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문관서 외국어 배운 장더이
- 민간사절단 따라 첫 유럽여행
- 이 후 淸 공식사절단 통역사 등
- 평생 여덟 번 해외 나들이 떠나
- 여덟 권의 ‘세계견문록’ 남겨
- 물을 끓여 움직이는 증기기관
- 아시아·유럽 잇는 수에즈운하
- 지구의 자전·공전 개념 설명 등
- 유럽의 과학기술 자세히 기술
1869년 7월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변발을 한 중국인이 말을 타다 낙마했다. 상처가 깊어 치료 후에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행과 떨어져 먼저 귀국길에 올랐다. 우연치 않은 사고가 한 젊은이를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중국인이라는 영예를 안겨 주었다. 그의 이름은 장더이(張德彝, 1847-1918)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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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청나라 때 범선 기영호. 미국과 영국을 거쳐 세계일주에 성공한, 탁월한 원양 항해 능력을 가진 배였다. |
■ 여덟 번 해외여행, 여덟 권 여행기
장더이는 근대 중국인 가운데 가장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이다. 첫 번째는 1866년 봄 불과 19세에 외국어를 공부하는 동문관(同文館) 졸업생 신분으로 최초 민간사절단인 빈춘(斌椿)사절단을 따라 인도양을 건너 유럽에 갔다. 두 번째는 1868년 통역 신분으로 청조의 공식사절단인 벌링게임(Anson Burlingame)사절단을 수행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거쳐 유럽을 장기간 방문했다. 세 번째는 1870년 텐진교안을 사죄하기 위해 파견한 총호우(崇厚)사절단을 따라 프랑스에 갔다. 이처럼 초기 세 번 해외사절단에 모두 참가했다. 1876년 12월 다시 중국 최초 주외공사 궈송타오(郭嵩燾)를 따라 영국으로 가 외교활동을 펼쳤다. 장더이는 평생 무려 여덟 번 해외여행을 통해 여덟 권 여행기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칠술기(七述奇)’를 제외한 일곱 권이 전해지면서 중국인 중 가장 이르고 상세한 세계견문록을 남겼다. 그중 해양문명에 관한 것이 많다. 초기 여행기 가운데 대양항해 기록 몇 조각을 찾아 읽어보자.
■ 증기기관·등대·선상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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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더이가 참여한 청나라의 벌링게임(Burlingame) 사절단 모습이다.
사진 출처=홍콩해사박물관 책자 |
장더이는 빈춘사절단을 통해 첫 여행기 ‘항해술기(航海述記)’를 남겼다. 당시 화륜선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으나 직접 구경한 중국인은 거의 없었다. 장더이는 외국 선박의 증기기관을 보고 감탄하며 “화륜기는 불로써 물을 끓여 증기로 하여금 철륜을 상하로 회전시키면 배가 스스로 움직인다”라고 썼다. 항구 밖 등대도 신기했는지 높은 탑처럼 생긴 등대는 빛이 백 리 밖을 비출 수 있어 야간 운항 선박이 항구 위치를 알도록 한다고 했다. 유럽에 가서도 원형 등대와 유리등을 묘사했다. 밤에는 등을 켜 위험을 알리는데, 안개로 등광이 어두우면 종을 울려 위험을 알린다고 했다. 대양으로 나간 중국인은 망망대해에 대한 경이로움이 사라지기도 전에 강한 바람과 높은 파도를 만났다. 항해의 힘든 과정은 모든 여행기에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고통은 뱃멀미였다. 스리랑카에서 아덴으로 항해 도중에는 한 인도인의 죽음을 목격했다. 시체가 썩어 전염병이 선내에 돌 것을 우려해 재빨리 처리한다고 썼다. 그 방법은 선박규정에 따라 시체를 바다로 던지는 것이다. 보통 시신을 넣은 관에 무거운 철도 넣어 바다 속으로 가라앉히는 방법을 썼다. 선상 전염병은 근대 유럽인이 무척 두려워한 존재였다.
