 오양촌은 그림자도 없는 남편과 아빠가 되어, 결국 이혼 서류에 사인한다.

감히 음주단속을 했다고 국회의원에게 뺨도 맞고, 유리병으로 사람 머리를 가격하려 했던 여성의 어깨에 테이저건을 쐈다고 감찰을 받는다. 팔 근육에 쏴야 하는 게 매뉴얼인데 어깨에 쐈고, 겉으론 표시가 나지 않는 임신부였기 때문이다. 매뉴얼을 벗어나면 감찰이 뜨는 현실에서 경찰 조직은 매뉴얼이 아닌 ‘상황’을 강요한다. 퇴근하면 새벽까지 배달 일을 하는 경사는 사정을 알리기 싫어 그저 이기적인 조직원으로 남는다. 퇴임을 한 달 앞둔 환갑의 경위는 오랜 경찰 생활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회의에 빠진다.

나의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겠지, 누군가의 진상 짓을 견뎠겠지. 4회 차부터는 자주 눈물이 핑 돌았다. 드라마로 잠깐 엿본 현실이 이토록 고달픈데, 언제나 우울한 얼굴로 귀가하던 나의 아버지가 보고 겪은 이야기들은 퇴직 후 어디에서 곪고 있을까. 부산 전역으로 발령을 받아 떠돌던 아버지는 60세에 퇴직한 후 청도의 조용한 시골로 이사를 가버렸다. 20여 호쯤 되는 마을 운영위에서 총무를 맡아 대소사를 돌보는 일이 이제야 즐겁다고 했다.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원고지를 다 태워버리고 경찰복을 입은 아버지, ‘라이브’의 그 누구라도 될 수 있었던, 혹은 그 누구였던 아버지. 당신의 고통을 속속들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쩌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언젠가….

작가·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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