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새로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는 달이다. 부활의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능 중 생의 본능만큼 절실한 것은 없을 것이다. 18세기 계몽사상 선구자 퐁트넬은 100세까지 장수했다. 95세가 되던 어느 날 91살의 노부인과 만났다. “아마 저승사자가 우리를 불러가는 일을 잊었나 보지요?” 이 말을 하는 노부인을 향해 퐁트넬은 얼른 손을 입에 대며 말했다. “쉿, 조그맣게 말하세요. 저승사자가 듣겠어요.” 세계 최장수 남성이었던 일본인 다나베 도모지는 112세 생일에 소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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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축제예배’ 모습. 국제신문DB |
삶에 대한 애착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독일 문호 쉴러는 “거미줄처럼 얽힌 온갖 체계도 ‘너는 죽어야 한다’라는 단 한마디로 인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기고 만다”고 했다. 내 인생 속에 그토록 중요하다고 여겼던 사업, 돈, 명예, 학력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죽음 앞에서는 빛을 잃고 무릎을 꿇고 만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을 ‘죽음을 두려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들’이라 정의한다. 죽음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부활은 바로 그 죽음의 힘을 깨뜨리고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누구든 그를 믿는 자마다 바로 이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전혀 믿지 못하던 모습을 솔직하게 전해준다. 그러던 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믿을 수 없는 그것을 믿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도 소개한다. 삶의 목표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이전과 전혀 다른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부활을 믿는 신앙이 전혀 다른 삶의 지평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너머 전개되는 새로운 세계의 시작임을 보게 해준다.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가득 찬 영원의 세계다. 그것을 소망하게 된다. 그 영원한 영광의 빛 앞에서 세상 영광이란 지극히 순간적이고 보잘것없다는 깨달음은, 어리석은 집착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해준다. 독일 신학자 칼 하임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밤에 집안을 환히 밝히는 전등이나 도심을 밝히는 네온사인이 얼마나 휘황찬란한가! 그러나 아침이 되고 해가 떠오르면 그런 것들은 빛을 잃어버린다. 부활의 증인들은 바로 그런 인상을 갖는다. 부활을 깨닫고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는 저는 사실 삶이 무엇인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어요’.”
데레사 수녀가 병자들을 돌볼 때 죽음을 앞둔 사람이 물었다. “죽는 것이 두렵습니다. 당신은 그렇지 않나요?” 그녀가 답했다. “왜 두렵습니까? 죽음은 하나님의 집에 이르게 하는데요. 저는 죽음을 기대합니다.” 죽음을 뛰어넘어 새로운 영원의 세계를 소망하면서, 하루하루 의미 있게 살아가는 힘, 그 힘이 바로 부활신앙에 있다.
부산중앙교회 담임목사·부산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