■ 지구설
대부분 여행서는 지리서 성격을 띤다. ‘항해술기’에는 지구설(地球說)이란 글을 실어 지구 개념을 설명하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표현이 흥미롭다. “(지구의) 모양을 말하자면, 혹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 하고, 혹자는 하늘 모양은 덮개와 같다고 하고, 혹자는 하늘과 땅의 모양이 계란과 같다고 한다. 요컨대 뒤의 학설이 사실에 가깝다. 대체로 하늘 모양은 바깥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으며, 땅 모양은 가운데 둥글게 모여 있으니 공 모양이 지구의 모습에 가깝다.”(장더이, ‘항해술기’) 장더이는 고대 중국인의 천문관 중 하나인 혼천설(渾天說)이 대체로 서양인의 천문학과 부합한다고 봤다. 혼천설은 천체가 계란 같이 생겨 하늘이 땅을 둘러싸고 노란자와 같은 지구가 가운데 있는 형상이다. 이것은 서양인의 학설과 비슷할 뿐 아니라, 중국인이 그들보다 3000년이나 빨리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 최초로 세계를 일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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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중국인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장더이. |
장더이는 벌링게임사절단을 통해 두 번째 여행기 ‘구미환유기(歐美環遊記)’를 남겼다. 첫 여행이 유럽만 구경한 것이라면, 이번 여행은 2년 8개월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돈 장거리 여행이었다. 동남아를 거쳐 인도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라 정반대로 일본을 거쳐 태평양을 건넜다. 배를 탄 후 오직 하늘과 바다만 보았다고 했으며, 역시 폭풍우를 경험했다. “대동양(大東洋)이거나 태평양이라 부른다. 풍랑이 이처럼 험악하니 아마도 명실이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기록했다. 이번 사절단은 처음으로 “동양의 동쪽이 서양의 서쪽”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더이는 미국을 경유해 유럽에 갔다가 프랑스에서 낙마사고로 어쩔 수 없이 빨리 귀국했다. 그래서 중국인 최초로 세계를 일주했다.
■ 전통적 지리관 vs 근대적 지리관
이번 여행기에서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설명했다. 지구 자전으로 낮과 밤이 나뉘고, 지구 공전으로 사계절이 나뉜다 했다. 지구 자전에 따른 시차에 대한 관념도 나타난다. “태양과 반대방향으로 주행하면 지구는 매일 몇 분 늦어진다. 태양을 따라 주행하면 지구는 매일 몇 분 빨라진다. 만약 그 중감을 계산하지 않는다면, 어떤 곳에 도착한 날은 달력과 다를 것이다”라고 썼다. 또한 지구의 5분의 3은 물이 차지하는데, 물이 모여 있어도 새지 않는 까닭은 중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라 했다. 앞서 혼천설이 서양 천문관을 앞섰다는 주장처럼 이번에는 고대 추행(鄒行)의 학설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구주설(九州說)을 견강부회해 중국이 천하의 81분의 1이라는 사실을 옛 중국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우겼다. 장더이의 중국우월주의 사고방식은 다른 일기에서도 종종 나타나는데, 전통적 세계관과 근대적 세계관의 충돌을 잘 보여준다.
■ 수에즈운하와 우공이산
총호우사절단을 통해 세 번째 여행기 ‘수사법국기(隨使法國記)’를 남겼다. 당시 프랑스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혼란 중이라 마르세이유항구에 도착한 사절단은 위험을 피해 전전했다. 그러다가 장더이는 우연찮게 1871년 3월 파리코뮨 진압 광경을 목격한 중국인이 됐다. 이번 여행기에는 바다 관련 기록이 적지만, 수에즈운하에 대한 인상은 깊었다. 장더이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수에즈지역에 아직 운하가 완성되지 않았다. 이곳은 두 대륙이 연결되는 지역인데, 동쪽이 아시아, 서쪽이 아프리카이며, 북으로 지중해, 남으로는 홍해가 연결된다고 소개했다. 1869년 수에즈운하가 완성되자 아프리카 연해를 따라 희망봉을 도는 것보다 수만 리 단축됐다. 세 번째 여행에서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한 수에즈운하를 배를 타고 통과했다. 프랑스인 레셉스(Ferdinand Marie de Lesseps)에 의해 10년간 추진된 대운하 공사에 감탄하며, 인간의 노력이 하늘을 이긴 우공이산 고사에 비유했다. 중국인 눈에 수에즈운하는 서양인의 해양개척정신을 잘 보여준 사례였다.
■ 동양과 서양 사이
장더이는 서양식 교육을 받은 신형 지식인의 탄생이라 볼 수 있다. 그를 비롯해 청말 대양을 건넌 중국인은 동양(東洋)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떠났다. 그러나 구미사회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서양(西洋)을 발견했다. 과거 중국이 불교로 상징되는 인도문명에 충격을 받아 큰 변화를 겪은 이래, 과학기술로 상징되는 유럽 문명의 출현은 세계관 전환을 가져왔다. 물론 중국 중심적 세계관에 익숙했던 그들이 오랑캐의 신문명을 받아들이는 데는 심리적 갈등과 시간이 필요했다.
조세현 부경대 사학과 교수
※ 공동기획: 부경대 사학과, 국제신문