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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톡·톡] 서운암 뜨락에 모인 시인들…진달래꽃 따다 시를 구웠네

부산여류시조문학회 화전시회

  • 국제신문
  •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  |  입력 : 2018-04-02 18:58:1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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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통도사로 화전놀이 떠난 부산·울산·경남 시조시인들
- 올해엔 ‘花전詩회’로 이름 바꿔, 화전굽기 경연에 즉석 시 발표
- 문화공연 더 늘려 종일 웃음꽃

미세먼지 없는 봄날이 귀할 줄 알았다면 그 많던 맑은 봄날을 그토록 무감하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조시인들이 양산 통도사에 화전놀이 가기로 오래전부터 ‘찜’해둔 지난 주말에는 거짓말처럼 공기가 맑았다. 통도사 뒤를 병풍처럼 지키고 선 영축산은 그래서 더 장엄했다.
   
경남 양산 통도사 서운암 화전놀이에 모인 부산 시조시인들이 야외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화전을 굽고 있다. 박홍재 시인 제공
약속이나 한 듯 남도의 봄꽃이 망울을 툭툭 틔우는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부산 울산 경남 시조시인들은 통도사 서운암에 화전놀이하러 모인다. 이 화전놀이를 주최하는 부산여류시조문학회 김덕남 회장은 “1994년에 행사가 시작됐으나 그 전에 부산시조문학회가 하던 행사를 이어받은 것이니 역사가 벌써 30년”이라며 “그 뒤에는 시조문학에 지극한 애정을 갖고 있는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의 오랜 응원이 있었다”고 말했다.

바깥나들이가 어려웠던 조선 여성들에게 삼월삼짇날 즈음의 화전놀이는 소중한 들놀이 행사였고, 남녀가 격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드문 기회이기도 했다. 부산여류시조문학회가 이 행사의 맥을 이어가는 것도 그런 내력과 무관하지 않다. 문헌에만 남아있는 여인들의 봄 들놀이를 재현하며 봄 시조를 창작하는 화전놀이는 우리 전통 생활문화를 지키려는 시조시인들의 ‘즐거운 노력’이다.

원래 특별한 화전놀이가 이날은 조금 더 특별했다. 17회 만에 이름을 화전놀이에서 ‘화전시회(花煎詩會)’로 바꾸고 문화의 향기를 배가했다. 1부, 2부로 나눈 행사에서 1부는 소소하고 아름다운 문화공연으로 꾸몄다. 이서원의 청명한 오카리나 연주가 웅성웅성했던 좌중을 고요히 집중시키고 난 뒤 권상원의 시조창 ‘화전’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봄과 꽃이 주제인 시조가 낭송됐다. 최옥자의 전통 춤사위가 사뿐사뿐 봄 잔디를 내려 밟았다. 그늘 없이 화사한 서운암 뜨락에 몽롱한 봄이 내려 앉았다.



시, 그거 별 거 아니네 이 봄날이 죄다 시네

꽃잎에 출렁이는 햇살과 바람 물결

서운암 뜨락에 모여 하루종일 시를 굽네(서운암의 봄-김종렬)



1부 행사가 끝나고 시인들은 7개 조를 짜더니 바구니 하나씩 끼고 근처 산으로 흩어졌다. 화전 부칠 진달래꽃 따러 산에 간다고 했다. 산에는 진달래가 기다렸다는 듯 지천으로 피었다. 광주리 가득 분홍 꽃을 따다가 작은 방을 하나씩 배정받아 화전을 굽는다. 무딘 손가락으로 진달래꽃 한 장 한 장 곱게 펴서 쌀가루 반죽 위에 얹어 누르면, 수채화처럼 화전이 굽힌다.

   
이날 출품된 화전들.
시인들은 화전을 구울 때도 시인 티를 낸다. 뒤집개 들고 전 부치던 노년의 시인이 “이 창꽃(진달래꽃의 경상도 방언) 다시 필 때 내가 볼 수 있으려나” 운율을 매겨 읊자 뭐 즐거운 얘기라도 한 듯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중년의 남성 시인들은 화전 데코레이션에 열을 올린다. 이 꽃은 이렇게 쓰면 멋이 없다. 먹지도 못하는 이 꽃은 누가 따 왔냐. 시조도 화전도 소박해야 제격이지 멋 부리면 안 된다.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시인은 툇마루 기둥에 기대앉아 시를 쓴다. 이날 맛보려고 누군가 고이 담았다는 두견주(진달래꽃술) 딱 한 잔에 감상을 끌어올린다. 오늘 일곱 조는 경연을 펼친다. 화전의 모양과 맛, 그리고 즉석에서 쓴 시조를 종합심사해 상을 준다.



소월의 진달래꽃 유정의 생강나무꽃

시인들 손맛으로 꽃찌짐 한 판 구워내면
서운암 설법전 가득 무르익는 봄, 봄봄 (봄, 봄봄-손증호)



완성한 화전은 심사대에 올려놓고, 각 조가 준비한 장기자랑과 함께 이날의 감흥을 담은 시조를 발표했다. 터질 듯한 봄의 흥취를 노래한 시도 있고, 절정을 맞기도 전에 봄이 간다고 발을 구르는 시도 있다. 운율을 절로 타게 되는 시조는 낭독해야 제맛이다. 시조는 ‘봄의 문학’이라고 호들갑 떨고 싶어지는 그런 봄날이다. 어화 우리 벗님네야 화전놀이 가자스라.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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