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 대학교수 중 관악 전공 ‘0’
- 정원 채우기 급급해 다양성 외면
- 자체 오케스트라 교육도 못해
- 실기 위주 수업으로 실력 키워야
- 지역 음악계·대학 공동노력 필요
2주 전 이 지면에 ‘부산서 만나고픈 음악인’(국제신문 지난 14일 24면)이라는 글을 쓰면서 부산의 음악인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고민해보았다. 이러한 고민은 필자의 음악생활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음악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부산의 문화 활성화 운동에 전념하고자 스스로 선언하였고, 그 대책을 찾는 작업으로 많은 시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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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을 위한 음악회에서 연주자가 관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그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대학의 뒤늦은 현실 인식이다. 세상은 너무도 빨리 거듭 변하는데 대학은 가장 늦게 변화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지난 글에서 호른이라는 악기로 단순 비교해 보았는데 오늘은 대학 교수진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대학 홈페이지에 있는 정보를 중심으로 보았다. 음악 전공 학과가 있는 부산의 6개 대학에서 초빙·겸임·외래교수(강사)를 제외한 음악 교수 현황을 보면 피아노 22명, 성악 12명, 현악 8명, 작곡 5명, 이론 3명, 오르간 2명, 지휘 2명, 음악치료 1명, 실용 6명으로 모두 61명의 교수가 있다. 보직교수 등을 제외하면 교수 60명이 교육 일선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아쉬움은 많다. 특히 부산의 6개 대학 전체에 관악(목관·금관) 전공 교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이를 달리 보면 관악 전공자들의 더없이 열악한 상황에 있음을 상징한다. 꼭 관악 전공 교수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라. 대학 입시에서 전공별 학생을 선발하는데 관악 전공 교수가 없다는 말은 관악을 전공하는 학생을 누가 책임지고 선발하며, 또한 전공자를 대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는 부산의 대학 음악 교육 환경에서 자체적인 오케스트라 교육이 정상으로 이뤄질 수 없는 한 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대부분 대학에서 세부 전공별로 학생을 선발했다. 오케스트라를 정상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입시 미달 사태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미달을 예방한다고, 합격한 학생들의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지휘를 전공하는 학생이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하면서 오케스트라 한번 지휘해보지 못하고 졸업한다고 생각해보라. 실기 중심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실기 한번 해보지 못하고 졸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인재는 교육이 정상적인 커리큘럼으로 작동될 때 배출된다. 음악은 실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이며 이론은 더욱 뛰어난 실기를 위해 필요한 학문이다. 뛰어난 연주자가 되고자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도 이를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온전치 못한 교육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격이니 더욱 뛰어난 음악인을 키워내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서울로 외국으로 유학 갈 수도 없는 현실이다. 공부해서 실력은 인정받으나 무대에 설 기회를 얻기 어려운 타지의 환경을 생각한다면 부산 음악인과 음악도들은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이중삼중고를 안고 있다.
2020년이 되면 학생은 더욱 줄 것이고 모든 학교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함께 생각을 모아야 한다. 부산에 문화예술시설은 점점 더 생기고 있으며, 전문가를 더 많이 필요로 하게 된다. 세분화된 전문 음악인 규모가 아직 제자리걸음인 현상을 고려해 볼 때, 이론·실기와 인문적 소양까지 갖춘 인재를 대학에서 키워낸다면 부산의 대학에는 기회일 수 있다. 함께해야 하는 음악세계에서 함께함보다는 각자 알아서 학생을 모집하고, 많은 학생을 모집한 전공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는 현상을 유지하다 보면 결국 내용이 부실해져 모두가 공멸하는 현상을 맞을 것이다. 교수들은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미래 밑그림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부산 음악인들의 공동의 생각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진정성이 전달될 때 부산 음악인을 무대에서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인 모두 함께 고민해 대안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그 최전선에 대학이 있다.
음악평론가·문화유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